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교회 역사 이야기-5] 영지주의가 기독교에 끼친 영향

등록날짜 [ 2011-06-01 12:01:46 ]

구전 전승한 말씀에 이단 사상 혼재 
통일된 ‘정경(正經, Canon)’이 필요해

영지주의자가 점차 교회에서 빠져나갔지만 그들의 거짓 가르침은 교회에 자국을 남겼다. 특히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표적 신학자인 오리겐(Origen, 185년경~254년경)에게 짙은 흔적을 남겼다.

영지주의자들은 이원론과 가현설을 주장했다. 이원론이란, 영만 선하고 육은 악하다고 보기에 선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악한 육체를 입고 성육신(成肉身)할 수 있는지 의심하는 사상이다. 가현설이란, 영적 예수가 악한 육체를 입을 수 없기에 가짜로 현현(顯現)하셨다는 것이다.

오리겐은 예수를 제2의 하나님으로서 성부(聖父)에 종속하는 존재로 이해한다. 아리우스는 오리겐 사상을 발전시켜 예수의 신성은 성부와 유사함을 주장하고, 예수는 피조물 중 뛰어난 존재일 뿐이라고 이해한다.

AD 202년 알렉산드리아에 박해의 바람이 몰아칠 때, 오리겐의 부친이 순교했다. 당시 16세인 오리겐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순교하려 했지만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옷을 감추는 바람에 알몸으로 밖에 나갈 수 없어 목숨을 건졌다. 알렉산드리아교회는 오리겐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데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새신자들을 양육하는 책임을 맡겼다.

처음에 오리겐은 영지주의와 반대하는 설교를 했으나 종종 그들과 유사한 생각에 빠졌다. 오리겐은 하나님의 창조가 원래 영적인 것이지만 인간의 타락 이후에 하나님께서 물질적, 육체적 세상을 만드셨으며,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사탄을 포함하여)을 죄 없는 영적인 상태로 회복하게 하실 것이라고 가르쳤다.

오리겐도 영지주의자 말시온처럼 모든 육체적 욕망과 안락을 포기했다. 그는 마태복음 19장 12절 말씀에 문자적으로 순종하여 스스로 거세(去勢)했으며, 포도주 대신 물만 마셨고, 신발도 신지 않았다. 오리겐은 다른 영지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크리스천들에게 성경을 탐구하여 신비로운 메시지를 얻으라고 촉구했다. 크리스천들은 원래 일부 신자들만이 비밀스러운 지식을 소유한다는 영지주의 사상을 거부하였지만, 오리겐의 영향을 받은 많은 교사가 영적인 비밀을 캐내려고 계속해서 어려운 구절들을 설명하는 데 빠졌다.

크리스천들은 영지주의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영지주의의 도전으로 2세기 크리스천들은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심각한 자문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신자는 ‘정경(正經, Canon)’이라는 저작들과 ‘신앙과 규칙(The Rule of Faith)’이라는 문서와 ‘아버지’라는 이름의 독보적 권위를 가진 감독들에게 그 답을 찾았다.

교회들은 말시온의 가르침에 반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분이 바로 구약의 하나님이라는 데 동의했고, 구약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구약은 그렇다 치고, 하나님의 백성은 크리스천들이 저술한 수많은 저작(당시에는 지금처럼 확정된 신약성경이 없었다) 중에 어떤 저작에 의존해야 할까? 크리스천 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들이 전해준 구전 전승(傳承)을 종종 인용했다. 그러자 영지주의 교사들 역시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비밀 구전 전승을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영지주의 전승 중에는 진짜로 여길 만한 것도 있었다. 왜냐하면, 어떤 영지주의 저작에서는 예수께서 “내 십자가를 믿는 자들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고 선포하셨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영지주의 저작에서는 시몬 베드로가 “마리아야, 우리를 떠나라. 여자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라고 말하자 예수께서 “자신을 남자로 만드는 모든 여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대목이 나온다. 마리아의 친구가 되셨고 마르다를 격려하셨던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리 없다.

이처럼 믿을 만한, 권위 있는 저작들이 없는 상태에서 크리스천들이 영지주의에 대항하여 싸우는 일은 만만하지 않았다. 당시 로마 제국 내에는 수백 가지 저작이 떠돌았다. 그 수많은 저작 중에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고자 영감으로 기록한 저작은 어떤 것일까?

크리스천들은 사복음서, 사도행전, 바울 서신 13권, 베드로전서, 요한일서, 요한계시록 등 20여 가지 저작을 50년 이상 의존했다. 또 신자 중에는 히브리서, 야고보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를 사용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일부 교회는 베드로후서, 베드로계시록, 헤르마스의 목자 같은 책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 중에서 어떤 저작이 교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저작인지 결정하고자 크리스천들은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째, 그 책이 사도와 관련이 있는가?
둘째, 교회가 보편적으로 그 책을 사용하는가?
셋째, 그 책의 내용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아는 바와 일치하는가?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들이 베드로계시록과 헤르마스의 목자가 사실은 본인들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또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의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3세기 말까지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AD 200년경에 로마 제국 내에 있는 모든 교회를 인도하셔서 하나의 ‘정경(正經)’을 승인토록 하셨다. 크리스천들은 살아 있는 말씀과 성령을 신뢰했고, 더 나아가 성경 말씀을 통해 나날이 믿음을 키워나갔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4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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