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알코올 중독에서 해방시킨 ‘주님의 은혜’

등록날짜 [ 2004-08-27 11:55:50 ]

아내의 가출
1993년 여름, 술에서 깨어보니 집안에 인기척이 없었다. 아내가 세 살 박이 아들을 데리고 가출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술을 끊고 싶었다. 하지만 십년 넘게 신체 구석구석에 인이 박힌 알코올 앞에 나는 아무 힘이 없었다.
열여덟 살 때 고향 광주를 떠나 서울로 왔다. 의류회사에 취직해서 본격적으로 미싱 기술을 익히던 시절, 출퇴근 거리가 멀어서 잠잘 시간을 아껴야 했다. 늦게 잠들어도 아침 일찍 거뜬히 일어날 묘안을 찾다가 시작된 것이 취침 전 음주였다. 그렇게 철없이 시작한 음주습관은 10여년 간 거의 매일 계속됐고, 나는 ‘습관성 알코올중독’이라는 파멸의 늪에 빠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의지와 마성(魔性)의 치열한 전쟁
아내와 아들이 없는 빈집에 혼자 있으려니 술에 대한 자제력이 더 떨어져 밤낮으로 술만 마셨다. 가정을 파탄한 장본인이 바로 나라는 죄책감에 휩싸여 죽고만 싶었다. 그러다 ‘죽을 각오로 술을 참아보자’ 결심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술을 마시지 않자 금단 증세가 찾아왔다. 뇌신경에서 말초신경까지 온 전신의 세포가 반란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10년간 육체와 정신을 제 마음대로 지배해온 알코올의 마성(魔性)과 가정파탄과 인생파멸이라는 강에 배수진을 친 인간 의지와의 처절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를 악물었다. 온 몸에 땀이 배여 났고, 머릿속엔 온통 술 생각뿐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까 불면증의 괴물이 찾아왔다. 피곤해서 눈꺼풀이 내려오는데도 정신은 말짱했다. 3일간 잠 한숨 못 자니 미칠 지경이었다. 술 생각하지 않기 위해 소설책과 무협지 20~30권을 빌려와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러나 4일째, 극한의 피곤을 이길 수 없자 소주 한 병을 나발을 불었더니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3일간 책에 몰입하고 4일째 소주 한 병 마시고 잠에 빠져드는 금단 현상과의 전쟁이 6개월째 계속됐다.

간질발작으로 수차례 입원을 해도...
공사판에서 힘든 일을 하면 잠이 올 것 같아서 막노동일도 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아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들의 얼굴이라도 보고 가려고 처가에 들렸다가 울적한 마음에 술을 마셨고, 3일 연속으로 술을 마시다가 쓰러져 자는 중에 처음으로 금단간질발작을 하고 말았다. 의식이 없는 가운데 눈이 뒤집어지고, 팔다리가 돌아가고, 입에는 거품을 물고... 병원으로 실려 가서도 2~3일 동안 심하게 간질발작을 해서 팔다리는 침상에 묶여 있었다. 그 상처가 지금도 남아있다.
퇴원 후에 고향집에서 몇 개월 지내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자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올라온 후 소주 한 병 이상은 절대로 안 마시기로 결심했지만, 술자리에 가면 도저히 절제가 불가능했다. 이젠 마셨다 하면 2-3일씩 연달아 마시는 것이 습관화가 돼 버렸다. 혼자 지내는 동안 또다시 여러 차례 금단간질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 갔다.
도저히 안돼 아내를 찾아가 함께 살아달라고 사정을 했다. ‘제발 아이 생각해서라도 술 끊고 정신 좀 차리세요’하는 아내의 애원에 가슴이 찢어졌다. 고맙게도 아내는 2년 가까운 별거생활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주었다.



