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22) l 시리아 편(5)] 솔로몬이 사막에 건축한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

등록날짜 [ 2018-10-22 17:51:23 ]

11세기 대지진으로 사라졌다 1930년부터 발굴
발굴 유적 중 벨, 느보, 바알 등 신전 터 많아

‘마룰라’는 이슬람 지역인데도 기독교 도시
예수님 사용하신 아람어 세계 유일하게 사용
아람어 번역 성경 ‘탈굼’ 이해에 중요한 역할


윤석전 목사: 이번에 만나 볼 성지는 팔미라(Pal-myra)입니다. 솔로몬이 사막에 건축한 도시 ‘다드몰’로 알려진 ‘팔미라’는 오아시스 덕분에 일찍이 발전해 부유했지만, 대지진이 일어나 폐허가 됐습니다. 수백 년 전 그곳, 팔미라로 가 보겠습니다.

다메섹 동쪽 사막 지대를 향해 달리면 사막 한가운데 고대부터 교역 중심지였던 팔미라 유적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발굴된 로마식 유적은 로마 시대 당시 팔미라가 사막 거상(巨商)의 경유지며, 동서를 잇는 교역 도시였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팔미라가 교역 도시로 성장한 이유는 오아시스 덕분이었다. 사막 거상들에게는 물이 필수품이었기에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는 거상들의 주요 중간 교역지가 돼 부유한 도시로 성장했다. 솔로몬은 당시 ‘다드몰’이라 부른 이 땅에 로마보다 1000년 일찍 도시를 세웠다. 솔로몬이 다드몰의 가치를 간파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땅에 거대하게 서 있는 벨(Bel) 신전이 말해 주듯 다드몰은 우상을 섬겼고 11세기에 지진으로 땅속에 묻혔다.

<사진설명> [팔미라 전경] ‘사막의 신부’ ‘오아시스 도시’라 불렀던 팔미라는 시리아 사막 중간에 있어 군사적 전략 요충지이자 다양하고 값비싼 물건들을 모으는 중간 집산지(集散地)로 크게 발전했다. A.D. 105년~106년, 트라야누스(Trajanus) 로마 황제가 팔미라를 아라비아의 새로운 주(州)로 통합하고, 나바테아(Nabatea)를 병합하면서 교역 기능을 상실한 페트라를 대신해 동방 무역을 관장하는 속주가 됐다. 팔미라는 A.D. 11세기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모래 속으로 사라져 900년 동안 사람들에게 잊혔다가 1930년 발굴을 시작해 현재까지도 발굴되고 있다.

<사진설명> [팔미라, 마룰라 지도 ] 다메섹 동쪽 230km에 있는 팔미라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에 거대하게 형성되어 고대 상인들에게 사막의 항구와 같은 역할을 했다. 팔미라는 로마 시대에 크게 번성했는데, 솔로몬은 그보다 1000년 전에 이곳의 교역상 중요성을 알고 도시를 건설했다. 마룰라는 다마스커스 북동쪽 칼라문 산지 중턱 바위산에 자리 잡은 ‘아람어’를 사용하는 세계 유일의 도시다. 대부분 기독교인 마룰라 주민은 오랜 세월 문화와 믿음의 순수성을 지켜 내고 있다. 

윤석전 목사: 팔미라는 어떤 곳인가요?

