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풍습이야기] 유대인 집회 장소
회당

등록날짜 [ 2013-11-27 09:28:20 ]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마태복음 13장 53~54절).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사도행전 14장 1절). 


<사진설명> 비시디아 안디옥 유대인 회당 터.

예수 시대에 ‘회당’은 그리스어 의미대로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가장 중요한 집회 장소였다. 지금까지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1세기 회당은 후기 회당의 특징을 지닌 모자이크 바닥이나 비문이 없고, 거의 아무것도 갖추지 않은 단순한 건축물이었다. 회당은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로 벽 윗부분에 창문이 달려 있고, 합각머리, 문설주가 합쳐진 모양의 기와지붕이 높이 솟아 있어 평평한 점토지붕과 구별되었다.

회당은 주로 기도하는 곳으로 알려졌지만(마6:5), 회당에서 가장 먼저 한 주요 활동은 안식일에 성경(특히 예언서)을 큰 소리로 봉독하는 것이었다(눅4:16~30). 먼저 성경 본문을 히브리어로 봉독하고, 이어 예수 시대 일상어인 아람어나 그리스어로 번역했다. 예수는 회당 한가운데 있는 목조 연단에서 성경을 존경하는 표시로 서서 읽었으리라 추측한다. 그러나 서서 설교하는 현대 설교자와는 달리, 예수는 성경 봉독 후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교사들을 위해 마련한 ‘모세의 자리’(마23:2)에 앉았다.

예수 시대에는 성경 봉독에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았기에 예수는 안식일에 나사렛 회당에서 성경 구절을 선택할 수 있었다. 누가는 예수께서 이사야서를 봉독한 후 토론이 벌어졌다고 말한다(눅4:16~28). 토론은 그 당시 회당 분위기의 특징이었다. 기도가 회당 방문의 중요한 목표가 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조용하게 경배하기보다는 대화와 토론을 하고, 심지어는 성경 봉독과 가르침 전후에도 이리저리 돌아다녔을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세 차례 안식일에 토론하며 많은 사람을 개종시켰다. 그때 설교를 듣던 회중 속에는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다(행17:1~4). 유다 초기 문서에는 남자들이 먼저 봉독한 후, 여성들에게도 성경 봉독을 허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36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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