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영적생활1·④] 신앙생활은 시작부터 싸움이다

등록날짜 [ 2018-05-31 19:00:32 ]

신앙생활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마귀역사와의 끊임없는 싸움

영적 전쟁에 지면 영원한 사망이니
전쟁에서 후퇴하지 않는 병사처럼
쉬지 않고 기도해 반드시 승리해야


 

신앙생활 너무 쉽게 이랬다저랬다 변덕  
신앙생활은 영적 전쟁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영적인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와의 싸움이 신앙생활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악한 영들인 사단, 마귀, 귀신들은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일을 악착같이 방해합니다. 저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지금 싸우고 있다. 적과 대치하고 있다. 무서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언제나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또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오늘 피곤도 이기고, 힘든 것도 이기고, 하기 싫은 것도 이겨야 한다. 악착같이 주님이 내게 맡기신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주의 일을 방해하는 자를 용납하지 않겠다. 내게 주의 일을 방해할 자는 없다’라며 각오를 단단히 합니다.

전투는 지면 죽고, 이기면 사는 것입니다. ‘전투’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영적 싸움에서 기필코 승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적 싸움을 모르고 그냥 책가방 들고 교회에 왔다 갔다 하고서도 천국 가는 줄 알면 큰일 납니다. 아무리 호언장담을 해도 주 안에서 강건하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성경에 ‘마귀의 궤계’라고 한 것은 마귀의 계략과 수단 방법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은 씨름판에서 샅바를 잡고 씨름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를 믿음과 동시에 격렬한 씨름이 시작된 것입니다. 내가 충성을 하든지, 헌금을 하든지, 전도를 하든지, 말씀을 듣든지 아니면 무엇을 하든지 밖에서든 안에서든 싸움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 육신의 소욕이든, 생각이든, 환경이든 상관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수 없도록 조건을 만드는 모든 것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시작부터 싸움이요, 생존경쟁을 위한 투쟁입니다.

교회는 음부라는 세력과 전투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18). 주님의 성전이 된 나 역시 죽을 때까지 죄짓게 하고 육체를 병들게 하고 생각을 세상에 빠지게 만들어 영적으로 망하게 하는 음부의 권세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지면 안 됩니다. 세상의 운동경기는 질 수도 있습니다. 기껏 해야 얼마나 명예를 얻느냐, 혹은 얼마나 돈을 버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신앙생활은 영원히 죽고 사는 일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지면 내 영혼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고 했으니 전투와 싸움은 꼭 이겨야 합니다.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벧후 2:19)

그렇기 때문에 육의 기준으로 볼 때, 아무리 유익이 있다 해도 신앙생활에 방해되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포기하고 영적인 유익을 도모하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의 신령한 뜻을 좇아 값지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가시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내 마음속에 역사하는 생각에 의해서 신앙생활을 포기하고 쉽게 내던지며 이랬다저랬다 변덕을 부립니다. 전투하는 병사는 땅을 한번 차지하면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어도 결코 뒤로 후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한번 믿음을 가졌다면 이것을 적에게 빼앗길 수 없습니다. 계속 전진해 들어가야 합니다.

‘피곤해서 기도 쉰다’ 영적 전투 패잔병
사람이 한번 재미있는 놀이에 흥미를 붙이면 수렁에 빠진 것처럼 점점 빠져듭니다. 나중에는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멈추지 못합니다. 열심히 충성하던 사람들이 타락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통째로 빼앗기고 기도가 점령당했을 때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기도가 사라지는 순간부터 사적인 생각이 들고, 육신의 소욕이 치고 올라옵니다.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고 육신을 향한 걱정과 근심이 꽉 차게 됩니다. 마음을 원수에게 빼앗기니까 그렇게 한순간에 변합니다.

제가 어떤 성도에게 “요새 왜 기도 안 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글쎄요. 요즘 몸도 피곤하고 힘들어서 당분간 쉬기로 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당분간 쉰다는 것은 핑계일 뿐입니다. 패배한 것을 피곤하고 힘들다는 것으로 합리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소욕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빼앗아 가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집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빼앗겼으니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벌써 영적인 전투의 패잔병이 되어 몸이 피곤하고 힘들어서 좀 쉬기로 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적에게 밀리면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하다가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적에게 밀린 것입니다. 충성하다가 충성하지 않는 사람도 밀린 것입니다. 전도하다가 전도하지 않는 사람도, 감사하다가 감사하지 않는 사람도 적에게 밀린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다가 세상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도 영적 싸움에서 적에게 밀렸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도 본인은 ‘내가 밀리고 있구나, 영적 전투에서 내 신앙생활의 영역을 빼앗기고 있구나!’ 하고 아찔하고 심각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자기 것을 다 빼앗기고도 무엇 때문에 그렇다고 합리화를 시킵니다. 자기를 변명하고 합리화시키는 버릇은 이단이나 적그리스도에 빠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미련한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 오시면 무엇 때문에 그랬다고 하는 말이 전혀 용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 한 가지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적이 이미 점령한 것을 적에게서 찾아오면 찾아왔지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이겨야 할 명분이 무엇보다도 확실합니다. 나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하나님에게서 끊어 놓으려고 하고, 아담처럼 거짓말로 선악과를 먹게 만들어 죽이려고 하는 자가 마귀이기에 내가 살기 위해서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절대 패배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7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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