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순간의 진실, 그리고 영원한 진리

등록날짜 [ 2010-04-12 07:56:15 ]

인간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영적 갈급함 해결 못해
오직 예수만이 ‘진리’, 알지 못하는 이에게 전해야

연인들의 사랑의 서약은 옆에서 지켜보는 이까지 가슴 찡하게 한다. “당신을 정말 사랑합니다!” “나를 믿죠?” 그토록 간절하게 맹세하는 그 순간에도 시간은 흐른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이미 이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뜻한다. 모든 것은 변하고 순간의 진실만이 남는 것이다.

괴테도, 피카소도 여인들과의 뜨거운 연정에서 영감과 에너지를 얻었고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켰지만, 정작 그 사랑은 지속되지 못하였다. 불 같은 사랑도 순간에 머물고 식어간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기에 작품 속에 영원히 간직하기를 원했다. 예술이란 영원한 것을 붙잡으려고 몸부림친 흔적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고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철학, 문학, 수학, 의학, 정치 모든 학문은 불변하는 진리를 찾는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사도 요한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를 전했을 당시 문화적인 충격은 엄청났다. 플라톤 사상의 지배를 받았던 헬라인들은 절대적 진리와 현상세계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영과 육이 하나가 되었던 예수도, 그 예수가 죽고 부활하여 성령이 내 안에 오심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굳은 맹세도, 가치도 순간적임을 아는 우리는 불안 속에 있다. 불안하면 고독해지고, 고독해지면 세상과 단절되는 고통으로 죽고 싶어진다. 세상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을 원하지만, 그것은 영적인 문제인지라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리를,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예수가 오셨다.

철학은 세상 진리를 파헤칠 만큼 파헤쳤으나 생명을 찾지 못하고 깊은 수렁에 빠져 계속 분석하고, 오피니언의 리더가 우상으로 등장했다가 소멸하고, 추종자들이 또 다른 우상을 만들기에 분주하다.

서로 다투고 나누어 놓는 영에 속아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분주하게 몰아가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는 영에게 속아 이제는 길을 가면서도 전화기를 귀에 대고 걸어야 하고 쉴 새 없이 문자를 찍어야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시대가 더 이상 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수 없는 혼동의 시대라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얼굴 없는 논객들이 칼을 휘두르고, 최근 이슈가 된 영화 ‘아바타’처럼 자아를 부인하고 하나의 아바타 뒤에 숨어 아바타로 살기도 한다. 남의 얼굴로, 남의 생각을 말하며, 모든 것이 복제되고, 복제된 상태가 그냥 오리지널이 되어 굳이 오리지널, 즉 기원을 따진다는 것이 무의미한 지경에 이르렀다.

외모, 의상, 헤어뿐 아니라 성격도, 소망도, 삶의 설계도 복제하여 그것이 나인지 아닌지 분간 못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조용한 시간에 찻집에 앉아 “나는 누구지?” 자신에게 물어도 어디까지가 나의 진짜 모습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정체성이 상실된 무서운 현실 앞에서도 가짜의 속임수 마귀는 우리가 그 두려움을 알지 못하도록 우리를 몰고 간다. 이런 영적인 상황을 정확히 안다면, 현실의 상황에 경악하며 빠져나올 것이다.

그러나 지구 상의 어마어마한 다수, 웅성거리는 대중(Mass)은 무서운 속도로 휩쓸려가고 그 물살을 거슬러 방향을 돌린다는 것은 온몸의 비늘이 떨어져 나가고 피를 철철 흘려야 하는 고난의 길일 수도 있다.

인간은 나약하나, 다행히 인간은 생각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생각이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는 순간, 그다음 일은 하나님이 손수 인도하심을 믿을 때 나 같은 죄인도 살리시는 놀라운 역사가 있는 것이다.

빛을 사랑했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정신병원에서도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다. 정신없이 회오리치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뱅뱅 돌며 요동하는 하늘과 별들은 영원한 것을 찾아 헤매었던 몸부림치는 영혼의 흔적이기에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주님을 알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영적 갈급함으로 힘겨워하는 이 땅의 인간들은 주님 보시기에 모두가 긍휼함의 대상이 아니겠는가.

우리, 믿음의 형제들은 천재들의 피나는 노력으로도 알 수 없었던 영적 비밀을 소유하였다. 참으로 엄청난 것을 받아 누리는 것이다. 이 세상 가득한 긍휼함의 대상들을 바라보며 아픈 마음, 주님의 심정으로 달려가서 영원한 진리, 생명의 빛을 전해주어야 한다. 거리에 생명 없는 고목(枯木)들이 빽빽하고, 뿌리가 말씀에서 수액을 공급받지 못한 바싹 마른 가지들은 서로 살짝만 부딪혀도 상처가 나고, 사소한 마찰이 불씨를 일으키는 긴장 속에서 영혼의 때를 생각한다. 생명인 수액이 충분히 공급될 때, 한 입 베어 물면 과즙이 뚝뚝 흐르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것이다.

오늘 하루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영혼이 세상을 떠나고 그 영혼들이 너무 많아 강물처럼, 때론 흩날리는 눈발처럼 음부의 권세로 빨려 들어감을 생각할 때 아, 나는 무엇을 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인가.

위 글은 교회신문 <188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