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아버지 마음을 헤아리며

등록날짜 [ 2022-11-10 13:45:42 ]

코로나19 사태가 심하던 시기, 하루는 남편이 여의도의 한 전문의에게 아들을 데리고 가서 이루공 제거 수술을 받도록 했다. 아들의 귀 위쪽으로 작은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고, 생활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으나 간혹 분비물이 나올 때면 본인만 맡을 수 있는 냄새가 나서 없애기로 한 것이다.


여러 곳에 문의한 후 찾아간 병원에서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고, 수술 후에도 수술 자국만 아물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몇 주 후에 다시 병원에 갔더니 회복이 더디다는 이유로 몇 달 동안 더 내원하라고 했다. 이후에도 여러 달이 지났으나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개월 동안 아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무척 속이 상했다.


설상가상 재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듯했다. 개인병원에서 할 수 없어 대학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흑석동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가벼운 수술이라고 했는데 내 아들에게만은 가벼운 수술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학병원에 갔더니 10명 중 8명은 수술 한 번으로 거의 완치되지만, 보통 2명 정도는 수술을 여러 차례 받는다고 했다. 이런 경우 신경이 많이 포진된 귀를 굉장히 조심스럽게 수술해야 한다며, 수술 후에도 최소한 하룻밤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후 퇴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수술받기 전 내가 속한 여전도회와 교구에 기도 제목을 알리면서 이루공을 재수술하게 되었는데 잘 치료받을 수 있도록,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중보기도 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아들은 열흘 뒤 군 입대를 앞두고 있어서, 그 또한 어미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일이었다. 담당의에게 물었더니 “입대해서도 소독만 잘하면 될 것”이라고 했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수술은 잘되었다.


수술 부위가 크든 작든 회복도 다 마치지 않은 아들이 입대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아들이 속상해할까 봐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며 “큰 문제 없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입대하기 전 목사님에게 기도를 받고 싶었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직접 만나 심방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던 시기여서 교구목사께서 아들에게 전화로 기도해 주었다. 스피커폰으로 전해지는 기도 말에 함께 “아멘” 하며 입대하는 아들을 주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맡겼다.


그런데 참으로 지긋지긋한 일이었다. 담당의의 당부대로 아들은 소독도 잘하며 군 생활을 이어 갔으나, 입대하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부대에서 전화가 왔다. 수술한 부위에 고름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훈련받으면서 신경 쓰여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걱정되었다.


부대원이 이용하는 병원에서 어찌할 수 없어 휴가를 며칠 줄 터이니 민간 병원에서 치료받고 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필요하면 수술까지 받고 와도 된다고 했다. 당시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이가 두문불출하던 시기인지라 군대 간 아들을 면회할 수도 없고, 휴가 또한 통제받아 부대 밖으로 나올 수 없던 시기였다. 그런데 부대에서 일주일간 휴가를 받아 나오게 되다니! 군대 보낼 때도 울지 않던 내가 몇 개월 만에 보는 아들이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 이렇게라도 얼굴을 보게 된 것을 주님께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다.


대학병원을 다시 찾아 수술받은 후 며칠 만에 다시 부대로 복귀했다. 이후 부대에서도 귀를 잘 관리하다가 시간이 흘러 만기 전역했고, 치료가 끝난 지 1년이 훨씬 넘었지만 그 후로는 다시 재발하는 일이 없다. 주님의 은혜이다. 다만 수술을 세 번이나 받다 보니 수술 자국이 남아 매끄럽지 않은 피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린다. 복무 기간에 아들이 군 생활을 잘해 가느냐에 대한 걱정보다 수술한 것 때문에 어려움이 있지는 않을까 항상 걱정하며 기도한 듯하다.


입대한 아들에 대해 전전긍긍하던 내 마음을 돌아보며, 주님도 우리의 죄인 된 모습을 아셨기에 십자가에 달리기를 자처하며 죽으시기까지 나의 죄를 대속하고 지옥 형벌을 면케 하셨음을 생각해 본다. 주님은 우리가 죄의 길로 빠지지 않기를 항상 원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영혼의 때를 위해 살기를 원하신다. 내가 아들의 상처가 잘 아물어 평안하기를 간절히 바란 것처럼 말이다.



/한기자 기자

(여전도회 편집실)



위 글은 교회신문 <77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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