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인물 이야기 373] 공적 한 줄도 남기지 않은 ‘여호수아’

등록날짜 [ 2026-08-19 13:26:21 ]


여호수아의 백십 년 결산서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만 적혀 있다


싸움이 끝난 지 오래였다. 사방이 조용했다. 여호수아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노인은 백십 세를 바라보았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수23:3). 광야 40년을 걷고 가나안에서 싸운 사람이 하나님이 하신 일부터 꺼냈다.


여호수아는 애굽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호세아였다. 모세를 따라나선 첫 자리가 르비딤이다. 아말렉과 싸우라는 말에 칼을 들었다. 승패는 골짜기가 아니라 산 위에서 갈렸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겼고, 내려오면 밀렸다(출17:11). 칼을 휘두르던 젊은이가 거기서 배웠다. 싸움의 주인이 따로 계시다는 것을.


그 뒤로 모세 곁을 떠나지 않았다. 회막에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출33:11).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둘 중 열 명이 말했다.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그와 갈렙만 다르게 말했다.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9). 성벽의 높이가 아니라 함께하시는 분을 본 것이다.


40년 뒤 그 성벽 앞에 다시 섰다. 여리고에서 그는 성벽에 손대지 않았다. 이레를 돌았을 뿐이다. 무너뜨리신 이는 따로 계셨다. 여호와께서 싸우고 여호와께서 쫓아내셨다. “너희 중 한 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수23:10). 르비딤에서 본 그대로였다.

남은 민족에게 가지 말라. 그들과 혼인하지 말라. 그들이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눈에 가시가 되리라 했다. 노인이 걱정한 것은 가나안의 병거가 아니었다. 가나안의 안방이었다. 칼로 이기지 못한 것이 밥상과 혼인으로 이긴다.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기를 오늘날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수23:8). ‘친근히’는 부부가 한 몸을 이룰 때 쓰는 말이다. 붙어 있으라는 뜻이다. 떨어지면 남는 게 없다는 걸, 그는 평생으로 알았다.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수23:14).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않고 하나도 어김없었다고. 백십 년을 산 사람의 결산서에 제 공적이 한 줄도 없다. 하나님의 신실하심만 적혀 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헬라어로 옮기면 예수다. 모세가 백성을 들여보내지 못한 땅에 여호수아가 들여보냈고, 여호수아가 주지 못한 안식을 예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주셨다(히4:8~9). 르비딤에서 들린 그 손이 골고다에서는 못 박힌 채 들렸다. 우리가 싸우러 가는 길도 이미 이긴 싸움을 확인하러 가는 길이다.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96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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