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다문화 시대 편견을 벗고 하나를 이루자

등록날짜 [ 2013-07-16 09:17:41 ]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인종 차별적인 태도 바로잡아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모든 사람 포용할 자세 갖춰야

국어사전에서 ‘편견’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한쪽으로 치우친 공정하지 못한 생각이나 견해’라고 나온다. 편견은 감정이나 가치관을 개입해 사태를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으로, 판단 과정에서 오류를 범하는 착각과는 본질이 다르다. 착각은 자주 경험하는 현상이며 쉽게 바로잡히지만, 편견에 빠진 사람은 정보가 정확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무시하고 곡해해서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편견은 어떻게 보면 의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 편견은 개인적 현상이지만 그것을 낳은 사회적 배경이 있으며, 편견을 당연시하는 문화에서 사람들은 쉽게 편견에 사로잡힌다. 대표적인 예가 인종 편견이다. 미국에서 노예제가 한창일 때 아주 신실한 사람들조차 흑인은 사람이 아니며, 노예제는 도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극단적인 사람들은 심지어 흑인을 가축처럼 다루고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것도 하나님 뜻이라고 왜곡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최초로 흑인 출신 대통령까지 나왔지만, 인종 편견은 여전히 은밀하게 사람들 의식을 지배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 심리학자가 시민을 대상으로 실험해 보았다. 시민이 경찰관이 되어, 스크린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무장했을 때 먼저 발포하는 실험이었다. 상대방이 총을 뽑을 수도, 단순히 지갑이나 개인 용품을 뽑을 수도 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잘 판단해야 한다. 실험 결과, 스크린에 나타난 사람이 흑인 남자면 무조건 총을 먼저 뽑아 응사하는 비율이 높았는데, 이것은 흑인에 대한 무의식적인 편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리는 우리는 이러한 인종 편견에서 자유로울까? 우리나라도 이미 외국인이 100만 명을 넘어서며 실질적인 다문화 시대가 열렸으며, 우리 주변에서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외국인을 빈번하게 접한다. 연세중앙교회에도 많은 외국인 신자가 있다. 하지만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의 외국인들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에는 편견과 우월의식이 많아 보인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 백인에게는 너그럽고 심지어 친절함이 지나쳐 아부하듯 보이는 예도 있다.

모 방송국에서 동남아 출신 외국인과 호주 출신 외국인이 지도를 들고 길을 물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알아보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똑같은 외국인이고 영어를 사용했지만 동남아 출신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들은 아주 드물었다. 반면 금발 백인에게는 손짓 발짓에 서툰 영어로 길을 가르쳐 주려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한국인의 이중성을 잘 보여 주는 씁쓸한 실험이었다.

동남아 출신이 이주 노동자로 오는 경우가 많아 한국인들은 이들을 하층민처럼 무심코 깔보는 경우가 많다. 한국 여성이 흑인이나 아시아 출신 외국인과 길을 가거나 버스를 타면 대놓고 욕을 하거나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흔하다. 심지어 같은 동포인 조선족이나 탈북민에게도 근거 없는 편견으로 이들을 마치 범죄 집단처럼 매도하거나 적대시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제 세계는 국제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으며, 취업, 교육, 결혼 같은 다양한 이유로 한국에 정착하는 외국인이 점점 늘고 있다. 사람은 몸이 커지면 옷을 바꿔입어야 하듯, 이제 우리도 열린 태도와 관용으로 외국인들을 따뜻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 편견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객관적 정보가 부족해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편견이 자리 잡으면 서로 융합해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편견에서 벗어나려는 지혜와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이기 때문이다(갈3:28).


/김 석 집사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現 건국대 자율전공학부 교수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위 글은 교회신문 <34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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