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반드시 다가올 그 날! (上)

등록날짜 [ 2022-12-21 14:25:47 ]

어느 날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손주 녀석의 손을 잡고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길. 날씨가 상쾌했고 할아버지 보폭에 맞추느라 잰걸음으로 걷고 있을 손주의 모습이 손으로 전해진다. 문득 ‘이 녀석과 몇 년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족과 함께하던 이 땅에서 저 하늘나라로 영원히 이사할 그 날에 ‘이 녀석이 얼마나 놀라고 슬퍼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내려다보며 말했다.


“성준아! 훗날 할아버지가 저 천국으로 이사할 때가 있을 거야! 그때 넌 너무 슬퍼하거나 서운해하지 말거라. 할아버지는 너무너무 좋고 아름다운 저 하늘나라에 너보다 먼저 가는 것이니, 언제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소망을 가져야 한다.”


말없이 한참을 올려다보는 손주 얼굴을 바라보며 여덟 살짜리가 받아들이기 좀 어려운 말인 것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했다. 그러나 손주 녀석은 뭔가를 알았다는 듯 “네! 할아버지! 알았어요”라고 말하고 태연하게 교문으로 들어갔다. 낙엽이 무수히 떨어진 골목길을 나 혼자 걸어오며 ‘이 세상도 참 아름답구나’라고 생각했다.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세월에도 속도가 있다. 사람들은 보통 50대에 50km 속도로 세월이 흘러가고, 60대에는 60km 속도로 달려가고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그 말이 정말 맞는 말인 듯 나 또한 나이를 먹어 갈수록 절감하게 된다.


내 나이가 이제 칠십 대 중반을 막 넘어가고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77km로 달리고 있다. 바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그 날, 곧 광복의 날에 태어났으니 그렇다. 요사이는 일주일이 날아가고 있다. 1년이 화살같이 지나간다. 내 마음은 익어 가는 것 같은데, 세월은 가면 갈수록 가속화(加速化)되는가 보다. 왜 이리 시간이, 세월이, 나이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일까.

언뜻 생각해 보았다. 거기서 나는 우리 믿는 자들에게 이 빠른 시간은 저 천국이 너무너무 아름답고, 찬란하고, 평화롭고, 영광스러운 곳이기에 빨리 가고 싶어서 그렇다고 깨닫게 되었다. 반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지옥 형벌이 무서워 촉박하고 다급하게 느껴지는 것이고! 그만큼 나이가 들어갈수록 천국이 가깝고, 그곳으로 이사 가야 한다는 기대감과 소망이 절실해지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어리광 속내

그런데 이 사실을 깨달은 나는 하나님께 편지를 쓰듯 내 마음을 올려 드리고 싶었다. 아버지 앞에 어리광을 부리는 자녀의 편지는 아래와 같다.


“나의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하신 그곳이 참으로 창조주의 최고의 세계요, 최후의 걸작품이라고 믿습니다. 전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최선, 최대, 최고의 세계를 준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주님! 주님이 지으신 이 세상도 아름답고 멋있는 세계네요. 제가 아직 아프리카의 남쪽, 남아메리카의 중남부를 가 보지 못했고, 요사이 대한민국도 참 아름다워졌다는데 안 가본 곳이 너무너무 많고, 북한 땅은 금강산, 개성, 평양만 가 보았지 다른 곳은 다녀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 천국에 빨리 가고 싶지만, 천국의 그림자 같은 곳인 여기 지구촌도 주님이 지으셨기에 아름답고 신기한 곳이 많으므로 좀 더 눈에 담을 시간을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내용의 마음을 내비친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머뭇거리다가 최고의 좋은 것을 예비해 놓으셨을 아버지 마음을 헤아려 송구하기도 하고, 영원히 계신 아버지가 단회적 인생을 살고 있는 철없는 자녀를 보며 웃으실 것 같기도 하고, 내 뜻을 들어주실 수도 있겠다는 아양도 떨어 보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도 쌓아 온 신앙이 있으므로 그렇게만 기도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주님을 만나면 내놓을 게 전혀 없는 부족하고, 불충하고, 게을렀던 지난날이 후회스럽고 죄송하여 주님 앞에 서기 전에 하나님 나라와 주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사 하는 기도가 더욱 간절해졌다. 주님을 만나게 될 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칭찬과 격려를 받고 싶은 심정이 간절해지는, 나의 말년의 조급함이 간절하다는 얘기이다. 아니 절규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더 충성하고, 주님 뜻을 이룰 말미를 좀 달라고 매달리고 싶어서 그렇다. <계속>



/최종진 목사

前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前 한국기독교학회장



위 글은 교회신문 <77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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