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수렁에 빠진 한국 외교…미·북 모두 외면
강력한 한미동맹 기반 비핵화 압박해야

등록날짜 [ 2019-04-18 17:16:20 ]

트럼프 “대북제재 현 상태 유지가 적절
개성공단 재가동 지금은 적기 아냐”
북한 “한국은 중재자 아닌 플레이어”
이젠 근본적 전환점 모색해야 할 시기
강력한 한미동맹 기반 비핵화 압박해야


공동성명이나 공동보도문도 없었다. 대대적으로 공들여 준비했던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행사까지 총리에게 맡기고 1박 3일 일정으로 워싱턴까지 날아갔지만 성과는 없다. 사실상 단계적 비핵화를 의미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 충분히 좋은 합의)’에 트럼프 대통령은 ‘올바른 합의(right deal)’를 해야 한다며 단칼에 잘라 버렸다. 지금은 빅딜을 이야기할 때라고 했다. 그러면서 금강산 관광 재개, 개성공단 재가동은 지금이 적기가 아니며 대북 제재는 현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冒頭) 발언에서 한국이 무기를 사 준 것에 대해서만 고맙다고 인사했다. 정상회담이었지만 실제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단독 면담은 2분에 불과했으며 이마저도 의자를 정리하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사실상 단독회담이 없었던 셈이다.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왜 미국에 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외교 참사라는 이야기가 또 나온다.

청와대는 이런 정상회담 일정을 모르고 갔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4월 11일이라는 날짜도, 정상회담 일정과 형식도 모두 미국 측에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적인 정상회담이었다면 가장 핵심적인 시간인 11일 오전에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어야 했다. 하지만 미국 측은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볼턴 안보보좌관 등 참모들과 문재인 대통령이 만나도록 했다. 그것도 예정에 없던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 등 4명이 더 들어와 인원이 늘어나는 바람에 심도 있는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과는 부부 동반으로 오찬을 했다. 정상 간 심도 있는 일대일 대화도, 만찬도, 공동성명도 없었으니 정상회담이라고 부르기가 무색할 지경이다. 한마디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을 밥만 먹여 보낸 셈이 됐다.


이번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은 예정에 없던 것이었다. 누가 먼저 요청했는지 공식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외교가에서는 청와대 측에서 먼저 요구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초청했다면 정상회담이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미국 주류 언론들과 국내 언론들이 외교적 결례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했을 것이다. 정황상 청와대가 정상회담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이라며 마치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먼저 부른 듯한 뉘앙스로 포장했다. 또 이번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의 판박이를 보는 느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을 모두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지난달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 국무부 관계자는 우리 외교부에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를 언급할 거면 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도 갔으니 이런 결과는 예견된 것이었다.


김정은은 이런 때 미국을 비난하며 장기전 태세를 갖추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톱다운(TOP DOWN) 방식과 단계적 비핵화 등 북한 입장을 설득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태도다. 김정은은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날인 1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4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북한의 최고의사결정 기구는 당 대회지만 언제 열릴지 기약이 없으니 매년 열리는 당 중앙위 전원회의가 사실상 최고 지도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자력갱생’을 외쳤다. 비핵화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미국은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되어 오판하는 적대세력”이라며 비난했다. 더는 미국과 대화하는 데 목매지 않고 제 갈 길 가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김정은이 러시아의 지원을 기대하며 장기전으로 가려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강력한 제재 아래서 장기전은 북한에 불리할 뿐이다. 더구나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달 15일 “한국은 워싱턴의 동맹이며 중재자가 아닌 플레이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론을 거부한 바 있다. 이제 한국 외교는 근본적인 전환점을 모색해야 할 시기다. 미국과 북한 모두에게 외면당하기보다는 강력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북한 비핵화를 압박해야 할 시기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620호> 기사입니다.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기자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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