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합병증, 절망을 치유하신 하나님

등록날짜 [ 2005-03-05 18:14:17 ]


눈물의 순애보
9년 전 내가 연세중앙교회를 처음 찾은 것은 순전히 ‘병을 고쳐 볼까’하는 마음에서였다. 당시 내 나이 42세였고, 당뇨 신경합병증으로 5년째 투병 중이었다. 양쪽 팔이 벌벌 떨리고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에다, 물 한 모금 못 마실 정도로 소화 기능이 정지되는 위 무기력증, 그리고 불면증과 함께 각종 당뇨 만성합병증세로 2년간의 장기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러던 중에 소화제를 투여하는 링거마저 쇼크 증상을 일으켰고 병원에서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며 사형선고를 내렸다. 남편은 자기 힘으로 나를 살려보겠다며 퇴원시켰다. 집에 돌아오자 초등 3학년 때 두고 간 아들이 5학년으로 성큼 자라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죽으면 충격을 받을까봐 남편이 아들을 병실에 일절 데려오지 않았었다.
남편은 자신의 신병을 이유로 6개월간 병가를 내서 본격적으로 나를 간병했다. 주방장을 고용해 당뇨식이에 맞도록 미음을 끓이게 했고, 한 스푼을 먹일 때마다 등을 문질러서 트림을 시키고, 또 한 스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눈물겨운 남편의 극진한 간병으로 소화제 링거 없이도 음식물을 조금씩 섭취하며 연명했다. 설상가상으로 운동 중에 넘어져서 좌측 어깨와 팔을 이어주는 관절의 인대가 끊어지고 말았다. 혈당치가 높아 수술도 못하고 저절로 붙을 때까지 진통제만으로 그 큰 고통을 견뎌야 했고, 이제 혼자서는 앉지도 눕지도 못하게 돼 버렸다. 남편은 나의 식사 수발은 물론 세면과 대소변까지 일일이 돌봐주었다. 철부지 아이처럼 잠시도 떨어져 있기를 싫어하는 나 때문에 남편은 사직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직장 상관의 배려로 관사로 이사했고, 남편은 근무 중에도 자주 집에 들러 나를 돌봐 주었다.
어느덧 남편이 나의 병상을 지킨 지 5년째, 나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주저하지 않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건만 해가 갈수록 나의 병세는 점점 더 깊어만 갔다.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남편은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난생처음 새벽이슬을 밟으며 교회란 곳을 갔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어린 아들을 봐서라도, 제발 병든 아내를 살려 달라며 간절한 눈물의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은 남편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뭔가 나를 붙잡고 있다!
35kg의 불면 꺼질 것 같은 병약한 몸이었지만 어린 자식의 간식만큼은 직접 내 손으로 사주고 싶어 집 근처 분식점을 찾았을 때, 병색 짙은 나의 몰골이 안타까웠는지 주인아주머니가 전도를 했다. “불치병자들이 생의 마지막 코스로 찾아왔다가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의 기도로 고침 받고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소리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를 찾게 되었다.
남편의 부축을 받아가며 빠짐없이 예배에 참석해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어보니, 내가 얼마나 “나는 아파서 못해”라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왔는지를 깨달아 갔다. 교회 다닌 지 8개월 무렵엔, 42년 내 인생의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뇨 신경합병증으로 인한 하혈로 교회도 못가고 누워 있는데 김종선 사모님이 심방을 오셨다. 좁은 집에 벽마다 온통 갖가지 물리치료기기가 매달려 있는 모습에 사모님도 “이 정도로 심하냐”는 듯 놀라시는 눈치셨다. 심방예배를 드린 후 사모님께서 나를 붙들고 애통하는 심정으로 기도해 주시더니 대뜸 “팔을 들어올려 보세요"라고 하시는 거였다. 그 순간, 뜻밖에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나의 좌측 팔이 머리 위로 번쩍 들려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어, 어...”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통증 하나 없이 저절로 번쩍 들려 올려지는 팔을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재빨리 사모님께 오른쪽 팔을 내밀었다. "사모님, 이 쪽 팔도 고쳐보세요!” 그러나 사모님은 빙그레 웃으시더니 “그 팔은 성도님이 믿음으로 직접 고치세요.”라며 심방을 마쳤다.
교회분들이 돌아간 후에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하니 한참을 앉아있었다.
‘아, 뭔가가 나를 붙잡고 있었구나!’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간 “나는 안돼, 나는 못해.”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타고 악한 영들이 내게 역사하고 있었다는 것, 사모님의 예수 이름으로 하는 영력 있는 기도 앞에 악한 영들이 떠나가자 통증이 사라지면서 팔이 들렸다는 것,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알았던 영적인 역사를 직접 체험하고 나니 마치 깜깜한 밤에 서치라이트가 비추는 듯 환히 깨달아졌다.

