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끝길 아버지를 하나님이 품으셨습니다

등록날짜 [ 2005-09-01 17:47:08 ]



아빠가 위암 말기라니! 그것도 온 몸에 암세포가 퍼져서 더 이상 의사도 손 쓸 수 없는 상태라니! 66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176cm, 90kg가 넘는 건장한 체구의 아빠. 얼마나 멋쟁이신지 아빠와 팔짱을 끼고 외출하면 친구들이 “미라 아빠 최고!"라고 칭찬이 자자하던 아빠.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아빠가 앞으로 몇 개월 살지 못하는 시한부 인생이 됐다니! 핏기 없이 사색이 된 엄마의 음성은 떨렸다. 오빠는 당장 입원 수속을 밟자고 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빠는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조용히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아빠의 모습에 가슴이 저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모두 넋을 잃고 침울하게 앉아있는데 아빠는 오히려 그런 가족들을 위로하셨다.
“내가 내일 당장 죽는 것도 아니잖니.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자꾸나.”
하나님을 믿는 나로서는 이번이야말로 아빠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빠, 이번 기회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매달려 봐요.”
아빠는 순순히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시며 나의 손을 꼭 잡으셨다.

13년 전, 신앙을 포기하셨던 아빠
13년 전 아빠는 나의 전도로 뜨겁게 예수님을 영접했다. 내가 연세중앙교회에 출석하면서 예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체험하자 하루빨리 가족을 구원하고 싶어 눈물로 기도한 지 2년만의 일이었다. 아빠는 윤석전 목사님이 전해주시는 하나님 말씀에 은혜를 받고 성령체험도 하셨다. 기도할 때는 어찌나 뜨겁게 기도하시던지 초신자가 40분씩 땀을 뻘뻘 흘리면서 커다란 음성으로 부르짖어 기도하셨다. 한번은 꿈에 윤석전 목사님이 나타나서 담배를 끊으라고 호통치셨다더니, 신기하게도 그 다음날부터 담배 냄새가 싫다며 수십 년 피워오던 담배를 하루 아침에 끊으셨고, 며칠 후엔 술도 끊으셨다. 제사가 귀신에게 하는 우상숭배(고린도전서 10장 20절)인 것을 아신 후로는 제사나 명절 때 우상의 제물을 드시지 않으려고 라면을 드셨고, 우상숭배 하는 자리를 피해 교회에서 기도하다 돌아오시곤 했다.
아빠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성장하는 것과는 달리 엄마는 장손인 아빠가 우상숭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반발이 무척 심하셨다. 언니와 오빠도 엄마에게 합세했다. 신앙과 불신앙간의 영적 전쟁으로 우리 집안은 하루도 평화가 없었다. 그렇게 팽팽한 긴장 속에서 7~8개월을 버티던 아빠는 차츰 예배에 불참하시더니 급기야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교회를 그만 다녀야겠다" 하시며 고심어린 표정으로 백기를 드셨다. 아빠는 다시 우상숭배를 하셨고, 더 세월이 흘러가자 아예 불신자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짓눌려 있던 아빠의 영혼
그 후 아빠가 벌인 부동산중개업이 어려워지자 더욱더 애써 하나님을 부인하시는 듯했고, 술자리도 자주 참석하셨다. 영적 갈급함을 채우려고 점쟁이와 절을 찾아 헤매이셨지만 어느 곳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고 괴로워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 무렵, 아빠의 방황도 큰 문제였지만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도 애통함으로 기도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 더 큰 문제였다.
아빠는 술을 드시면 결혼한 딸들에게 전화를 자주하셨는데 전화기에 대고 망원동 성전시절에 자주 부르던 찬양을 부르시곤 했다.
“오~, 자유, 비록 얽매였으나 이제 나는 돌아가리. 자유 주시는 내 주님께~”
찬양을 들으면서 아빠의 영혼이 얼마나 주님께로 돌아가고 싶어하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남편 사업이 어려울 땐 내게 전화하셔서, 어려울수록 사람 원망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오히려 권면하시던 아빠. 왜 당신은 예배에 그렇게 못 나오시는지 안타깝기만 했다.

