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감정 노동자가 겪는 고통과 실태

등록날짜 [ 2013-10-15 13:21:09 ]

성장과 편리함도 좋지만 공존의 정신이 더 중요
건강한 사회를 위해 서로 배려하는 마음 지녀야

사회생활을 하는 이상 누구나 하루 한 번 이상은 다양한 서비스 종사자를 만난다. 출근길 지하철역에 있는 도우미(공익)나 역무원, 대형 마트에서 명찰을 단 채 물건을 파는 판매원, 전문 매장에서 상품을 설명하는 안내인, 그리고 가끔 걸려오는 각종 판매나 상담 전화 종사원이 그들이다.

이들을 감정 노동자라 부르는데 이는 고객을 직접 상대하며 민원을 들어주고 직접적 편의를 제공하여 고객을 만족하게 해 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고도 소비사회에서 유통과 서비스업 비중이 늘고 기업이 경영전략에서 고객만족도를 우선시하면서 감정 노동자들이 담당하는 역할이 커진다.

최근 이들이 겪는 다양한 인간적 고통과 문제가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된다. 경제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을지라도 감정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로 여성이고, 고용 상태가 불완전하고 대우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시달리며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겪기 때문이다.

감정 노동은 소비자가 요구하는 바와 각종 불만을 처리해 주는 일이고 한국의 소비문화에서 고객을 왕처럼 대우하는 관념이 관행으로 자리해 이들은 시녀나 심하면 고객이 분풀이할 대상으로 전락한다. 언젠가 비행기 비즈니스석에서 라면을 제대로 끓여 주지 않았다고 승무원을 폭행한 어느 승객의 예가 단적이다. 이 사건을 언론에서 보도한 후, 사회적 비판이 일면서 이슈가 되었지만 지금도 비슷한 일이 종종 벌어지고 이들이 겪는 고통도 심각하다.

최근 한 심리치유기업이 감정 노동자 86명을 대상으로 심리상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 40.7%가 ‘심리적 외상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심리적 외상이란 외부에서 오는 심한 정서적 충격이나 자극 때문에 정신적 고통에 계속 시달리는 증상을 말한다. 이들이 겪은 고통은 주로 극도의 무력감과 두려움, 우울과 분노, 인간적 모멸감과 자존감의 추락 등 다양하지만, 생업 문제로 스트레스를 마음껏 발산할 수도 없고 직장을 그만두기도 어렵다 보니 사태가 더 악화한다.

감정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은 업무가 힘들어서라기보다는 손님이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무조건 들어주고 비위를 맞추면서 항상 로봇처럼 웃으며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하는 비인간적 조건에서 온다. 인간이기에 누구나 감정이 있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화가 나는데 말도 안 되는 요구나 욕을 들어도 감내하고 종처럼 행동해야 하는 점이 이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한국은 예로부터 사농공상 같은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이 심하고 상놈과 양반을 나누는 권위주의 문화가 남아 있다. 여기에 인간의 모든 욕망을 상품화하고 만족하게 해 주려는 첨단 기업문화가 결합하여 소비자주권이 엉뚱하게 변질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들이 서비스 질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세세한 행동요령과 표정관리까지 매뉴얼화하고 직원들을 훈련하고 감시하여 도저히 봐줄 수 없고 상식적이지 않은 이른바 ‘진상손님’의 행패도 늘어간다.

편리함과 무한한 욕구 충족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서비스 노동은 갈수록 증가하는데 이제 성장과 편리함도 중요하지만 공존의 정신으로 이들을 배려해야 한다. 간도 쓸개도 빼놓고 고객 비위를 맞춰야 하는 감정 노동자들도 우리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착취하고 내 욕구를 방출하는 쓰레기통처럼 타인을 취급하며 왕처럼 군림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혹시 나는 부지불식간에 누군가에게 평생 잊지 못할 상처나 좌절을 안겨주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찐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눅17:2).


/김 석 집사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現 건국대 자율전공학부 교수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위 글은 교회신문 <35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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