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영적 분별이 절실한 시대
성경을 삶의 기준 삼고 기도로 무장해야

등록날짜 [ 2019-04-23 14:18:53 ]

군중심리가 작동하면 옳고 그름은 뒷전
나쁜 쪽으로 치달으면 무서운 결과 초래
나의 생각과 행위에 악성 틈타지 않도록
성경을 삶의 기준 삼고 기도로 무장해야


사람들은 다수가 선택한 대로 따르려는 속성이 있다. 다시 말해, 여러 사람 속에 있는 개인이 어떤 행동을 할 때, 타당성을 고민하지 않고 다수 의사에 따르거나 동조하는 경향을 띤다. ‘군중심리’는 이를 두고 나온 말이다. 간단한 예로, 횡단보도에 빨간 불이 켜졌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무단 횡단하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건너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행동인 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다수를 따르는 게 내게 득이 된다’는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군중심리가 작동하면, 군중의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 헤아리지 않거나 설령 그르다고 판단해도 무시하기 일쑤다. 집단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영향을 받아 다수의 의사와 행동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거나 동조·방관하게 된다는 것이다. 군중심리를 최초로 이론화한 사람은 프랑스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 봉이다. 귀족 집안 출신인 그는 프랑스 혁명이 한창일 때 평민들이 무리지어 습격하는 충동적·비이성적인 모습을 보며 자랐다. 프랑스 혁명 성공과는 역설적이게도, 당시 부화뇌동하는 민중을 부정적 시각으로 담아 『군중심리』라는 책을 썼는데, 엄청난 비판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고 한다.

『군중심리』에 따르면, 군중은 전체의 힘과 자신의 힘을 동일시하는 착각에 빠져 혼자서는 저지를 수 없는 행위를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식 없이 영웅적으로 행한다고 한다. 군중 속에 있는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소멸한 채 우세한 집단 논리와 명분에 갇히게 되고, 사리 분별하는 자기 행동이 자칫 군중에 따돌림을 받거나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 까하는 염려가 의식체계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강한 ‘사회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개인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자신이 소속된 무리 안에서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 무리 속에 포함되려는 동기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주목할 점은, 군중심리가 ‘악(惡)’을 행하는 쪽으로 치달으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을 유발한 ‘파시즘’을 예로 들 수 있다.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 후에 나타난 극단적인 전체주의적·배타적 정치 이념체제다. 독일과 이탈리아 등지에서 파시즘에 전염된 군중심리가 집단적 광기로 번졌다.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쓴 『파시즘』에 따르면, “히틀러의 새 질서(new order)가 손닿는 곳 어디든 나치 축제의 엄청난 열기로 마음을 들뜨게 했다”고 파시스트가 아니었던 한 독일 여성의 일화를 언급한다. 당시 파시즘에 환호한 독일 국민의 뒤틀린 집단사고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말살 정책은 그릇된 집단사고사례 중 최악이다. 600만 명이 희생당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는 히틀러의 명령에 응한 군부의 맹목적인 복종과 집단적 동조가 낳은 전무후무한 비극이었다.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독일군 장교는 유대인 학살의 집단 광기에 취해 수많은 유대인을 폴란드 수용소로 이송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는 유럽 각지에 사는 유대인들을 색출해 가스실로 실어 나르는 데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악행에 동참했다. 유대인 작가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보면, 법정에 선 그는 “상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면 오히려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고 진술해 뻔뻔함과 가증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처럼 집단 최면에 걸린듯 한 군중심리의 무서운 속성을 고려하면, 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수많은 무리에 섞여 살아갈 때 각 개인이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해야 하는지를 깊이 되새기게 한다.

마가복음에는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예수의 무죄를 확신하면서도 군중심리를 두려워해 풀어주기를 주저하다 분별력을 상실한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라고 말한 뒤, 예수를 유대 무리에 넘겨주고 만다. 세상 사람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삶 속에서 크리스천은 불의한 군중심리와 집단사고에 휘둘리지 않게 영적 분별과 사리판단을 잃지 않아야 하겠다. 나의 생각과 행위에 ‘악성(惡性)’이 틈타지 않도록 늘 성경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기도로 무장하자.

위 글은 교회신문 <621호> 기사입니다.


문심명 집사
국회사무처 근무
29남전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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