악한 영과의 싸움을 이기고
사모님이 집을 나가시자 좌측팔에 다시 통증이 왔지만 ‘다시는 속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이를 악물고 울어가며 설거지를 하고, 화장실 사용도 내 힘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날 당장, 2년 동안 받아오던 물리치료 마사지를 끊었다. 그리고 5년째 먹고 있던 수면제, 소화제, 손 저리는 데 먹는 약 7-8 가지를 끊기로 작정하고 양을 줄여나갔다. 그중에 가장 끊기 힘든 것이 수면제였다. 나는 불면의 고통으로 방 네 구석을 질질 기어 다녀야 했고, 의지를 잃고 수면제 달라고 울부짖기도 했다. 남편도 울부짖는 불면의 고통을 함께 해 주었고, 결국 일년 만에 불면증의 고통에서 해방됐다. 그 무렵, 당뇨 신경합병증 투병생활 6년 만에 처음으로 소화제 없이 미음과 죽이 아닌 밥을 먹게 되었다. 모든 것이 예배시간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의지했기 때문이었다. 할렐루야!
병 고치려는 일념으로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다 보니, 예수님은 병만 고쳐주시는 분이 아니었다. 내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한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주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채찍에 맞으셨는데, 왜 나는 아직도 팔의 통증을 못 떨치고 이렇게 몇 년째 장애인 아닌 장애인의 삶을 살고 있는가?’ 한심한 내 모습을 깨닫고 죽든 살든 믿음으로 팔을 움직이자 결심했다. 그래서 몇 해째 집에 상주하며 일하시던 아주머니 대신 파출부를 불렀다. 처음 일년간은 반나절에 한번씩, 그 다음은 이삼일에 한번씩, 일주일에 한번씩, 점점 횟수를 줄여나가다가 삼 년 만에 완전히 혼자서 살림을 하게 되었다.

녹내장 치유받고 방언은사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약도 끊고 팔도 좋아지고 있는 중에 느닷없이 녹내장이 오고 말았다. 당뇨로 오는 녹내장은 시신경이 녹아내리기 때문에 첨단 현대의학으로도 실명의 위기를 모면할 방법이 없는 무서운 병이다. 몇 군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모두 똑같은 진단이었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 동안 가졌던 믿음 다 버리고 이 병원 저 병원 녹내장을 잘 본다는 병원을 쫓아다니면서 약에 매달렸지만 눈이 불탈 듯 아픈 통증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던 중, 흰돌산수양관에서 하계성회가 열렸다. 은혜 받으러 가면서도 안약을 챙기자 아들이 믿음 없다고 책망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죽어도 수양관 가서 죽자'며 안약을 내팽개치고 가서 하나님께 매달렸다. 어찌나 은혜를 많이 받았던지 그 다음 주에 열리는 성회에 또 참석했다가 방언 은사를 받았다. 하나님께 내 영의 일만 가지 사정을 아뢴다는 방언 기도가 내 입에서 터져 나오는 순간,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너무나 큰 기쁨과 평안을 체험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바로 그 순간, 그렇게 쑤시고 아프던 눈이 시원해지고 안압도 뚝 떨어졌다. 그 후 5년이 지났지만 단 한번도 안과에 가 본 적이 없다.

주님의 은혜 전도하는 자로 살리
처음에 병들어서 다 죽게 되어 이사 왔던 내가 건강을 되찾아 멀쩡한 사람이 되니 이웃사람들은 “원표 엄마 보니까 정말 예수 믿어야겠어”라고 말했다. 내가 동네에 나가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전도가 됐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나와 건강을 되찾고 보니 내 속에서 슬그머니 과거처럼 세상의 것들을 누리며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공부 잘하는 하나뿐인 아들 잘 키워서 최고로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자랐다. 예배는 빠지지 않았지만, 마음을 다 드린 예배는 이미 아니었다. 하나님은 세상으로 끌려가는 나를 방관하지 않으셨다. 기도 중에 아들의 모습을 보게 하셨는데 천길 낭떠러지에 서서한 발만 헛디뎌도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아찔한 모습!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경고임을 깨달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시 병들어 넓고 좋은 집에 살면 뭘 하나, 자식도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키워 주셔야 하는구나’ 확고한 깨달음이 왔다. 남편과 아들의 심한 반대가 있었지만 당첨된 고급 아파트로 이사하려던 계획 대신 성전 가까이 이사했다.
아침저녁으로 기도하고 전도하다보니 이제는 남편과 아들도 기도하는 생활을 하게 됐다. 우리 가족은 비로소 영적생활의 맛을 느끼고, 함께 천성을 향하는 믿음의 동역자로 하나가 되었다.
이제 나의 바람과 기도는 죽음의 문턱에서 나를 살리신 하나님, 내 질병 때문에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을 마음껏 전하는 전도자로 남은 생애를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7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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