오택현 교수: 팔미라는 다메섹에서 230km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입니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에 거대한 도시가 형성돼 고대 상인들에게 사막의 항구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이름이 ‘대추야자’라는 뜻인 팔미라는 무성한 대추야자나무 숲이 있어 사람들이 도시를 형성해 살면서, 아라비아 같은 먼 지역에서 사막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물과 그늘을 제공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구약 성경에는 ‘팔미라’가 ‘다드몰’이라고 나오는데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우택주 교수: 열왕기하 9장, 역대하 8장에 솔로몬이 사막에 다드몰을 건설했다고 기록됐습니다. 다드몰은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였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도시는 로마 시대 크게 번성했는데 솔로몬은 그보다 1000년 전에 이곳의 교역상 중요성을 알고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팔미라가 로마 시대에 크게 발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택현 교수: 교역할 만한 물건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로마 시대에 팔미라는 이 시기에 교역 기능을 상실한 페트라를 대신해서 향로길의 중간 집산지로서 크게 발전했습니다. 지리상 팔미라는 다메섹이나 이집트의 값비싼 향을 많이 모을 수 있었기 때문에 거대한 무역도시가 됐습니다. 또 교통 중심지 역할을 했기에 로마군대가 주둔해 상인들의 안전을 도모해 주고 그 대가로 통과세를 요구했습니다. 또 팔미라에 머문 기간만큼 과중한 세금을 부과합니다. 이런 특징 덕에 팔미라가 거대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도시가 커지면서 거상이 늘어났는데, 이는 팔미라가 로마 시대 거대한 상업 도시로 발전하게 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팔미라가 성서의 신앙과 중요한 연관을 짓는 부분이 있다는데, 설명해 주세요.

우택주 교수: 팔미라 문헌과 언어가 성서 연구에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구약 성서 아모스서 6장 7절을 우리말로 ‘떠드는 소리’로 번역합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마르제악’인데, 팔미라 문헌에는 그리스어로 ‘심포지엄(συμπόσιο)’이라 번역했습니다. ‘심포지엄’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마르제악’ 단어의 정확한 뜻을 몰라 학자 사이에 갑론을박이 심합니다. 이 단어를 ‘의견을 나누거나’ ‘술잔치’라는 뜻의 ‘심포지엄’ 번역으로 추측할 때, ‘마르제악’은 ‘죽은 자를 추모하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이는 신약 시대 예수님의 죽음을 예고하고 기념하는 ‘최후의 만찬’을 뜻합니다. ‘마르제악’이라는 단어가 팔미라의 문헌을 통해서 ‘심포지엄’으로 번역되고 이것이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과 연결되기 때문에 팔미라의 기록이 구약 세계와 신약 세계를 연결해 주고, 또 죽음을 각오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교제를 가리키는 언어로 번역했기 때문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윤석전 목사: 팔미라가 잊힌 도시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택현 교수: 팔미라는 A.D. 11세기에 팔미라와 그 주변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모래 속으로 사라져 900년 정도 사람들에게 잊혔다가 1930년 발굴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발굴된 유물 중에는 벨, 느보, 바알 등의 신전 터가 많습니다. 먼 길을 다니는 상인들이 각 나라의 강력한 신들에게 보호받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또 원형극장이나 상점 터, 아고라 터 등 많은 유적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사진설명> [느보 신전 터] ‘느보’는 바벨론 최고 신 ‘벨’의 아들로 학문과 저술의 신으로 숭배받았다. 느보는 아버지인 벨과 함께 바벨론의 멸망과 동시에 수치스럽게 망할 것이 예언되었다(사46:1). 

윤석전 목사: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아람어를 현재까지 사용하는 유일한 도시, ‘마룰라’로 가보겠습니다.

다마스쿠스 북동쪽에 칼라문 산지 중턱 바위산에 새 둥지처럼 자리 잡은 도시가 ‘마룰라’다. 대부분 기독교인인 마룰라 주민은 주변 이슬람 국가들에 맞서 오랜 세월 문화와 종교의 순수성을 지켜 내고 있다. 칼라문 산지에는 초대교회 당시 만들어졌다는 기도굴들이 남아 있다. 또 이곳엔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로마 군인 세르기우스를 기리는 교회가 있다. 아랍인 땅인 마룰라가 수 세기 동안 기독교 전통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성경 시대의 언어인 아람어를 현재까지 지켜왔기 때문이 아닐까.

<사진설명>  [마룰라 전경]  마룰라는 현재는 없어진 아람어를 사용하는 세계 유일 도시이며, 이슬람권에 있는 도시인데도 주민 대다수가 기독교인이다. 마룰라는 이슬람 국가인 시리아의 도시인데도 이슬람 사원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기독교 순교자를 기리는 교회가 많다. 마룰라가 있는 칼라문 산지에는 초대교회 당시 만들었다는 기도굴들이 남아 있다.

