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읽는 시편 (9) - 시편 3편 ②] 포위 속에서 잔 사람

등록날짜 [ 2026-07-22 09:58:28 ]

적에게 둘러싸인 다윗에게 찾아온 밤

일말의 두려움 없이 단잠 이룬 것은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심 믿었기 때문

예수의 십자가 속죄의 피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도 영혼의 참평안 경험해


달아나는 중이었다. 반역한 군대가 뒤를 쫓았다. 산마다 적이 진을 쳤다. 셀 수 없었다. 그런 밤이었다. 골짜기 건너편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를 죽이러 온 추격자들의 불이었다. 그 불빛 아래서 눈을 감아야 했다. 칼이 언제 목을 노릴지 몰랐다. 눈을 감으면 다시 뜨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가 누웠다. 그리고 잤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시3:6). 그는 숫자와 상관없이 두려움을 거절했다. 노려볼수록 적은 커진다. 마음 안에서 그 성벽이 자란다. 그는 눈을 돌렸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시3:3). 앞만 막는 방패가 아니었다. 앞뒤로, 사면으로 두르는 방패였다. 적이 둘렀다. 하나님은 더 크게 둘렀다. 적의 불이 골짜기에 있었다. 하나님의 방패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그 방패가 더 가까웠다. 이어 “나의 영광이시요!”라며, 쫓기는 왕이 영광을 말했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천으로 가렸던 그 머리이다. 그 머리를 드실 분을, 그가 불렀다. 사자 앞에서도 불렀다. 거인 앞에서도 불렀다. 그때마다 답이 왔다(시3:4). 그래서 누웠다.


선잠이 아니었다. 뒤척이다 든 토끼잠도 아니었다. 아무 근심 없이 떨어진 깊은 잠이었다. 잠든 사람의 목은 무방비이다. 그도 안다. 언젠가 그 또한 잠든 원수의 머리맡까지 다가간 적이 있었다. 사울이 깊이 잠든 진영 한복판, 창이 머리맡에 꽂혀 있었다. 손만 뻗으면 끝낼 수 있었다(삼상26:7). 잠든 자가 얼마나 무력한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 그가 이번엔 잠든 자가 되었다. 적의 한복판에서. 깊이. 머리맡에 누가 와도 막을 수 없는 채로.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시3:5). 두려움이 사라진 게 아니었다. 붙드는 손을 알았을 뿐이다. 들지 못하던 머리를 들어 주실 그 손을 베고, 그는 누웠다. 


우리도 그 밤을 안다. 에워싼 것이 줄지 않는 밤. 진단을 기다리는 밤. 되돌릴 수 없는 말을 내뱉고 누운 밤. 전화 한 통이 무서워 휴대폰을 엎어 놓는 밤.


오랜 뒤, 갈릴리 바다에서도 한 사람이 잤다. 풍랑이 배를 때렸다. 물이 뱃전을 넘었다. 평생 바다에서 산 사람들이 다 죽게 됐다고 비명을 질렀다. 그는 고물(船尾)에서 베개를 베고 자고 있었다(막4:38). 폭풍 한복판, 잠든 단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그가 바다에 한마디를 던지자, 바다가 잠잠해졌다(막4:39).


죄인인 내가 어떻게 그 밤에 잠드나. 다윗의 잠은 깨끗한 자의 잠이 아니었다. 그를 쫓는 칼은 남이 쥐어 준 칼이 아니었다. 그 환난은 그의 죄에서 시작됐다. 그는 징계 한복판에서 잤다. 내 밤도 무죄하지 않다. 잠이 온다면, 흠이 없어서가 아니다. 나를 붙드는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평안은 주문처럼 불러낼 수 없다. 값이 치러진 것이다. 그 값은 피였다. 밤이 길었다. 그는 누웠고, 잤고, 깨었다(시3:5). 눈을 떴을 때 적은 그대로 있었다. 골짜기의 불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하나, 그가 밤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밤은 그를 삼키지 못했다. 아침이 왔다. 다시 밤이 와도, 그는 또 눕는다.


위 글은 교회신문 <959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