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정치인의 소명(召命)은 무엇인가

등록날짜 [ 2019-08-19 12:39:12 ]

정치인은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갖추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과 행위에 대한
결과에 책임질 줄 아는 균형적 판단 필요
국민에게 어떤 영향 미칠지 늘 고민해야


사회가 날로 복잡다기해짐에 따라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 국민의 권익 증진에 필요한 법·제도를 세워야 하고, 나라 밖으로는 지혜롭게 외교를 펼쳐 국제 협력을 도모하면서도 자국의 실리를 추구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하는 시기를 맞았다. 이런 시기에는 국가 운영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가 올바로 실현돼야 한다. 특히 그 중심에 있는 ‘정치인’의 소명과 책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현실 정치에서 이것을 온전히 펼쳐 나가기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재선을 위해 당장 유권자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어 재임 기간 성과를 내야 하고, 자신이 추진하는 법과 정책에 반대하는 당과 이해관계자를 상대로 설득과 타협의 결과를 거둬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 목표를 추구하다가 윤리적 딜레마에 놓인다거나, 애초 도덕적으로 훌륭한 동기에서 출발한 정치적 행위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상정해야 한다. 좋은 의도로 한 의사결정과 행위가 자칫 국민에게 불행을 안겨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정치가 오죽 어려우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물리학이 정치보다 쉽다’라고 했을까.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100년 전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자질을 설파했다. 이는 한국의 정치 현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베버는『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책에서 정치인의 자질로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꼽았다. 정치인의 ‘열정’은 정치적 대표성에 헌신하는 태도를 말하고, ‘책임감’은 그 정치적 대표성에 책임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어떤 대의(大義)에 뜨거운 확신을 갖고 있지만 책임감이라는 자질로 통제되고 조절되지 않으면 위험하고 파괴적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를 단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균형감각’인데, 균형감각은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 즉 사람과 사물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특히 베버는 책임의식을 강조하면서 정치와 윤리를 통찰했는데, 정치인의 윤리를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로 구분 짓고 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 ‘신념윤리’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일관되게 고수하고 이러한 신념의 토대 위에 정치적인 결정과 행위를 하는 윤리원칙을 말한다. 이것의 단점은 자칫 순수한 신념에서 한 정치적 행위가 가져올 수 있는 나쁜 결과는 도외시하고,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돌린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책임윤리’는 정치적 결정과 행위의 결과를 늘 예견하려 하고, 그 결과에 어떠한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윤리원칙이다. 현실적으로 정치는 ‘결과’로 책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책임윤리는 그 누구보다 정치인에게 특별히 필요한 자질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베버는 직업정치인은 신념윤리적 태도를 갖되,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책임윤리적 자질을  반드시 함께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이 두 가지 윤리 원칙을 함께 준수할 수 있어야 정치에 대한 소명을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실제 정치 현장에서는 정치인이 신념윤리를 지키면서 행위의 결과에도 책임을 지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부조화라는 윤리적 역설, 바꿔 말하면 ‘원칙’과 ‘타협’ 사이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지 갈등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대목이다. 정치인이 신념윤리가로서 원칙만 강조한 채 타협하지 않으면 독선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고, 책임윤리적 입장에서는 국민의 권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아무렇게나 타협하면 소신도 없고 지조도 없는 정치인으로 지탄받을 수도 있다.


요컨대, 정치적 의사결정과 행위를 할 때 위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적으로 취해서는 안 되고,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늘 고민하는 가운데 양자의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이는 베버가 말하는 ‘소명을 가진 정치인’, 즉 현명하고 훌륭한 정치인의 덕목에 부합한다고 본다. 일본의 수출규제, 미중 환율전쟁 여파로 인한 경제문제 등 극복해야 할 국가적 현안들을 두고 책임 있는 자세로 국정에 헌신하고 정치 역량을 결집해야 하는 시기인 만큼, 베버의 충고가 우리 위정자의 소임과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위 글은 교회신문 <637호> 기사입니다.


문심명 집사
국회사무처 근무
29남전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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