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영적생활1·⑰] 말씀의 빛으로 어두움의 주관자 마귀를 물리쳐라

등록날짜 [ 2018-09-03 15:48:24 ]

불이 꺼지면 어두움이 방 안 지배하듯
말씀이 없으면 어두움이 나를 지배해
말씀 깨닫는 만큼 빛이 나를 이끄니
하나님 말씀 생명처럼 여기고 순종해야

어떤 일이든 감정적으로 처리하지 말고
성령의 감동인지 신중하게 접근해야

 

말씀의 빛으로 무장하라
어두움의 주관자 마귀역사는 우리를 어둡게 만들어서 주일도 못 지키게 하고, 삼일예배도 못 나오게 합니다. 무슨 일을 맡겨도 나는 못하겠다며 그만두게 하고, 기분 나쁘다고 그만두게 하고, 속상해서 그만두게 하고,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서 그만두게 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그만두게 합니다.

십일조도 이래서 못하고, 헌금도 저래서 못하고, 결국에는 ‘아무래도 나는 교회에 못 다니겠다’고 생각하며 교회를 떠나게 합니다. 우리는 어두움을 주관하는 악한 자에게 사용당하지 말고 빛의 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쓰신다고 했습니다(잠16:4).

저는 성도들을 최후의 날에 있을 영광을 볼 수 있는 사람들로 만들고 싶습니다. 빛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어두움에 속해서 깜깜하게 아무것도 모르고 살다가 심판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깜깜한 밤중을 헤매듯 신앙생활 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평생에 빛 이신 예수를 좇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빛을 보는 눈이 열리고 빛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귀는 어두움 속에서는 대단한 힘을 발휘하지만 빛 앞에서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꼼짝 못합니다. 불이 꺼지면 어두움이 지배하듯이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어두움이 지배해 들어옵니다. 세상이 지배해 들어옵니다. 반면에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어두움이 물러납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만큼 그 빛이 나를 지배하고 나를 정복하고 나를 이끌어 갑니다.

한 번 불이 꺼지면 다시 불을 켜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첫사랑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 그 불을 끄지 말라는 것입니다. 깜깜한 밤중에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불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신랑을 만나지 못했지만 불을 켜고 있던 다섯 처녀는 신랑이라는 소리를 듣고 즉시 쫓아갔습니다. 최후에 주님을 만나려면 빛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십시오. 하나님 말씀을 반대하는 이념 속에는 나를 타락시키려는 마귀의 음모, 마귀의 궤계, 곧 마귀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듣는 일에 반대자 마귀역사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잘 배워서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분별력을 갖추라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최고의 적은 육신의 생각, 곧 육신의 소욕과 정욕입니다. 이런 육신의 생각을 사용하는 마귀역사에 당하면 결국 나만 망합니다. 육신의 껍데기가 아닌 육신보다 더 소중한 내 영혼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망하지 않으려고 예수를 믿는데 계속 망할 짓을 하면 되겠습니까?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지 않고, 모든 신앙생활에 시비가 걸리고, 매사가 귀찮고, 매사가 불만스러우며, 모든 일에 불평을 느낀다면 자기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대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영적으로 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흥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절망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미련한 행동을 하면서도 이것이 얼마나 미련한 일이요, 바보스러운 일인가를 전혀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분명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 지식은 곧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머리로는 아는데, 내 육신이 말을 안 듣습니다. 육신이 좋은 대로만 하려고 하지, 자기 영혼에게 좋은 대로 살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육신의 소욕을 가지고는 절대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아시고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과 힘과 권능을 부어 주셨으니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절대로 마귀역사를 분별할 수 없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내 안에서 성령께서 그렇게 주님 뜻대로 사는 것이 옳다고 깨닫게 하시고, 그렇게 못 사는 것에 대해 안타깝고 아쉬워하는 마음을 계속 주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슨 일을 판단할 때 이것이 내 육감인지 성령이 감동하시는 것인지를 잘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정이 앞서면 항상 이성을 잃게 되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합니다. 감정이 대립되거나 사적인 감정이 나오고 정욕의 감정이 앞서거든 그때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섣불리 결정하면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지나고 보면 분명히 후회합니다. 그 시간만큼은 마귀의 스케줄이요, 정욕의 스케줄에 내가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든 감정적으로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내 속에서 감동이 되면 무릎 꿇고 기도하여 성령의 감동인지 내 감정인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나는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께 누가 되고 교회에 누가 된다면 그것은 성령의 감동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감동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의 스케줄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운영하시게 해야 합니다. 감정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야 합니다. 내 안에서 성령이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의 소리를 들으라고 한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2:7).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9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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