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9)]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와 첫 이적의 현장

등록날짜 [ 2015-09-01 14:19:07 ]

감람산 위에 세워진 주기도문교회. 이곳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셨고, 이 세상 말기에 나타날 징조를 설파하셨다. 주기도문교회는 4세기에 콘스탄틴 대제가 처음 지었으나 614년 페르시아군이 파괴했고, 십자군이 12세기에 재건했으며, 1864년에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른다. 주기도문은 한국어를 포함한 111개국 언어로 세라믹판에 새겨 현재 교회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주기도문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의 관심사가 연결돼 있다는 점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주기도문교회 한 벽면에 있는 한국어 주기도문(감람산에 위치).


 

주기도문교회 지하에는 예수께서 기도하신 자리로 추정하는 곳이 보존되어 있다. 우리가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은 오직 기도뿐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다. 예수께서 가르쳐 준 주기도문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만남임을 알린, 새로운 가르침이었다.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주기도문교회는 감람산에 있습니다. 그리 큰 산이 아닌데도 감람산에는 주기도문교회 외에도 만국교회(겟세마네교회), 눈물교회(통곡교회), 승천교회가 가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활동하셨던 중요 지역인 감람산을 소개해 주십시오.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감람산을 찾은 성지순례객들은 다 놀랍니다. 생각보다 규모가 무척 작기 때문이지요. 예루살렘 성벽 쪽에서 감람산 전경을 바라보면, 감람산 전체가 예수님이 활동하신 유적지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에서 겟세마네 동산까지는 직선거리로 250m밖에 안 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스데반 문까지 거리는 400m 이내입니다.

 

한두 시간이면 감람산 전체를 충분히 둘러볼 수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점은 감람산 전체를 맞은편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곳이 감람산 서쪽 겟세마네 동산에 있는 만국교회입니다. 감람산 꼭대기 부근에는 승천교회, 그 아래에는 주기도문교회가 있습니다. 감람산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기도하시고 기도를 가르치셨던 곳으로 ‘기도의 산’이라는 별명을 붙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께서 활동한 감람산 지역은 좁지만, 그곳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분이 주님이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실 분도 주님이시기에, 이미 응답을 손에 쥐고 하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주기도문의 배경과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조경철 교수(감리교 신학대학교 신약학): 주기도문을 살펴보면, 기도 6개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3개씩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부분 기도 3개는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나라가 임하시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옵소서”라는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에 관한 기도입니다. 뒷부분 기도 3개는 ‘우리’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도는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기초적인 내용들입니다. ‘일용할 양식’은 경제적인 면에서, ‘용서’는 인간관계에서, ‘시험’은 종교적.도덕적 측면에서 기초적입니다.

 

더 나아가서 ‘기도’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 아뢰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즉, 일용할 양식, 용서, 시험에 들지 않음이 인간답고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기본적 요소이지만, 그것마저도 인간이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 의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기도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가르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적을 기념하여 세운 가나이적기념교회. 이곳은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공적 신분으로 출발하면서 처음으로 이적을 나타내신 중요한 장소다.

 

예수께서는 나다나엘을 제자로 맞으신 지 사흘 후, 나다나엘의 고향 가나에서 열린 혼인잔치에 제자들과 함께 초대된다. 연회 중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어머니께 전해 들은 예수께서는 돌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가득 채우게 하여 질 좋은 포도주를 만드셨다. 포도주를 맛본 연회장은 신랑을 불러 물었다. “이렇게 훌륭한 포도주를 먼저 내놓지 왜 나중에 내놓느냐?” 교회 지하에는 당시 돌항아리를 연상케 하는 옛 포도주 항아리가 있다. 이 사건으로 제자들은 믿음이 굳건해졌다.

 

윤석전 목사: 가나 혼인잔치 집의 이적, 즉 맹물이 포도주로 변한 일은 예수님의 공생애 출발을 알리는 사건으로, 아마 그 시대 사람들이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성장할 때는 누가 봐도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었지 하나님의 아들로 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타난 첫 이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첫 이적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나 혼인잔치에서 이적을 일으키셨던 시대에 흔히 사용하던 돌항아리. 가나이적기념교회에 보존되어 있다.


 

조경철 교수(감리교 신학대학교 신약학): 포도주 사건의 의미는 요한복음 2장 1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 가지 신학적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2:11).

 

첫째, ‘그 영광’이라고 언급한 구절에서 알 수 있듯, ‘예수가 누구냐’ 하는 예수님의 본질을 드러냈다는 점입니다. 예수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이 사건은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물을 포도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즉,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서 예수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알리신 것이 첫째 신학적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고 하는 마지막 구절은 표적 혹은 이적을 보는 성도의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성도는 물이 포도주로 변한 신기한 사건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건을 넘어, 사건을 일으킨 분이 누구인지를 바로 알고, 보고, 믿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표적을 넘어 그 이적을 일으키신 분, 즉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습니다.