윤석전 목사: 마룰라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오택현 교수: 마룰라는 현재 아람어를 사용하는 세계 유일의 도시입니다. 아람어는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언어이기에 중요합니다. 페르시아가 서쪽으로 넓은 영토를 지배해 그 지역 사람이 아람어를 공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아람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했습니다. 이후에 아람어가 사라졌기에 현재까지 아람어를 쓰는 마룰라가 아람어 성경인 탈굼의 발전 역사와 그 뜻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윤석전 목사: 아람어 번역 성경인 ‘탈굼 성경’을 소개해 주세요.

우택주 교수: 바빌론 포로 후기에 팔레스타인에 있던 유대인 대다수가 아람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면서 이스라엘에 아람어가 보편화해 사용하는 인구가 많아져 성경 번역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성서는 히브리어였기에 아람어를 사용하는 백성에게 바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어려운 히브리어 성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아람어 번역 성경 ‘탈굼(Targum)’이 나오게 됐습니다. 아람어는 상당히 평이한 언어입니다. 히브리어로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아람어로 포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탈굼’을 풀어 쓴 성경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랍비들은 ‘탈굼’이 쉬워 히브리 성경 대신 아람어 성경만 읽고 아람어 성경을 권위 있다고 여길까 두려워 아람어 성경을 공개적으로 읽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람어 성경은 구두로 읽기만 하고, 그 내용을 확인하려면 히브리어 성경을 읽게 교육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  [탈굼 성경] 바벨론 포로 후기에 팔레스타인에 있던 유대인 대다수가 아람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면서 이스라엘에 아람어가 보편화했고,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어려운 히브리어 성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아람어 번역 성경 ‘탈굼(Targum)’이 나왔다. 현재는 아람어가 사라져 아직 아람어를 사용하는 ‘마룰라’가 탈굼의 발전 역사와 뜻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윤석전 목사: 마룰라에는 어떤 유적이 있나요?

오택현 교수: 마룰라 유적 특징은 시리아라는 이슬람권에 있는 도시인데도 이슬람 사원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이곳은 이슬람 국가 사이에서 ‘보배 같은 도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에는 순교자들을 기리는 수도원이 많습니다. 로마 수비대장이었으나 기독교로 개종해 핍박받다 순교한 세레기우스를 기리는 수도원, 사도 바울에게 전도받아 일생 복음을 전하는 데 앞장섰던 테클라 수녀를 기리는 수녀원이 있습니다. 세레기우스 수도원에 가면 방문자들에게 아람어로 주기도문을 직접 시연해 주기도 합니다.


<사진설명> [세르기우스 교회] 세르기우스와 바쿠스를 기념하려고 세워진 교회다. 이들은 시리아 출신으로 로마군 수비 대장인데도 로마의 주신 제우스 신전 숭배를 거절하여 순교당했다. 세레기우스 교회를 방문하면 아람어를 쓰는 유일한 도시라는 점을 알려 주려고 방문자들에게 아람어로 주기도문을 직접 시연해 준다. 

<사진설명> [테클라 수녀원] 초기 기독교 순교자인 테클라를 기념하려고 세운 수녀원. 테클라는 사도 바울에게 전도받고 평생 많은 병자를 치유하고 복음을 전하며 살다 지역 의사들의 고발로 총독에게 체포되어 순교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 당시 구약 성서는 몇 가지 언어로 기록됐는지요?

우택주 교수: 당시 사용하던 언어는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였습니다. 구약성서를 기록한 언어는 두 가지입니다. 히브리어로 된 성경은 예수님 이전에 이미 사용되고 있었고, 예수님보다 약 200년 전에는 헬라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성경이 존재하여 예수님 당시엔 헬라어로 된 성경을 많이 읽었습니다. 유대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읽었습니다. A.D. 2~3세기부터는 아람어로 된 성경 탈굼이 번역됐습니다.

윤석전 목사: 시리아 사막 가운데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가 있었다면, 이 우주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예수만이 우리 영혼의 오아시스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양식입니다. 예수님으로만 우리는 신령한 삶을 살 수 있고, 영육 간에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9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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