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의 껍질 벗고 산후관절통에서 벗어나

등록날짜 [ 2005-08-05 11:09:50 ]


늦둥이 아이를 핑계로...
2003년도에 교회가 궁동으로 이전하자, 마음껏 기도하고 전도하며 충성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기도했더니 8년 동안 하던 가게가 곧 정리돼 성전 옆으로 이사를 했다. 그런데 이사 직후, 서른아홉의 나이에 뜻하지 않은 셋째를 임신해 전도는커녕 자신의 신앙생활도 제대로 못할 만큼 영육간에 침체가 왔다. 임신중독증과 고혈압까지 겹쳐 힘겹게 출산한 아이는 1.9kg. 인큐베이터 신세를 면한 것만도 고마워 산후열이 심한데도 몸조리를 제대로 못하고 애지중지 아이에게만 매달렸다.
그러다가 셋째를 출산한 지 10개월 무렵, 갑자기 산후관절통이 찾아왔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왼쪽 발목이 쑤셔대더니 오른쪽 발목관절도 퉁퉁 붓고 쑤셔댔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고통 속에 5일쯤 지났을 무렵부터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관절이란 관절은 모두 퉁퉁 부어오르고 엄청나게 쑤셔댔다. 설상가상으로 허벅지 아랫부분과 위 팔뚝에서는 쥐가 나서 심한 근육경련이 일어났다. 그 고통은 아이 셋 낳을 때의 산고를 다 합한다 할지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극심했다. 그 생지옥 같은 고통이 하루 24시간 연속 5일이나 계속됐다.
신기한 것은 그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진통제를 먹거나 병원에 갈 생각은 한번도 들지 않았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데, 하나님께 매달려야지…' 하는 생각뿐, 하지만 이런 생각과는 달리 당장 죽을 것 같은 고통이 몰려오면 “기도해 달라, 주물러 달라. 냉온찜질을 해 달라”며 자꾸만 하나님보다는 우선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매달렸다. 보다 못한 언니(이노희 교구장)가 ‘사람을 의지 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라'며 나를 교회에 데려다 놓았다.

