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기대하며
‘김일성’에게조차 손정도 목사는 참 기독교인으로 남아

등록날짜 [ 2008-04-16 10:12:57 ]

지난 3월에 방송된 SBS TV ‘세상에 이런 일이’의 ‘100원 아저씨’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4년 넘게 매일 같은 때에 독거노인들의 집 앞에 100원을 놓고 근처 전철역 노숙자들에겐 도시락과 빵을 먹였습니다. 그 이유는 “내 형제 중 먼저 죽은 장애인 동생들을 생각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도우며 살아야겠다”는 결단이었답니다. 네 모녀를 무참히 살해하고 자살한 전 프로야구선수 이모씨, 안양 초등학생 두 여아를 엽기적으로 살해한 정모씨의 사건이 일어난 이 무서운 세상 속에서 ‘100원 아저씨’의 선행 소식은 목마른 사슴이 샘물을 만난 듯한 안도감을 사람들 마음에 삼투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보훈처가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한 인물이 필자에겐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줍니다. 손정도 목사! 4월의 인물이 목사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의 행적과 그가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맺은 인연이 필자의 마음을 더욱 끌어당깁니다.
조선 최초 선교사로 중국에 파견된 손정도 목사는 선교활동을 하며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습니다. 귀국했으나 광화문 소재 ‘정동교회’에 부목사로 있으며 유관순 등의 수많은 독립투사를 배출한 탓에 북간도로 강제 추방당했지요. 그러나 그곳에서 손 목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의정원 의장을 비롯해 김구, 여운형과 노병회를 결성했고 의용단도 조직했습니다. 그 후 임정을 떠나 쑹화강 중류의 지린에서 복음 전파에 몰입하던 손 목사는 자신이 졸업한 숭실학교 동문 김형직의 아들 김일성을 만납니다. 그리고 당시 부친을 잃은 어린 김일성을 친자식처럼 돌보며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은 손 목사를 떠났고 1931년 2월, 옥고 후유증 탓에 서거하는 손 목사의 가슴에 회한으로 남았습니다.
손 목사에 대한 김일성의 감정은 그의 생전 회고록(총 8권) 2권 맨 앞부분의 ‘손정도 목사’라는 제목의 글 속에 잘 담겨 있지요.“손 목사는 신앙심이 깊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그를 통해 본 기독교는 언제나 독립운동과 함께했고, 그의 삶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라고 김일성은 밝혔습니다.
조선의 ‘예루살렘’이 있는 북한 땅에서 종교를 몰아내고 세계에서 유례없는 ‘1인 독재우상화 정권’을 49년 동안 지배함으로 남긴 ‘세계 최고 인권 유린 국가며 가난한 국가’ 북조선 인민공화국의 ‘태조신’ 김일성에게도 복음전파와 국가 독립에 생을 바친 손정도 목사만큼은 참 기독교인으로 남았나 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라”(약1:27) 총선이 끝나고 기독교인 대통령과 수많은 기독교인으로 채워진 국회가 선 한국 땅에서 손정도 목사처럼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경건한 공복(公僕)이 선사할 돌봄과 섬김의 감동을 기대하는 것, 지나친 욕심은 아니겠지요?

위 글은 교회신문 <13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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