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안과 밖 이야기] 믿음의 자손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수혼 제도

등록날짜 [ 2014-12-22 11:51:22 ]

기업을 이을 자녀 탄생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던 시대

현재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혼 구원 중요성 깨닫게 해

 

<사진설명> 보아스와 룻.

"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러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38:8).


민족마다 타 민족이 이해할 수 없는 고유한 풍습이 있게 마련이다. 유대인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창세기 38장을 읽다 보면 우리나라 정서로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나온다. 바로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에게서 쌍둥이 아들이 태어나는 이야기다.

원래 다말은 유다의 맏며느리였다. 그런데 장자 엘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자 하나님이 그를 죽이고 말았다. 그래서 시아버지 유다는 장손을 이으려고 수혼(嫂婚) 제도(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삼는 것)에 따라 다말을 둘째 오난에게 허락한다. 하지만 둘째 아들 오난은 이 법을 어기고 형수가 아이를 낳을 수 없게 했다. 어차피 자기 아들이 아니라 형의 아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법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하나님은 당장 오난을 죽이신다.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38:9).

이제 하나 남은 막내아들 셀라가 형수에게 들어가 자손을 낳게 해야 하는데, 셀라는 그러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다. 그래서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친정에 가서 기다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유다의 본심은 하나 남은 셀라마저 죽을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 막내아들 셀라가 다 장성했는데도 유다가 다말을 부르지 않자, 시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다말이 다른 방법으로 씨를 받으려 한다. 바로 자신의 시아버지 유다를 상대로 씨를 받으려고 한 것이다. 결국 친구 집에 놀러온 시아버지 앞에 창녀로 변장하여 접근하였고, 드디어 쌍둥이 아들을 낳아 하나의 이름은 베레스’, 또 다른 아이의 이름을 세라라고 지었다.

이 수혼 제도는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성서 시대 사람들에게는 매우 당연한 제도였다. 창세기 본문에는 이 수혼 제도를 하나님께서 직접 지키게 하셨다는 내용이 두 번이나 나온다. 그래서 창세기 본문은 며느리 다말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킨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룻과 보아스도 이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4:10).

룻의 시아버지 엘리의 기업을 이을 두 아들이 모두 죽었으므로 이제 이 기업을 유업으로 받을 남자가 모두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가장 가까운 친척이 토지를 기업으로 물려받아야 했다.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25:25).

그래서 가장 가까운 친척을 찾았지만 그는 이를 거부한다.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4:6).

결국 그다음으로 가까운 친척인 보아스가 그 기업을 이어서 엘리멜렉의 집안을 구원하게 된 것이다.

신약시대에도 수혼 제도가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 두고 그 둘째와 세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22:25~28).

마태복음 1장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도 유다와 다말 사이에 태어난 베레스가 올라가 있다(1:3).

이는 하나님께 받은 기업과 생명을 그 어떤 윤리나 도덕의 문제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는 말씀이 아닐까.

성서 시대에는 생명을 이어갈 자녀 탄생이 중요한 것만큼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히 살 생명을 공급하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이후 2000년 동안 이어져 온 영혼 구원의 사명이 내게서 끊어지지 않도록 복음 전도에 부지런히 힘을 내야 할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41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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