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189)] 바울이 매를 맞은 ‘바보’와 바나바가 순교한 ‘살라미’…구브로 섬
사도 바울의 길을 따라서 ⑹

등록날짜 [ 2020-04-25 10:19:33 ]

바보에는 바울 기념교회와 채찍기둥 있고

살라미에는 바나바 순교 터에 기념교회

복음 전하다 오는 고난이라면 달게 받고

모진 채찍 맞아도 기뻐하며 사지로 향해


바나바 기념교회. 구브로섬 동쪽 연안 살라미에 있다. 구브로로 돌아온 바나바가 복음을 전하다 유대인이 던진 돌에 맞아 순교한 자리에 세워졌다.


구브로 지도. 터키 남쪽에 있는 섬으로 현재 키프로스공화국과 북키프로스 튀르크공화국으로 분단되어 있다. 수리아 안디옥에서 파송받은 바울의 첫 전도지였다. 


바보 항구에 있는 성채. 항구를 보호하기 위한 요새로 지어졌다. 현재 바보의 상징 건물이자 관광 명소가 됐다.


바울의 채찍교회 앞에 앉아 있는 윤석전 목사. 


윤석전 목사: 바울(Paul)의 제1차 전도여행에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영광스러운 역사가 일어난 구브로섬은 현재 키프로스공화국(Republic of Cyprus)과 북키프로스 튀르크공화국(TRNC)으로 대립한 남북 분단국가입니다. 바울은 구브로에서 로마 총독 서기오 바울(Sergius Paulus)의 사랑을 받던 마술사 엘루마(Elymas)를 하나님의 능력 앞에 무릎 꿇리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살아 계시구나’ 하며 로마 총독까지 예수를 믿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는 바울보다 먼저 와서 정착한 유대인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혹독하게 핍박받고 채찍에 맞습니다. 바울의 복음 전도 흔적이 남아 있는 구브로로 가 보겠습니다.


구브로섬 동쪽 연안 살라미(Salamis)에는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바나바(Barnabas)의 기념교회가 있다. 안디옥에서 선교사로 부름받은 바울과 바나바는 첫 이방 선교지로 바나바의 고향 구브로섬을 택했다. 바나바는 제2차 전도여행 때 바울과 헤어진 후 다시 구브로로 돌아와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이 던진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살라미에서 남서쪽으로 100여 km, 약 2시간을 달리면 바보(Paphos) 항구에 도착한다. 이곳에 바울이 채찍에 맞은 일을 기념해 영국성공회(Church of England)가 세운 ‘바울 채찍교회’가 있다. 그 앞에는 A.D. 300년경의 교회 터가 있는데,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은 유대인에게 큰 핍박을 받았다. 그럼에도 바울이 계속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구령의 열정이다. 바울은 “내가 너희를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고 말하며 자기 생애를 고난으로 채우고자 작정한다. 이 땅에서 바울이 받은 고난은 ‘바울의 채찍기둥’에 남아서 지금까지 전해진다.


윤석전 목사: 바울이 고난받은 흔적은 그의 복음 전도 흔적과 같습니다. 성경을 보면 로마 총독이 바울의 능력과 이적을 신기해하며 복음 듣기를 원합니다(행13:6~12). 이방신 숭배가 난무했던 항구 도시 바보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요?


김호경 교수: 당시는 다신교 사회여서 한 사람이 여러 신을 믿을 수 있었고, 여러 신을 믿으면 그만큼 더 많은 힘을 소유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神)을 다다익선으로 여겼기에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서기오 총독이 바울을 부를 때 ‘새로운 신이 들어왔다니 어떤 능력과 특성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는 종교적 호기심과 자기도 새로운 신을 섬겨 더 많은 이익을 얻고자 하는 욕심, 두 가지가 작용했을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이 총독에게 복음을 전할 때, 이를 방해한 박수 엘루마는 어떤 사람인가요?


김호경 교수: 우리말 ‘박수’는 영어로 마술사를 뜻합니다. 당시의 마술은 현대와는 달리 ‘마술종교’라 했습니다. 고대의 세계관은 소위 ‘운명론적 세계관’인데 모든 것은 정해져 있기에 인간은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운명적 상황을 바꾸려면 초월적 능력이 필요했는데 사람들은 그 능력을 가진 존재가 마술사라고 믿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마술의 종교적 위치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질 때 마술사의 수입과 명예와 위치가 상당한 위협을 받을 테니 결사적으로 가로막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바울 채찍기둥’을 바라보면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모진 매를 맞은 모습이 떠오르면서 제 모습이 초라해지기도 합니다. ‘바울의 채찍교회’ 앞에 있는 채찍기둥에 얽힌 당시 상황을 소개해 주세요.


