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 칼럼] 예수로 하나 되는 교회
고린도전서 강해②-下

등록날짜 [ 2022-11-29 20:53:45 ]

교회는 복음 외 다른 것 때문에

분쟁하고 갈라지는 일이 없어야

고린도전서 강해②-下


경제가 불안정하거나 전쟁의 소문으로 불안이 고조될 때 사람들이 찾는 물건이 있습니다. 바로 ‘금’입니다. 금은 광물에 불과한데도 정말 비쌉니다. 녹슬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이 금의 특성이기에 각종 장신구와 전자제품 등에 사용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는 금보다 귀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는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나를 구원해 주실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 소개하고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예수가 아닌 ‘누구에게 배웠는지, 누구에게 침례를 받았는지’와 같은 문제로 복음의 본질을 흐리자 매우 안타까워했습니다. 우리도 복음의 본질이 흐려지는 분쟁이 없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까? 예수님은 이사야서 53장 말씀처럼, 시편 22편 고백처럼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죄를 해결할 대속 제물이 되려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제물이 되려면 육신을 입고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의 약속대로 오신 것이고, 죄가 없으시기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죄를 완전히 대속해 주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죄가 100이라고 가정할 때 90만큼 해결되었는지 80만큼 해결되었는지 모릅니다. 부활하셨다는 것은 우리의 죄보다 더 큰 값을 넉넉히 치러 주셨기에 죄를 다 속하고도 남는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확증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예수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죄 사함의 은혜를 몸으로 직접 보여 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실질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 그래서 우리의 죄를 사하러 오셨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가운데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고난받을 거야. 죽을 거야. 그러나 부활할 거야.” 이것을 세 번 말씀하셨다는 것은 ‘십자가와 부활’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참 구원의 소식인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 주고 싶으신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죄 사함의 복음으로 하나 되는 교회

사람들은 십자가를 오해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며 십자가와 대속물이라는 하나님 사랑의 본질과 상관없는 인본주의적, 윤리적, 도덕적인 사랑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아담 이래 죄 아래 살고 있는 인류 누구나 멸망당할 존재요,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심판받을 당사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멸망당하기를 원치 않으시고, 나를 멸망케 만든 죄의 역사, 마귀역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진짜 멸망해야 할 대상은 마귀이고, 예수는 마귀의 일을 멸한 다음 마귀의 손아귀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러 오셨습니다. 만약 마귀를 멸하지 않고 우리가 죄 사함받지 못한다면 마귀와 함께 영원히 멸망할 처지가 된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하나님의 사랑을 그저 가난한 사람을 돕고, 전쟁이 없어지고 평화가 오는 그런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것들은 ‘죄 사함’이라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사랑을 알았을 때 저절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죄에서, 영원한 멸망에서 우리를 구원하고 싶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사랑을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셨는데 세상의 문화나 미디어는 하나님의 복음을 어그러지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죄 사함의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눅1:77, 행26:15~18, 엡1:7, 골1:14, 요일2:12). 예수는 인류의 죄를 사하시려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를 넉넉히 해결할 수 있는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전쟁에서, 가난에서, 이 땅의 고통과 억압에서 구원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죄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죄를 사해 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교회는 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하는데, 고린도교회처럼 죄 사함의 복음이 사라지고 ‘내가 누구에게 배웠느냐’는 엉뚱한 주제가 주를 이루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우리 죄를 대속하신 그 죄 사함의 은혜와 구원이 우리에게 실제가 되어야 합니다. 요즘 세상은 죄를 너무도 우습게 여기고 양심이 마비되어 죄 문제를 그냥 좋은 변호사를 사서 해결하면 된다고, 정 안 되면 배 타고 외국으로 도망가면 된다며 죄를 피할 수 있다고 여기는 무서운 세상이 되어 갑니다. 죄가 사해졌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죄 문제는 이 땅에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멸망의 심판, 그 심판은 악한 마귀 사단이 당해야 하는데 우리가 죄 아래 산다면 사단의 자식이 되어서 사단과 함께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 분명한 현실입니다. 이 문제를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해결하겠다고 약속하셨고, 약속대로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약속대로 십자가에서 대속물로서 우리 모든 죄를 지고 해결하여 주셨으니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입니다.


이러한 복음 외에 다른 것 때문에 교회 내에서 서로 분쟁하고 오해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바울을 비롯해 예수님의 제자들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싸고 가치 있는 것은 ‘금’이 아니라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77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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