다시 무릎으로 회개하시다
그러다가 어느덧 13년의 세월이 쏜살 같이 흐른 것이다. 엄마 아빠랑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아빠도 예배 중에 눈시울이 벌게질 정도로 많이 우셨다. 예배 때마다 얼마나 많이 우시던지…. 자존심이 무척 강하셨던 엄마도 “내가 교회 못 가게 해서 네 아빠가 저렇게 됐다" 하시더니 예배 때마다 하나님께 매달리며 “아멘! 아멘!" 하시고 은혜를 사모하셨다.
아빠는 가장 먼저 우상숭배한 죄를 회개하시고, 집안 곳곳에 있는 타종교 그림이나 제사 지낼 때 사용했던 제기며 젯상까지도 모조리 버리셨다. 엄마 아빠 두 분 다 예배와 기도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어린아이처럼 간절히 매달리시자 곧 성령이 충만히 임하셔서 두 분이 한 날 한 시에 방언의 은사를 받으셨다. 그 후 위암 말기 환자의 말할 수 없는 고통 중에도 새벽이면 애통해하며 눈물로 1시간씩 무릎 꿇고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셨다.
아빠의 기도는 당신을 살려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 66년의 생애 동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범했던 수많은 죄에 대한 회개였고, 아직 예수 믿지 않는 큰딸과 아들을 주께로 인도해 달라는 애절한 간구였다. 하루하루 암세포에 무섭도록 잠식당하는 육신의 고통 중에도 몸부림치며 기도하셨고, 하나님께서는 그 뜨거운 기도들을 하나하나 응답하셨다. 그 결과 오랫동안 막혔던 사람과 물질관계가 해결되었으며, 올케 언니가 주님께로 인도되었다. 할렐루야!

놀라운 은혜 중에 하늘나라로
음식을 전혀 못드시고 계속 토하기만 하자 아빠는 입원하셨다. 예배엔 더 이상 참석을 못하시고 늘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테이프를 귀에 꽂고 지내셨다. 지그시 눈을 감고 “아멘! 아멘!" 하시는 음성만이 병실에 울려 퍼졌다. 집사님들이 진실하게 인도하시는 예배를 드리고 나면 아빠의 얼굴빛은 한층 환해지셨다.
같은 병실에서 하루밤 사이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병실을 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도 아빠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조금의 동요도 없이, 너무나 차분히 그리고 환한 얼굴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미라야, 난 하나님 아버지 집에 가고 싶다. 너무 너무 가고 싶다.”
아무 것도 못 드신 지 30일째. 거의 말을 못 하시면서도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엔 하루 종일 귀를 기울이셨고, 임종 일주일 전부터는 검은 액체를 계속 토해내셨다. 세숫대야를 바쳐들고 그 고통스런 모습을 지켜보는 나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런 중에도 아빠는 목사님을 뵙고 싶어 하셨다. 두 달간의 하계성회로 진액을 쏟아 전념하시는 목사님이 얼마나 피곤하고 지치신 줄 알기에 차마 오시라고는 못하고 그렇게 보고 싶어만 하셨다. 이심전심인지 목사님께서 성회를 다 마치시자 혼자 병실로 찾아오셨다. 13년간 목자와 성도 사이로 인연을 맺어 오신 두 분의 애틋한 영적 사랑의 교감이 오가는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목사님께서 간절히 빌어주시는 축복의 기도까지 받으시고 아빠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다. 다음날, 엄마가 낭독해주시던 사도신경에 “아멘! 아멘!"으로 화답하시다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한참을 환희의 미소를 지으시다가 아빠의 영혼은 그렇게 홀연히 떠나가셨다. 그렇게도 가고 싶어 하시던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 영원한 천국, 주님의 품으로....
장례 직후까지만 해도 아버지 제사를 지내야한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던 오빠에게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아빠가 하나님 앞에 돌아와 뜨겁게 회개하고 우상숭배를 다 끊고 천국에 가셨는데 이제 다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내 작은 간증을 마치며
아빠의 장례식 직후 아빠의 가까운 친지분이 바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셨고, 그 후 오빠도 믿음을 가졌다. 외가 식구도 잊을 만하면 한번씩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곤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중의 한 과정임을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언니가 돌아올 차례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듯 내 가족의 영혼 또한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안다.
아빠의 회심을 통해 이러한 은혜를 내게 베푸신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며 다시 한 번 나를 뒤돌아보게 된다. 나는 비록 연약하지만, 그러나 나의 연약한 모습을 통해 아빠의 영혼을 구원해 주시고 다시금 하나님의 사랑 안에 푹 잠길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7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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