 

셋째, 포도주 사건은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에 대한 절대 순종을 나타냅니다. “물을 붓고 그것을 연회장에 갖다 주라”는 말에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 아들에게 순종할 때 엄청난 이적이 일어난다는 것이 가나 혼인잔치 사건의 신학적 의미입니다.

 

 

감람산 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 베다니. 예루살렘에서 약 3km 떨어져 있는데 ‘가난한 자의 집’이라는 뜻답게 하류층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베다니는 유대광야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목으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으로 쉬신 곳이며, 죽은 나사로를 살려 내신 위대한 이적의 터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예수께서는 죽어 무덤에 놓인 지 사흘이나 지난 나사로를 살리셨다.

 

나사로의 무덤으로 내려가는 통로는 좁고, 경사가 급한 계단으로 되어 있다. 통로는 무덤으로 사용된 굴 윗부분 두꺼운 바위를 파내서 만들었다고 한다. 계단을 지나 체구가 작은 사람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만 입구를 통과하면, 바로 나사로의 주검이 있던 자리에 다다른다.

“나사로야, 나오라!”

 

예수님의 외침은 죽음의 위력을 뚫고 나사로를 생명의 세계로 끌어올렸다. 이 외침은 예수님이 생명과 부활이시라는 것과 믿는 자들은 죽음에서 살아날 수 있다는 점을 온 천하에 선포한 대사건이었다.

 

 
 

윤석전 목사: 나사로가 살던 베다니에서 여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베다니라는 동네는 어떤 곳인지 말씀해 주세요.

베다니 마을(감람산 동쪽).


 

홍순화 원장: ‘베다니’라고 하면 예수께서 침례를 받은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말하는 ‘베다니’와는 동명이지(同名異地)입니다. 나사로가 살던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직선거리로 3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감람산 동쪽 끝을 돌면 나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워서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갈 수 있습니다. 베다니는 예수님의 이적 때문에 아랍인에게 ‘나사로의 마을’이라고 불리며, 세상에서 가장 귀한 동네가 되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나사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살아난 사건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렸다’는 사실로 ‘예수님이 능력이 있는 분이다’라고만 알 뿐, 그 이상은 잘 모릅니다. 나사로의 사건에서 어떤 신학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조경철 교수: 가나 포도주 사건처럼, 죽은 나사로를 살린 사건에서도 결국 ‘예수가 누구냐’ 하는 것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 사실을 잘 이해하려면 요한복음의 서술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은 먼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이적을 서술하고 뒤이어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의 정체를 밝혀 줍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행한 ‘오병이어의 이적’을 서술한 다음,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정체를 밝힙니다. 또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소경을 고치는 이적’을 이야기한 후, 곧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라고 그분의 정체를 밝힙니다. ‘나사로 사건’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나사로를 살린 사건 서술 후,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밝힙니다. 열대지방에서 죽은 지 나흘이면 시체가 썩어서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그 냄새나는 시체를 누가, 어떤 묘약으로 살려 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한 분 외에는 그런 이적을 행할 자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나사로 사건’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가는 곳에는 죽음의 세력이 물러나고 생명이 꽃핀다, 그러기에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나사로 무덤 입구.


 

윤석전 목사: 나사로가 무덤에서 부활해서 살아났지만 그 이후 나사로가 어떻게 살았다는 얘기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혹시 나사로와 관련한 이야기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원장: 터키 아래쪽에 ‘구브로 섬’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 여행을 한 지역입니다(행13:4~12). 지금은 ‘키프로스 섬’이라고 합니다. 구브로 남쪽 ‘나르나카’라는 곳에 나사로의 무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 봤더니 ‘나사로 무덤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 지하에 내려갔더니 나사로의 무덤이라는 석관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곳에 얽힌 전승은 이렇습니다.

 

나사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살려 주시자, 그냥 있을 수 없어서 멀리 구브로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당시는 기독교인이 핍박받던 때라 초대 교인들이 뿔뿔이 흩어져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나사로도 ‘구원받았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이곳까지 와서 복음을 전하다가 바로 여기서 죽었구나’ 하는 생각에 엄청나게 감동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나사로의 무덤을 확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옵니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축복은 하나님 말씀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 말씀에는 순종할 때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축복의 이적이 있습니다. 어떤 불가능이 있습니까? 오늘도 기도로 순종하고, 말씀으로 순종해서 문제를 해결해 행복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4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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