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제사라는 ‘집착’에서 벗어나길
설날 신(新) 풍속도와 그리스도인의 자세

등록날짜 [ 2011-01-27 10:07:31 ]

진정 숭배해야 할 대상 바로 알고 이를 실천하며
천 대의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은혜 소유해야

설날이 다가오면서 그리스도인의 자세 또한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한국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차례(茶禮)라는 허울 좋은 명분에 당당히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제사와 차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조선시대부터 뿌리 깊게 내려온 의식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부모님 생전에 효도를 못다한 마음의 부담을 덜어보고자 하지만 그렇다고 부담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설날 풍속도를 살펴보면 분명 명절 의식과 폐단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살펴보며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와 실천에 대해 알아보자.

설날 신(新) 풍속도
구제역 확산으로 지자체마다 설날 고향 방문 자제를 요청하고 있는 가운데 레저와 여행업계, 성형외과 등은 ‘특수 기대’로 잔득 부풀어 있다.
법정휴일은 2월 2일부터 6일까지이지만 휴가를 이틀 사용하면 9일까지 쉴 수 있다. 해외로 떠나는 항공권은 이미 구하기 어려워졌고, 강남 일대 성형외과도 예약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여행업계에서는 벌써 ‘티켓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하나투어에 따르면 2월 1∼4일 해외 패키지여행 예약자가 3만 4000여 명으로 지난해 설 연휴에 비해 129% 증가했다. 연휴가 길다 보니 가까운 동남아나 일본 외에도 아시아권을 벗어나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스키장을 비롯한 각종 리조트는 설날 아침 단체로 차례를 지낼 수 있는 제사장을 마련하고 고객 유치에 여념이 없다. 나름 격식을 갖춘 차례상과 전통 관복을 차려 입은 제주(際主), 그리고 도포를 입은 진행자가 합동 차례를 진행한다. 행사 후에는 차례 음식을 나눠먹고 각종 이벤트를 연다. 여행을 하면서도 차례에 속박당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이 정서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처럼 요즘 현대사회의 풍속도로 볼 때 명절에 지내는 차례는 더 이상 의식도, 명분도 없이 형식으로만 그치는 껄끄러운 존재일 뿐인데도 현대인들이 제사에 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사에 숨겨진 정치적 의도
사실 명절(名節)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이며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있어서 명절에 지내는 제사와 관련해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는 풍속은 전통(傳統)이라고 하기에는 통치를 위한 조선시대 이씨 왕조의 정치적인 의도가 너무나 짙게 깔렸다.

조상 제사는 유교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하는 조선 건국의 통치를 위한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었으며, 백성에게 죽은 조상에 대한 효를 강조하면서 결국 조상보다 더 귀한 존재인 통치권자인 왕에 대한 효와 순종을 강요하는 또 하나의 통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또 선조(先祖)의 음덕을 기리는 것은 좋은 의도이지만 죽은 조상에 대해 몇 대조에 이르기까지 제사를 지내고 특히 숭배의 대상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조상 제사는 분명 조선시대 유교 정책에서 기인한 것이다. 조선시대는 나라를 지탱하는 근본 뿌리가 ‘효’였으며 이를 강조하면서 ‘제사=효’라는 등식을 줄기차게 내세웠다. 그런데 현대인은 유교의 가르침를 종교적 사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유독 제사 문제만큼은 집착하여 지내려고 한다. 한국의 뿌리 깊은 의식 작용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사를 지내면 효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효라는 생각은 논리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그리고 상식적으로도 도무지 맞지 않다.

성경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으니(고전10:20) 제사를 통해 숭배받는 자는 귀신이다. 귀신의 가르침을 받는 자는 그 가르침대로 멸망의 길로 갈 뿐이다.

명절의 차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단지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겉치레임을 공감한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쉽게 끊어버리지 못한다. 조상의 은혜를 잊지 말자는 취지는 좋으나 그보다 더 크신 창조주 하나님은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조상의 음덕에 감사해야 한다면 그 조상을 이 땅에 존재하게 한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는 그 무엇으로 감사하고 있는가.

설날이라는 명절은 한 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온 나라가 진심으로 감사를 돌려야 할 날로 바뀌어야 한다. 설날축복성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 대의 복을 소유하는 성도가 되어야함이 마땅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22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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