이원희 목사: 바보에는 300년경 세워진 오래된 교회 터가 있고, 그 옆에는 바울이 채찍에 맞은 사건을 기념해 영국성공회에서 세운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대리석 기둥이 하나 있는데 영어로 ‘바울의 기둥(ST. PAUL’S PILLAR)’이라 적혀 있습니다. 성경에 바울이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고후11:24)고 기록됐는데 매를 맞은 장소를 모두 정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만, 그 기둥은 바울이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맞은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어 ‘바울의 기둥’ 또는 ‘바울의 채찍기둥’이라 부릅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은 신분과 혈통과 유대교 내 지위로 볼 때 존경받아야 할 사람인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 오히려 유대인에게 채찍을 맞습니다. 바울이 그런 고난을 자원한 점에 큰 감동이 됩니다. 모진 매를 맞아도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며 복음을 전한 현장으로 다시 가 보겠습니다.


바울이 고난 속에서 복음을 전했을 땅과 공기를 대하면 순례자들은 2000년 전 바울의 시간에 다가선다. 그 체험을 돕기 위해 교회 표지판에는 채찍에 맞은 바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기둥에 매여 바울은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맞았다. 기둥 앞에 선 순례자들은 절절한 회개를 쏟아 낸다.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추우면 입어야 하고, 목마르면 마셔야 하고, 힘들면 쉬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건만 배고프고, 헐벗고, 목마르고, 쉬지 못하면서도 다른 이의 영혼 구원을 위해 고통과 핍박을 견디며 사지(死地)로 향한 바울을 생각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더욱 위대해지는 하나님의 논리를 체득한 순례자는 이곳을 은혜의 땅이라 부른다.


윤석전 목사: 구브로의 통치자인 로마 총독은 자신이 위대하게 생각한 바울이 유대인에게 채찍으로 맞을 때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었을지 의문이 듭니다. 그 점에 관해 말씀해 주세요.


이원희 목사: 바울이 섬에 도착해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은 자신들이 믿는 유대교가 바울이 전한 복음 때문에 혼란스러워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 전하는 일을 가로막고 더 심하게 핍박합니다. 그때 총독은 매 맞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가 전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한 번 만나 보자고 했을 테니 그런 순서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에게 신성모독 죄인으로 몰려 결국 십자가형에 처하게 됐을 때, 당시 총독이자 법관 빌라도가 “이 사람은 죽일 만한 죄가 없다. 왜 죽여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며 유대교의 종교적 힘을 가지고 거세게 몰아붙이자 빌라도는 민란이 일어날까 두려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내어 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이 전한 말씀을 듣고 총독 서기오가 예수를 믿어 구원받고 마술사가 소경이 되는 이적이 나타나도, 유대인이 그들의 절대적 신앙으로 총독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울을 채찍으로 때렸다면 더 큰 은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울 채찍기둥을 보면서, 현실에서 핍박받는 성도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지 말씀해 주세요.


김호경 교수: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고난’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기복신앙을 복음의 중요한 내용으로 설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지(聖地)라고 말하는 장소 대부분은 순교지입니다. 바울이 묶인 채 채찍에 맞았다는 기둥도 바울이 어떻게 고난받고, 순교의 길을 갔는지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바울이 갔던 고난의 길은 실제로 예수님이 갔던 십자가의 길과 겹칩니다. 바울의 고난과 순교의 여정에서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 역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이라는, 희망을 갖고 위로를 받으면 좋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죽음은 우리에게 복(福)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복의 개념을 전부 육신의 요구에 초점을 맞춰 고난을 저주로 오해합니다. 오해가 풀리고 참된 축복 속에 용감하게 뛰어들었으면 합니다. 구브로섬에 또 다른 유적지가 있나요?


이원희 목사: 구브로섬 동쪽에 있는 살라미에 야외극장과 고대 시장터 아고라(Agora)와 함께 대규모 유적지가 있습니다. 또 바나바의 무덤, 수도원 등이 있고,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아프로디테(Aphrodite) 여신의 탄생지도 구브로섬에 있습니다. 또 작은 카타콤(Catacomb)과 왕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구브로섬에는 상당히 많은 유적이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처럼 고난받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말씀해 주세요.


김호경 교수: 바울의 복음은 그동안 구원에서 배제됐던 이방인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끌어들이고,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에는 차별이 없다는 점을 선포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삶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 안에서 동일하다는 믿음으로 다른 이에게 복음 전하는 것이 바로 바울의 고난에 동참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바울의 전도 여정을 돌아보면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귀중한 피조물이고 바울이 이를 위해 고난받았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우리가 주를 위해, 또 수많은 영혼을 살리기 위해 복음 전하다 당하는 고난은 고생이 아니요, 행복이자 축복이자 고난의 대가인 면류관입니다. 바울이 한 사람이라도 멸망하지 않도록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자기 생애를 바치면서 전한 복음 덕분에 우리도 지금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복음 때문에 오는 고난이라면 달게 받고, 주님과 함께 십자가 지고 가는 믿음의 역사를 축복으로 안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7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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