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 칼럼] 보라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요
마가복음 강해(21)

등록날짜 [ 2023-12-21 12:42:06 ]

은혜받을 기회 거듭 주어졌으나

예수를 믿지 않고 거부한다면

복음을 듣지 못할 때 찾아오니

지금이 바로 내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을 구원의 날


마가복음 강해(21)

갈릴리 서편 달마누다 지방에서 배를 타고 떠난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 건너 동북쪽에 있는 벳새다로 가십니다. 배를 타고 가면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막8:15)라고 말씀하십니다.


‘누룩’이란 음식물을 발효시키고 부풀리는 데 사용하는 효소입니다. 밀가루 반죽 등에 조금만 넣어도 금세 음식이 발효되고 부풀어 오릅니다. 성경은 ‘누룩’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서 모두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천국과 복음의 확장성을 누룩에 비유해 말씀하신 바 있으나(마13:33, 눅13:20~21), 이번에는 바리새인과 헤롯당의 부정적인 영향력을 누룩에 비유해 말씀하십니다. 15절에서 나오는 ‘바리새인의 누룩’은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고 하지만 그 마음은 하나님 말씀과 상관없이 체면과 형식을 중요시하는 바리새인들의 위선이나 형식주의를 가리킵니다. ‘헤롯(당)의 누룩’은 세상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세속적인 탐욕을 의미합니다. ‘헤롯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당시 유대 분봉왕 헤롯을 지지하고 로마에 우호적이던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이나 헤롯당의 교훈을 누룩에 비유하신 것은 그들의 교훈이 무척 파급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줍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자, 예수님의 이적을 바라보면서 믿으려던 사람들까지 바리새인들의 영향력 탓에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친척들도 예수가 미쳤다며 붙들러 나올 정도였습니다(막3:21~22). 예수님의 이 당부는, 수많은 이적을 보여 줬는데도 믿지 않는 불신앙에 기초한 그들의 가르침이 누룩처럼 퍼지는 것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악한 교훈은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사소한 것이라도 교회 안에 들어오면 공동체 전체에 순식간에 퍼져 파괴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동문서답을 합니다. 얼마 전에 떡 몇 개로 수천 명이 먹고 남을 정도로 이적을 베푸신 주님의 능력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떡이 없다고 걱정하는 것입니다(막8:16). 주님의 말씀은 먹는 떡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믿지 못하게 하는 바리새인과 헤롯당의 불신앙을 닮으면 안 된다는 것인데, 주님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답답해하시며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막8:17~18)라고 탄식하십니다.


당시 모든 유대인도 제자들처럼 주님의 말씀을 오해했습니다. 하늘의 것이 아니라 땅의 것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을 모두 땅의 것으로만 생각하기에 진정한 죄 사함의 복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잠시 있다가 사라질 이 땅의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를 느끼지 못해 은혜가 부족하다고 불평하곤 합니다. 사람이 병들어 감각이 마비되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도 세상 근심과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병들면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이적을 보이고 은혜를 부어 주셔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마13:22).


바리새인들이나 제자들은 주님의 크신 능력과 이적을 보고도 주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눈이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영의 눈이 세상 것으로 가려져 주님을 보지 못하고 멸망으로 향하는 자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세상에 집착하면 영혼의 때를 보지 못합니다. 영안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데 성공해 날마다 새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예수께서 벳새다에 이르자 사람들이 소경을 데려와 고쳐 주기를 간청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소경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간 다음에 고쳐 주십니다(막8:23). 예수께서 즉석에서 고쳐 주지 않고 마을 밖으로 데려가서 고쳐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벳새다는 예수님의 능력을 많이 목격한 장소입니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고 오히려 배척했기에 예수님은 그곳을 저주하시기도 했습니다(마11:20~22). 그들에게는 권능이 더는 무의미했고 심판만 남아 있을 뿐이어서 예수님은 능력 보이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고침받은 소경에게 마을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8:26). 눈을 뜬 소경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예수님이 베푼 놀라운 이적을 간증하는 일일 텐데 마을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벳새다가 이미 저주를 받아 심판받아야 할 곳이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복음은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거두어질 날도 있습니다. 은혜받을 기회가 거듭 주어졌는데도 믿지 않고 계속 거부하고 주의 일을 훼방한다면 복음을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할 때가 옵니다. 은혜의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면 지금이 바로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고후6:2). 즉시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천국 복음이 전해지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듣게 하려고 우리에게 이적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적을 보여 줘도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적을 보여 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이 떠나가고, 병을 해결받는 사건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또 거기서 더 나가 그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천국 복음을 전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신지 잘 알고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복음을 가지고 가서 예수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쳐 주는 능력을 나타내면서 천국 복음, 죄 사함의 복음을 바르게 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2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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