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열왕 이야기 <43>] 끝도 없이 망국으로 치닫는 유다
므낫세 왕

등록날짜 [ 2013-01-08 11:49:13 ]

선왕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통치하던 55년 동안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 버려

반쪽 제사장 나라였던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 군대에 멸망한 이유는 평화와 번영 속에서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며 세상적 복을 가져다 준다는 소위 기복 신앙과 우상 문화에 깊숙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고 제사장 나라는 망했다.

그렇다면 기원전 722년 이후 마지막 제사장 나라가 된 남조 유다 왕국에서는 히스기야 왕에 이어 요시야 왕이 대대적으로 종교개혁 조치(왕하18:3~8;23:3~25)를 했는데도 왜 바벨론 군대에 나라가 완전히 망했을까? 그 이유를 역사서는 “하나님을 격노시킨 므낫세 왕의 악행 때문”(왕하23:26)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멸망의 조건을 갖춘 므낫세 왕의 과오
병들어 죽게 된 히스기야 왕이 전무후무하게 15년 수명 연장을 받은 후(왕하20:6) 3년 만에 아들을 얻었는데 이가 훗날 므낫세 왕이 된다(왕하20:21;21:1). 어린 나이 12세에 즉위하여 무려 55년간 통치하였음에도 제사장 나라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킨 므낫세 왕의 과오는 무엇일까?

첫째, 선왕 히스기야가 한 종교개혁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왕하21:3). 그 결과, 개혁 이전 아하스 왕 시대가 하던 우상 문화가 그대로 되살아났다(왕하16:2~4).

둘째, 북조 이스라엘 아합 왕가가 행한 잘못을 예루살렘에 그대로 재현하게 했다(왕하21:3~5). 이세벨 왕비의 바알 신, 아합 왕의 아세라 목상,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일월성신까지 도입해 섬기게 했던 것이다.

셋째, 왕자를 우상에 희생 제물로 바쳤으며, 생활 속에 점술과 사술, 무당과 박수를 의지하는 무속신앙이 뿌리내리도록 앞장서서 모범을 보였다(왕하21:6).

넷째, 예루살렘 성전에 자신이 만든 아세라 목상을 세웠다(왕하21:7).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솔로몬 성전을 더는 보호할 이유가 없게 했다(왕하21:8~13).

다섯째, 므낫세 왕이 한 실정은 종교적 잘못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므낫세는 사회적 정의나 역사적 심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교만한 정치와 힘에 의한 통치를 강화하였으므로, 백성도 극도로 이기주의와 약육강식 사조에 빠져들었다. 그 결과, 유다 나라에는 무죄한 자의 피가 가득하였다(왕하21:16).

요시야 왕의 선정도 소용없게 된 죄악
유다 백성은 므낫세 왕의 꾐을 받고 므낫세가 통치하던 55년간 완전히 하나님을 떠났는데, 백성의 잘못을 바로잡기에는 므낫세 손자 요시야 왕이 베푼 선정으로도 부족하였다(왕하21:18~22:2).

요시야 왕은 매우 어린 나이 8세에 즉위하여 31년간 치리하였지만, 그가 종교개혁에 나설 수 있게 된 나이는 즉위한 지 18년이 지난 때였으며(왕하22:3~13), 이후 13년 동안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백성의 심성과 행동까지 모두 바꾸기에는 므낫세 왕의 통치기간 55년에 비해 그의 개혁 기간이 턱없이 짧았던 것이다(왕하22:16~20).

더구나 요시야 왕은 집권 말기에 애굽과 앗수르의 패권쟁탈전에 휩쓸려서 허무하게 전쟁터에서 죽고 말았고(왕하23:27~30), 그 뒤를 이은 아들 삼 형제는 모두 성군이 되지 못하였다. 현명하지도 못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도 못한 왕들이 계속 나타나자, 유다 왕국은 강대국이 제멋대로 휘두르는 약소국 신세가 되고 말았다.

유다는 종교개혁은 물론 자주적인 정치도 펼치지 못하다가 마침내 신흥 바벨론 제국에 비참하게 멸망하고 말았다(왕하23:34~37;24:12~20;25:1~25).

결국 역사적으로 보아 므낫세 왕의 과오가 왕국 멸망의 원인이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역사서는 다음과 같이 못 박고 있다.

첫째, 유다 백성의 악행이 이방 족속보다 심하였다(왕하21:9).
둘째, 일찍부터 그들 자신의 죄악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난 아모리 족속보다 심하였다(창15:16;왕하21:11). 따라서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아모리 족속이나 아합의 이스라엘처럼 가나안 땅에서 유다 나라를 쓸어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왕하21:12~16;23:26~27).

위 글은 교회신문 <32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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