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을 맞이하여
성령운동은 곧 사랑의 공동체

등록날짜 [ 2006-05-29 11:03:05 ]


기독교 역사는 부흥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령의 역사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이 땅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계속되었다. 오순절 성령강림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어 온 성령의 역사, 영적각성운동이 발흥하여 교회에 생명력이 더해졌다. 부흥운동의 역사는 곧 교회의 역사였고, 성령의 강력하고 예외적인 부으심의 역사였다.


최초의 부흥, 오순절 성령강림
오순절 성령 강림은 최초의 부흥 사건이었다. 주님이 약속하신 대로 성령께서 공동체에 초자연적으로 임하셨고 죄에 대한 깊은 각성이 나타났으며 바로 그날 3000명이 회심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널리 퍼지는 전형적인 ‘부흥’의 표지가 확연히 드러났다. 최초의 부흥,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임한 곳은 예루살렘이었다.
제자들이 주님의 약속을 기다렸던 곳은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이었다. 주님이 승천하신 후 120명의 문도는 주님의 약속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주님이 승천하신 후 10일 동안 전심으로 주의 약속을 기다리며 기도했고 AD 30년 오순절날 주님은 약속하신 대로 놀라운 성령 강림의 은혜를 부어주셨다.

성령강림, 진정한 회개의 의미
오순절 이후 복음이 놀랍게 전파되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그날 제자의 수가 3000명이나 더하였다. 주께서 구원 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 평소에도 주의 백성들이 교회에 영입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부흥의 날에는 헤아릴 수 없는 백성들이 교회로 영입되었다.
‘천하’에서 모인 백성들이 성령을 체험하고 열방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현대적인 의미를 빌린다면 선교 사역에 착수한 것이다. 오순절 성령의 능력을 충만히 받은 자들을 통해 복음은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놀랍게 확산되었다.
무엇보다 개인의 각성이 공동체의 각성으로 이어져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믿음의 공동체 가운데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줬다. 또 마음을 같이 하여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떡을 떼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부흥은 결코 특정 시대, 특정인들에게만 주어진 약속이 아니다.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동일한 약속이다. 그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곳마다 어둠과 죄악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가 ‘예루살렘’으로 바뀌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다시 일으켜야할 성령운동
2000년 교회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이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120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되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 사건 이후 비로소 능력 있는 복음 전파가 시작되었고 하루에 3000명이나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의 특징 중 하나는 120문도가 방언으로 기도하는 내용을 각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각각 자기네 방언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벨탑의 교만이 언어의 혼란과 분열을 가져온 반면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그 혼란되었던 언어를 통합하여 하나가 되게 한 참으로 기이한 역사였다. 언어 분열로 인해 나눠진 마음과 이기적인 욕심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회복된 것이다.
이제 우리의 성령운동은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의 교훈에 순종해야 한다. 초대교회는 성령을 받자마자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나눔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자기보다 이웃이나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봉사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

서로 나누는 공동체의 삶
우리 한국 교회도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재조명하고 재체험해야 한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세워진 초대교회는 성령공동체였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와 함께 시작하였으므로 성령의 역사 없이는 교회 공동체가 존속할 수 없다. 교회 공동체는 성령 없이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둔 생명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와 열매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차원이 아니라 언제나 교회 공동체적인 차원이다. 교회 공동체를 통해 성령의 은사를 받고 교회 공동체를 섬김으로써 성령의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교회가 성령께 복종하고 성령께 귀 기울이며 또한 성령을 따를 때 비로소 참된 생명과 자유를 누리게 되며 올바른 섬김과 역동적인 성령의 사역이 이루어질 수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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