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갑질 파문’ 반면교사 교훈으로 삼아야

등록날짜 [ 2018-05-04 18:01:57 ]

사회지도층 갑질 행태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 커


기독교 정신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한
유일한 선생의 경영 윤리
갑질 만연한 우리 사회에  따뜻한 귀감


“약한 자를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잠22:22).

요즘 우리 사회에 권력과 돈을 가진 자, 이른바 금수저들의 일탈 행태가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더구나 H그룹 회장 일가가 일으킨 파문은 또다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연일 보도되는 이들의 행태는 그 단초가 회장 딸의 ‘물컵’ 사건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더욱이 딸에 이어 어머니(회장 부인)의 비상식적인 언동으로 파문이 커진 상황이다. 직원들의 SNS 단톡방에 회장 일가의 일탈 사례가 계속 올라와 파장이 확산될 모양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영상 증거물과 증언에서 알 수 있듯이 공사 관계자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운전기사에게는 욕설을 퍼붓고, 외국 직원에게 뜨거운 탕이 든 뚝배기를 던져 맞힐 뻔 했다는 보도 내용은 기가 찰 노릇이다. 이 정도면 가히 기행(奇行)이 아니겠는가. 오죽했으면, 4년 전 기내에서 땅콩 서비스를 문제 삼아 비행기를 회항시켰던 사례는 애교 수준으로 봐야 한다고 비아냥댈까 싶다.

이번 사태는 범죄행위에 대한 폭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국은 갑질만큼이나 밀수와 탈세가 일상적으로 행해진 것으로 보고 전방위적인 조사를 진행 중이다. 갑질 파문에 범죄·비리 의혹까지 더해 국민의 비난과 공분(公憤)은 걷잡을 수 없다. 국민이 납득할 수준의 처벌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이유다.

한편에선 총수 일가가 기업의 가치를 훼손했다면 소액주주들이 경영진 교체에 나설 조짐이다. 또 세계에 웃음거리로 전락한 국적기의 망가진 이미지가 대한민국의 위상에도 영향을 끼칠까 염려하는 여론도 일고 있다. 그 항공사에 대한민국 국호(國號)를 나타내는 명칭을 더 이상 사용치 못하게 하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쇄도하고 있음이 이를 방증한다. 국회에서도 이런 여론을 의식하여 입법적으로 나설 태세다. 항공 관련법을 고쳐서라도 사업자의 명칭에 대한민국 국호나 이와 유사한 문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항공 사업자의 면허 결격사유를 강화해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일탈 행동은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재벌 총수 일가의 봉건적 인식 체계와 안하무인적 인성에서 비롯됐음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이들의 일탈에 국민이 느끼는 분노와 허탈감은 차치하고서라도, 직원들이 겪은 고통과 모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고, 직장 내 사기진작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상호존중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조직 구성원에 대한 왜곡된 의식과 비상식적 행태를 보인 데 대해 통렬한 자성을 보여야 한다.

이번 갑질이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을 고려할 때, 권력과 부를 가진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언행은 참으로 중요함을 실감한다. 이런 갑질 파문을 계기로 우리나라 재벌과 기업 경영진들은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역대 가장 윤리적인 기업가로 불리는 故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의 경영 정신을 되새겨볼만 하다. 독립운동가이며 기독교인인 유일한 선생은 기업을 경영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몸소 실천한 모범 기업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주식을 모두 학교에 기증하고 아들에게는 대학까지 공부를 가르쳤으니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라는 유서를 남겼다. 또 가족과 친인척을 회사 경영에서 배제하고,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조직 구성원들을 소중히 했다고 한다.

요컨대, 우리나라 재벌들이 냉철한 상황 인식으로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는 한편, 유일한 선생의 높은 경영 윤리를 본보기로 하여 차제에는 반인권적이고 비상식적인 갑질 행태가 재발하지 않고, 상호존중과 따뜻함이 넘치는 직장 문화가 뿌리내리길 바란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문심명 집사
국회사무처 근무 / 27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57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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