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실권을 인정하라(7)] 예수를 왕으로 확실히 인정하는 믿음

등록날짜 [ 2017-08-03 13:17:44 ]

예수를 막연하게 이해하는 사람과
왕으로 인정하는 사람의 믿음은
비교할 수 없이 큰 차이 나
예수를 절대 실권을 가진 왕으로 확실히 인정하고 믿을 때
놀라운 응답 얻고 은혜 안에 살게 돼


왕을 인정하는 믿음의 분량
교회 다니는 누구나 예수 믿노라 하지만, 예수를 인정하는 정도는 각각 다릅니다. ‘예수는 내게 돈을 주시는 분이다’라고 하여 ‘물주’로 아는 사람이 있고, ‘예수는 병을 고쳐 주시는 분이다’라고 하여 예수를 단순히 병 고쳐 주는 ‘의사’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내가 예수를 믿으니 그분이 살아 계시면 그래도 나를 도와주지 않겠어?’라며 종교적 의미에서 막연하게 예수를 이해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참으로 믿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그분이 어떠한 관계인지 확실하게 압니다. 그분이 내게 무엇을 주려 하는지, 그분이 어떠한 절대적 실권을 가졌는지, 내가 그분과 어떠한 관계를 가져야 그분이 역사하시는지를 분명하게 압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주님이 지금 당장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도록 순종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 예수를 절대적 실권자로 인정합니다.

믿음은 왕을 인정하는 분량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왕으로 인정하는 자에게 믿음을 선물하십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왕께서 능히 모든 일을 행하실 수 있다고 인정하는 믿음의 사람에게 하나님이 가지신 왕의 실권을 부여하십니다.

아무런 믿음도 없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병자에게 손을 얹고 “주여, 손을 얹었으니 낫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다면 그 병자가 낫겠습니까? 소용없는 일입니다. 또 예수를 믿지 않고 무시하는 자가 “예수여, 나에게 이와 같은 일을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다면 응답을 받겠습니까? 예수께서 “네가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무엇을 해 주기 바라느냐?” 하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가 모든 병을 다스리고 고치시는 능력의 왕이라고 진정으로 인정하는 사람의 기도는 병든 자를 낫게 하는 놀라운 응답을 이끌어 냅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질병이 떠나가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는 말씀처럼 주님을 인정하는 믿음의 사람에게 능치 못할 일은 없습니다. 주님을 얼마나 존중하고 의지하고 믿고 인정해 드리느냐에 따라 우리 믿음의 분량이 결정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격차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사람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예수를 단지 나사렛에서 태어난 목수의 아들이라고 무시한 사람들은 모두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왕이라 고백한 마태처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왕으로 인정한 사람은 다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왕의 실권을 인정하는 믿음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왕을 인정할 때 얻는 영광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를 향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10:47) 하고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만 다윗의 자손입니까? 아닙니다. 당대의 수많은 사람이 다윗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바디매오는 그 수많은 다윗의 자손 중에 오직 예수에게만 ‘다윗의 자손’이라 지칭하며 불렀을까요.

바디매오는 예수를 전능하신 왕으로 인정했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왕, 무슨 말이든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고야 마는 절대 능력의 왕으로 인정했습니다. 다른 유대인들이 예수를 전쟁이나 식민지 생활에서 자유케 하는 왕으로 인식한 반면, 그는 자신의 불가능한 문제를 가능케 하실 왕으로 인정하고 믿었다는 말입니다.

이는 달리 말해 바디매오가 왕이신 예수의 실권을 믿음으로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은 곧 “왕의 자손 왕이여, 내가 당신의 실권을 인정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입니다.

그가 예수께 크게 소리치자 많은 사람이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더욱 소리를 높여 불렀습니다. 예수를 왕으로 인정하는 자의 외침, 예수의 신분을 인정하는 바디매오의 목소리가 주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드디어 바디매오가 예수 앞에 왔습니다.

“네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때 왕의 입에서 무슨 말씀이 나옵니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막10:52).

마침내 바디매오는 예수를 만나면 보게 된다고 믿었던 자신의 믿음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예수의 실권을 믿음으로 인정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지금도 주님의 실권을 인정하는 자를 찾으시고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바디매오처럼 주님을 인정하지 못합니까? 예수를 왕으로 인정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우리의 불가능에 개입하셔서 일하시는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바디매오는 눈이 멀어 가난하고 비천했고, 많은 사람에게 천대받고 무시당했지만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요 왕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 믿음 때문에 도무지 인간의 지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소경이라는 태생적인 문제를 한 번에 해결받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가진 모든 실권을 우리를 사랑하는 일에, 우리를 구원하는 일에, 우리를 축복하는 일에, 우리를 보호하고 고치고 생명 주시는 일에 사용하셨습니다. 이 왕의 실권을 인정하는 만큼 내게서도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왕의 실권을 인정한다면 죄에서, 저주에서, 질병에서, 악한 영에게서, 어떠한 고통에서도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체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를 주시려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확실히 인정하고 그분이 주시는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3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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