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때를 위하여 세월을 아끼라(19)] 날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라

등록날짜 [ 2018-04-25 17:20:34 ]

예수님이 세월 안으로 들어오셔서
인류 구원의 뜻 모두 이루신 것처럼
우리 각자에게 주신 세월 속에서
하나님 뜻 발견하고 이루는 삶 살아야


◆하나님을 배경 삼는 자
전능하신 하나님의 힘을 가지고 가는 곳에는 하나님이 도우시는 이적과 기사가 나타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드러낼 때 하나님이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주님이 주신 능력을 나타내어 살아 계신 주님을 드러내고, 주님의 생애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의 생명을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행 3:6).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에게 외친 말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죄 사함을 받으라.” “영생을 얻으라.”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믿고 자유를 누리고 영생을 소유했다면 그가 얼마나 부유한 사람입니까? 우리는 병자를 고칠 능력이 있고, 귀신을 몰아낼 능력이 있고, 생명의 말씀을 전해 줄 능력이 있고, 하늘나라를 줄 능력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주실 주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은 곧 최고의 부유를 가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들 중의 하나가 예수를 담대하게 말하고 예수를 위해 죽을 각오와 결심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이웃의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또 날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리 대단해도 전혀 부러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배경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날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려는 몸부림입니다. 하나님을 배경 삼고 살려는 것입니다. 과거에 유대인들은 영토가 없는 민족이요, 나라가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요, 배경이었습니다.

육신의 건강이나 미모는 세월이 흐르면 시들해집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은 끝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재물, 명예, 권세에 미쳐서 그것이 영원한 줄 착각하고 있지만 육신이 끝나는 순간에 사라지고 말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우리는 한시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영원한 것에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며 하나님을 배경 삼아 그분의 도우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월의 주인공 예수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만물을 세월 속에 두셨습니다. 또 인간도 그 세월 속에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2)고 하셨으니 세월의 창조자가 예수요, 세월의 주인공도 예수입니다.

건물은 세월이 갈수록 점점 낡아집니다. 건물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그 건물을 세운 목적대로 부지런히 사용해야 건물주에게 유익합니다. 우리 인생도 수명이 다하기 전에 창조자가 원하시는 예수의 일을 우리 생애를 통해 부지런히 이루어야 주님께도, 우리 영혼에도 유익입니다. 세월은 창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육신의 세월은 절대 멈추지 않습니다.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세월과 함께 인간과 만물이 운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유한한 세상에 영원하신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것을 오래전 선지자들이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육신을 입고 우리 대신 찔리시고 상하시고 징계를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속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선지자 침례 요한이 예수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마 11:3) 하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그렇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 인간과 똑같은 세월 속에 계셨습니다. 세월 밖에 계셨던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월 속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세월 속에 하나님이 정하신 뜻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세월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행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순간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예수의 육신을 통해서 세월 속에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과 같은 육체를 입고 하나님의 뜻을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이룰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아들 예수밖에는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선지자의 예언대로 어린양과 같이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아담 때부터 예수가 이 땅에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뜻은 세월이라는 터널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서 우리를 구원하실 섭리의 역사, 즉 예수의 사건을 세월 속에 묻어 두었다가 때가 되었을 때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의 재림은 다가올 세월의 어디쯤 묻혀 있겠습니까? 말세에 처처에 주님이 재림하실 징조가 있다고 했는데 그 징조는 세월의 어디쯤 묻혀 있겠습니까? 우리는 세월 속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캐낼 줄 아는, 세월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줄 아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제한 없이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7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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