고통 중의 깨달음
언니의 결단이 백 번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성전에 혼자 누워 있으려니 서러웠다. 쥐나고 쑤시고 저린 양쪽 팔로 의자를 집고 누웠던 몸을 일으키려면 족히 2~30분은 걸렸다. 혼자서 화장실까지 한번 가려면 눈물을 몇 번씩 흘려야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상황이 너무너무 서러워 의지할 데라곤 오로지 하나님뿐이라는 생각이 앞서게 되었다.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성전에서 하루 종일 기도하고 담임목사님의 설교테이프를 듣다보니 그제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지 나의 영적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인자 집사,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야.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해. 절대로 교만하면 안돼.”
연합예배 때나 심방 때 늘 내게 권면하시던 김종선 사모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 내가 교만했구나.' 지난 날 내 삶 자체가 모두 교만 덩어리란 것이 깨달아졌다. 하나님께서는 그 교만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회개케 하셨다.
가장 먼저 회개한 것은 남의 아픈 심정 몰라준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건강 체질이라 한번도 앓아누워본 적이 없었던 나는 정말 남의 아픈 심정을 조금도 헤아릴 줄 몰랐다. 심지어 권사이신 시어머니가 아프셨을 때도 위로는커녕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고 했는데 왜 믿음도 없이 자꾸만 아프세요?”라며 핀잔만 했었던 것이 그렇게 가슴 아프게 회개될 수 없었다.
또 나는 이제껏 내가 하나님을 사모하고, 내 시간 내서 기도하고, 남편과 가족을 열심히 섬기는 것이 신앙생활 잘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남을 사랑하지 못하고 그 입장이 되지 못한 것들이 교만이란 걸 깨닫게 하셨다. 또 내게 맡겨주신 영혼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닫게 하셨다. 같은 구역식구였으나 실족해서 교회를 떠난 한 자매의 모습이 떠올라 얼마나 울고 통곡했는지 모른다. 성전 맨 앞 환자석에 앉아서 예배 때 전도한 사람들을 앞자리에 앉히는 성도들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하나님, 저 사람은 저렇게 한 영혼 전도해 오는데 나는 왜 그 동안 저렇게 못했을까요. 하나님, 저 살려만 주시면 열심히 전도할 게요.’
얼마나 울면서 다짐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40년 내 인생 속에서 교만을 찾고 찾아 눈물로 회개하고 돌이킬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마비됐던 몸이 풀어지고 회복되어지는 것이 세미하게 느껴졌다. 그 즈음 김종선 사모님께서 기도해주시자 가슴정도까지밖에 올라가지 않던 팔이 어깨 위까지 쑥 올라가고, 쑤시고 아프던 부위들이 시원해졌으며, 팔 다리의 마비도 눈에 띄게 풀어졌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20일 가까이 무서운 통증으로 고통받다보니 몸무게가 무려 23kg이나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있는 통증도 통증이지만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하자 부축을 받지 않으면 한 걸음도 뗄 수 없었고, 뒷목과 어깨까지의 근육이 당기고 아파 수저도 겨우 들었다.
그 무렵 흰돌산수양관에서 추석성회가 열렸는데, 성회에 가기 전 친정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혈관수축증 등 오랜 지병을 앓고 계신 아버지께서 혹시 충격을 받으실까봐 내가 심하게 아팠을 때는 쉬쉬하며 알리지 않았었다.
“아버지, 저 이번에 아파서 죽을 뻔 했어요. 지금도 혼자서는 걷지도 못해요. 제 소원 하나 들어주세요. 아버지께서 이번 성회에 참석해서 은혜 받으시면 하나님께서 저를 완전히 치유하실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그러니까 딸 살리는 셈치고 꼭 오셔야 해요.”
아버지께 전화 한 후, 금식하며 기도했다. 아버지가 꼭 오시게 해주시고, 저의 병을 완전히 치유해주셔서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란 걸 아버지께 보여 달라고…. 생전 집 밖에서는 주무시지 않으시는 아버지가 3박 4일간의 성회에 참석하기 위해 흰돌산수양관으로 오신 것부터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랴!
처음엔 별일 아닌 일에도 화를 내시면서 집에 가시겠다고 고집하셨지만 나와 언니, 동생들이 인내하며 아버지를 섬기고 은혜 받으시기를 간구하자 이틀째부터는 아버지가 설교말씀에 은혜받으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말씀시간이면 우리들보다 먼저 앞자리를 찾아가시고 얼굴엔 미소가 감돌았다. 늘 약을 몇 봉지씩 드시던 분이 몸에 부기가 없고 혈색이 그렇게 좋으실 수가 없었다.
나 또한 애써 은혜받기를 사모하고 찬양할 때도 진정으로 눈물을 흘려가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런데 한참 찬양하다보니 놀랍게도 내가 두 손으로 힘껏 손뼉까지 쳐가며 찬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목사님께서 “이번 성회에서 은혜받고 병 고친 사람 일어나 보세요"라고 하실 때,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것이다. 혼자서는 한 걸음도 걷지 못할 뿐더러 앉고 서는 것도 모두 부축받아야 겨우 몸을 움직이던 내가 혼자 힘으로 벌떡 일어섰으니 내 자신은 물론, 주위의 성도들이 다 놀라서 쳐다보았다.
“아버지!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지요?" 친정아버지는 당시에 기뻐만 하실 뿐 선뜻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셨지만, 고향에 가셔서는 동네 분들에게 예수를 믿으려면 우리 자식들처럼 믿어야 한다고 자랑하시고, 늘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들으시며, 2남 4녀 중 유일하게 비신자인 오빠에게도 “너도 예수 믿어라"고 전도까지 하실 정도로 변화되셨다. 정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멋지게 역사하신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리
그렇게 주님 안에서 치유 받은 후, 교구장님을 따라 환자가 있는 집을 심방할 때면, 나를 치유하신 그 살아계신 하나님을 눈물로 간증하며 “나를 치료하신 하나님, 저 사람도 나처럼 저 무서운 질병의 고통에서 놓임 받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다. 기도할 때면 어느새 아픈 사람의 고통이 그대로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것은 바로 연약한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의 심정이리라.
20년 넘게 신앙생활 했지만, 믿노라 하며 교만의 껍질을 쓰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지 못했던 나! 이 죄인을 위해 채찍에 맞아 질병을 치유해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사랑해주신 주님의 그 은혜를 어찌 갚을 수 있을까. 주님 만나는 그 날까지 변치 않는 믿음으로 주님을 몰라 멸망하는 자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죽도록 충성하기를 원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7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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