사랑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등록날짜 [ 2004-01-13 23:26:43 ]

‘폭행’ ‘폭도’ ‘전쟁’ 그리고 ‘4000여명의 진압 경찰 병력들 긴급 투입’ 한가위가 자리한 풍성한 계절에 ‘모래시계 시대’에나 어울리는 웬 썰렁한 단어들일까요? 이것은 지난 9일 전북 부안 주민들의 김종규 군수 폭행 사건을 다루는 기사 말 중 일부입니다.
그리고 기자 앵글에 잡힌 김 군수의 참혹한 모습.
‘넘어지는 책상, 내동댕이쳐지는 의자’ ‘머리끄덩이 싸움’ ‘욕설, 고함 난투극’ 이건 또 웬 험악한 용어들? 어느 무협영화에 나오는 장면들일까요?
천만의 말씀! 바로 우리 국민들의 대표들, 국회의원 나리들의 당무회의에서 일어났던 웃지 못 할 것들이지요.

“엄마, 이 아줌마들 왜 싸워?”

7개월에 걸친 민주당 신당 논의가 난투극으로 끝난 지난 9월 4일자 신문에 실린 ‘신구 주류 여성 의원들간의 머리끄덩이 싸움’ 장면. 그것을 보고 8살 난 저의 아들아이가 했던 질문이지요. 아주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말이지요.

그 아이에게 “이 아줌마들이 우리 국민들의 대표 국회의원들이란다”라는 말, 차마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의 신문 머리기사 제목, 젊은이들의 해외 이주 세계 최고. 싸움하는 엄마 아빠 때문에 홧김에 집을 나가는 아이들처럼 우리의 일부 젊은이들은 나라를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어른들을 뒤로 하고 이 땅을 떠나고 있습니다.

80년대 그 어둠의 터널을 인내로 통과했던 저로서는 참으로 억울하다는 것이 요즘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있어야 할 화해와 평화 대신 또 다른 갈등과 분노의 공간 속에 둘러싸여 있으니 말입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집단간 이익차이의 갈등들.
이렇게 멍들어만 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설 자리는 왜 이리 비좁아만 보일까요? 이 체증 같은 답답함을 풀어줄 한 위대한 얼굴이 그리워집니다.

나사렛이라는 당시 아주 천한 동네에서 보잘 것 없던 직업 목수로 30년을 살아온 한 청년의... 그는 참으로 용감했지요. 2000년 전 당시 이스라엘 지배세력들, 감히 그 누구도 대항할 엄두조차 못했던 율법학자들과 제사장들의 위선에 강력하게 맞섰으니 말입니다. 거짓으로 똘똘 뭉친 율법학자들을 “독사의 자식들! 회칠한 무덤!(마23:27-33)”이라며 꾸짖었습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부를 챙겨가던 사두개인들에겐 성전 정화작업(마21:12-22)과 ‘포도원의 못된 소작인 비유(마21:33-42)’로 날카롭게 나무랐습니다. 그리고 당시 지배세력 로마의 통치 이데올로기 황제 신성화를 거부 하며 섬김과 사랑이라는 하늘나라의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의로웠으며 당당했던 그 아름다운 청년 예수! 그분의 움직임은 욕심과 폭력으로 엮어져 있던 기존 세력들에겐 대단한 위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행위 속엔 결코 폭력이 없었습니다. 대신, 용서와 사랑의 향기만이 가득 했습니다. 영혼의 구원과 삶의 거듭남이 자리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생명이 꺼져 가면서도 그분은 하나님께 애원했습니다.
자신을 죽음의 자리로 내몬 그 사람들을 위해서…

“아버지여 저들이 몰라서 그러니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평화 속 저항은 인간 역사에 ‘영생’이라는 축복을 선물했습니다. 이 가을을 을씨년스럽게 만드는 찌푸린 영상들 속에서 그분의 사랑 한 조각이라도 만나고 싶습니다. 그 아름다운 사랑이 애달프게 그리워지는 이유는 결코 계절 탓만은 아니겠지요?

위 글은 교회신문 <5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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