알코올에 사로잡힌 노예일 뿐...
아내와 합친 후로 죽을 힘을 다해 술을 끊었다. 그러나 생각 속에서는 날마다 술과의 치열한 전쟁이었다. 아내와 아들이 잠을 자도 나는 불면증 때문에 자지 못하고 책을 보거나 TV를 봐야했다.
그러다 회사의 중요한 일 때문에 또다시 술을 한잔 마시게 됐다. 두 달 만에 술을 마시니 연달아 5일 동안 밤낮으로 술을 마셨다. 술이 덜 깬 상태에서 다음날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취하면 자고 잠에서 깨면 다시 술 마시고…. 그렇게 하기를 6일째, 몸이 더 이상 술을 받아들이지 않고 토해낼 지경이 돼야 멈췄다. 제대로 먹지 않고 빈속에 알코올만 들어가니 몸은 만신창이였다. 술 마시는데 5일 회복하는데 5일, 그럭저럭 술로 열흘씩 보냈다. 5일 장거리 폭음은 처음엔 6개월, 3개월, 한달에 한 번, 나중엔 한달에 두 번씩이나 했다. 그럴 때는 이미 내 정신이 아니었다. 알코올의 마력(魔力)에 사로잡힌 노예일 뿐. 정말 나 자신이 겁이 나고 무서워졌다. ‘다시는 안 마셔야지’하며 며칠을 참다가도, 술만 보면 또 마시고, 그 생활이 반복되었다.
그 지경이 되니까 자꾸만 귀에 헛소리가 들려왔다. 직장 동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데 내겐 나를 욕하고 험담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종의 정신분열증세인 알코올성 환각증이었다. 한번은 아내가 없는 동안 취중에 어디엔가 부딪혀 얼굴이 피범벅인 채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한 아내가 119를 불러 병원에 가 여러 바늘을 꿰맸다. 이제 내 자신이 겁도 나고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내 발로 정신과 병원에 찾아가서 입원했다. 그러나 그곳에도 특별한 처방은 없었다. 단지 술과 격리돼 술에 대한 자극이 덜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이젠 ‘이러다가 죽는 것은 아닐까’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왔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중에도 잠시도 잠을 자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떴다. 잠이 들면 영영 못 깨어날 것 같아서였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주님을 만나
바로 그 시점에 이웃 집에 살던 조현미, 김형우 집사 부부를 만났다. 조 집사는 틈만 나면 아내에게 교회에 다니자고,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아무리 심한 알코올 중독자라도 치유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아내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 가겠노라고 약속했고, 나도 술김에 승낙을 했다.
내 나이 34살이던 1996년 5월, 아내와 함께 연세중앙교회 금요철야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날도 나는 술을 마셔서 인사불성인 상태였는데, 그로리아 선교단원인 자매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찬양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주일날 다시 한번 교회에 가기로 했지만 토요일부터 시작된 술이 주일날 새벽까지 계속돼 도저히 교회에 갈 수가 없었다. 아내만 예배에 참석해서 은혜 받고 새신자 등록을 했다. 그리고 나를 다음 예배에 참석시키려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방안에는 뜻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내가 방바닥에다 잔뜩 토해놓고 거기에 얼굴을 묻은 채 질식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깜짝 놀란 아내가 나를 흔들어보았지만 숨을 쉬지 않았다. 얼마 뒤, 내 입에서 술인지 물인지 분간 못할 액체가 쏟아져 나오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불과 몇 분만 늦었어도 나는 그날 죽음의 문턱을 넘었을 것이었다. 아내의 뒤를 따라 들어온 조 집사 부부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서 악한 사망권세 속에서 지켜주셨음을 감사하고, 악한 술 귀신들이 떠나가게 해달라고 수십 분을 간절히 기도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곧바로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했고 조 집사 부부를 따라 매일철야예배까지 드리게 됐다. 교회에 가서 찬양을 듣고 따라 부르는 것이 너무 좋아서였다. 알코올 중독의 고통스런 세월 동안 내겐 울부짖으며 매달릴 대상조차 없었는데, 이제 울며 내 사정을 고백할 분이 계시고, 그분께 노래하며 내 마음을 아뢸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집에서도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하루 온종일 찬양 테이프와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들었다. 그러자 지긋지긋하던 술 생각이 사라졌다. 예전엔 술 생각이 들어오면 100프로 져서 술을 마셨는데 그렇지 않았다. 교회 온 지 두 달이 지날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금단 현상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교회 등록 한 지 2개월 무렵, 아내와 하기성회 참석 여부를 놓고 실랑이를 하다가 그만 홧김에 한 잔 마신 것이 주일날도 새벽까지 계속 술을 마셨다. 교회도 못 가고 술에 취해 누워있는데 남전도회원들이 찾아와서 씻겨주고 옷을 입혀서 교회로 데려다 주었다. 저녁 예배를 드린 후 남전도 회장이 김종선 사모님께 기도 받으러 가자고 나를 데리러 왔다.
사모님은 술로 역사하는 악한 영들을 예수 이름으로 강력하게 몰아내셨고, 나는 온몸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기도가 끝났는데 오른손이 술 잔 잡는 형태로 굳어지고 마비가 되어 한참을 못움직였다. 내 손을 보는 순간, ‘아, 이것은 하나님의 경고구나! 이 손으로 한번만 더 술잔을 들면 큰 일이 나겠구나’ 싶었다. 한참을 주물러서 손을 폈다. 곧이어 심한 구토가 터져 나왔고, 지쳐있던 몸이 가뿐하고 정신이 맑아졌다.

그날 이후 9년이 지난 지금까지 술은 한 모금도 입에 댄 적이 없다. 술 생각 자체가 안 났다. 할렐루야!
이전에 나를 알던 사람들은 변화된 나의 모습이 믿기지 않는다며 ‘정말 하나님이 술 끊어주신 것이냐’고 묻는다. 16년 동안의 알콜 중독. 끝이 보이지 않던 그 죽음의 수렁에서 어찌 사람의 힘으로 나올 수 있었겠는가? 인간의 의지와 인간의 의학이 무능하게 멈춰 선 그곳에서 하나님만이 일하셨고, 내가 몰랐던 악한 영의 행패가 예수의 이름 앞에 떠나가니 죽는 날까지도 불가능했을 육체적·영적 질병이 깨끗이 치유되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남은 나의 생애동안 아무 쓸모없는 이 초라한 자를 살려주신 하나님만을 찬양하며 살고 싶다.

위 글은 교회신문 <6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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