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맥추절] 기본에 충실한 신앙생활로 진실한 감사를

등록날짜 [ 2016-06-28 10:26:11 ]

영원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은혜와 사랑에 언제나 감사가 절정으로 넘쳐나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출23:16).

맥추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수확한 곡식의 처음 것을 감사로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였다. 감사의 표면적 이유는 곡식의 수확이지만, 실제 감사해야 할 이유는 그 이상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수확’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가나안에 정착해 곡식을 수확하기 전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백 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출애굽 후 사십 년간 광야생활을 했다. 곡식을 수확했다는 것은 이런 모진 환경에서 해방됐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당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수확의 감사란 생명과 풍요의 안정적 영위를 누리게 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일 수밖에 없었다.

맥추절을 정하신 이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찌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신8:11~14).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신8:17~18).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말라”고 엄중하게 경고하셨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맥추절’을 특별히 정하시고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기를 지키게 하신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움을 눈으로 목격하지 않고는 살 수 없던 광야와 달리, 가나안에 정착 후 농사와 그에 따르는 풍요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인간 스스로 과신하고 교만해질 수 있다는 데에 대한 하나님의 우려였다.

2010년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가 풍요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걱정은 곧 우리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영육 간의 넘치는 부유 속에서 우리는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잊지 않고 그분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정확히 기억해야 할 감사의 제목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

때때로 이 말씀을 ‘감사를 쥐어짜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감사할 것이 없어도 강제로 감사하라는 식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받은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안다면, 감사할 것이 없다거나 받은 것이 적다는 말은 감히 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창조주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 사랑은 그냥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표현한 값싼 동정이 아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 그리고 지옥 갈 처지에서 꺼내 주시려고 아들을 십자가에서 인류 대신 죽일 정도로 크고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살리려고 아들을 희생해 우리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셨다(롬5:8). 세상을 만드신 전지전능한 창조자가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나를 사랑하셨다면, 그 감사를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더욱이 우리는 아들이 십자가에서 흘린 핏값으로 영혼의 때에 누릴 천국 영생을 얻었고 이 땅에서는 악한 영을 쫓아내며 불안, 근심, 질병에서 자유할 권세도 가졌다.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에 내주하시며 사랑과 평안으로 우리와 항상 함께해 주신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로 된 일이다.

언젠가 교회에서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한 이선종 전도사가 ‘내 친구 주님’이라는 제목의 찬양을 올려 드렸다.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던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가는 길이 힘들고 외롭고 더딜찌라도” “난 감사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이 내게 줄 수 없는 사랑과 변하지 않는 주님의 은혜” 때문이다.
그 감사는 쥐어짜낸 것이 아니다. 그의 삶에 살아 약동하는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바로 그 은혜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감사할 것은 없지만 무작정 감사하라”는 식의 말은 도저히 할 수 없다.

일상으로 표현하는 감사
표현하지 않는 감사는 위선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진실한 감사의 마음은 표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감사를 표현하려 한다면, 감사 절기에 올려드리는 예물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감사는 특별한 날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님에 대한 감사가 어버이날에 드리는 카네이션과 용돈으로 완성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일상에서 감사에 합당한 삶을 사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감사를 가진 사람이라면 특별한 날에 특별한 이벤트를 벌이기 전에 당연히 해야 하는 기본적 일들에 충실하다.

예배 시간에 늦지 않는 것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감사의 표현이다. 단지 외형적으로 예배 시간에 늦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세속에 젖어 들어가는 우리를 다시 경성케 하려고 베푸신 예배와 성회를 내면의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주의 사자를 통해 전해 오는 주님의 말씀에도 열중해야 할 것이다. 아주 일반적인 것들이지만, 이런 실천들이 쉽지만은 않다.

우리 삶을 돌아보자. 직장이나 학교에서 지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만큼 예배에 늦지 않으려고 마음을 쏟았는가. 또 학창시절에 시험을 치를 때만큼 말씀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설교에 집중했는가. 직장 상사나 학교 선생님 이상으로 하나님을 더 크고 중요한 분으로 모셨는가. 나아가 예수께서 희생하신 목적인 영혼 구원을 이루고자 전도하고 있는가.
기념일을 둔 이유는, 잊으면 안 되는데도 습관적으로 망각하게 되는 것들을 다시금 떠올리고 일상에서 실천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맥추감사절에 우리는 무엇에 감사해야 하고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 재고해 봐야 한다. 맥추감사절은 그날만 감사하라고 정한 날이 아니다. 절기를 계기로 우리의 일상이 감사하는 날들로 바뀌어야 한다.

이계룡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8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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