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우울증에서 건지신 주님

등록날짜 [ 2005-11-09 11:44:10 ]

오랜 신앙생활 끝에 깨달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울증 치료받아


“언니, 제발 살려줘”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린 지 한 달째다. 두렵고 불안해서 도저히 살 수가 없다. 나이 40인데 우울증 경력은 20년이 넘는다. 신앙경력도 그에 못지 않게 탄탄한 내게 왜 자꾸 이런 고통이 찾아오는 건지.... 더 이상 나를 주체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언니에게 살려 달라고 전화를 했다. 언니는 그런 나를 연세중앙교회에 데려왔다. 어떻게든 하나님께 매달려 정상적인 상태로 살아보려고 아예 노량진 교회 근처로 이사까지 했다.
그런데 영력 있는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금세 좋아질 거라는 언니의 말과는 달리 나의 상태에는 진전이 없었다. 우울증으로 인한 대인기피증이 심각해져서 예배시간에는 사람을 피해 2층 맨 뒷좌석에 앉았다. 어떤 날은 아예 귀를 막고 말씀을 듣지 않았다. 어쩌다 말씀을 들으면 윤석전 목사님이 성경에 있는 말씀을 전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내 속에서는 그 말씀들을 가지고 빈정거렸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이렇게 나를 예수 믿으라고 괴롭히시나요? 예수님이 내 병을 치유하려고 채찍에 맞으셨다는데 왜 나는 아직도 이렇게 아픈가요?’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간절히 체험하고 살고픈 ‘나'와, 사사건건 말씀을 대적하고 거부하는 ‘또 하나의 나'가 내 안에 공존하며 나를 괴롭게 했다.
아무리 옳은 생각을 하려고 해도 내 의지는 나와 무관했다. 교구장님과 지역장님이 심방을 와서 하나님 말씀에 반대되는 생각을 주는 것은 악한 영의 역사라고, 예수 이름으로 몰아내야 한다고 눈물로 기도해주어도 귓전에서만 맴돌 뿐 심령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년 신앙경력에 성경공부라면 안 해본 것이 없는 내게 악한 영의 역사라니?’ 믿어지지도 않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날이 갈수록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다. 세탁기 버튼 하나 누를 기력이 없었고, 며칠째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도 잃은 채 희망이란 단어는 내게 사치처럼 느껴졌다.
‘하나님이 버린 사람, 구제불능의 인간, 인간쓰레기 그게 나란 말인가!’
하루하루가 죽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내적치유를 받았지만...
나는 8개월 만에 연세중앙교회를 떠나서 내적 치유를 받았다. 우울증의 원인은 어린시절 노점상하시는 어머니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술 취한 아버지에게 매 맞은 아픈 상처들이 너무 많이 쌓여 그런 거라고 했다. 나의 고통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는 그곳이 천국이지 싶었다. 직장도 다니며 정말 사는 것처럼 살고 있다고 믿으며 2년을 보냈다. 그런데 사람의 위로로 행복해 하며 살다보니 하나님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러다 다니던 직장을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만두게 되자 그 충격으로 다시 우울증이 찾아왔다. 이전보다 몇 배로 더 심각하게.
방에 들어가도, 밖에 나가도 괴로웠다. 서 있을 수도 없고, 앉아 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불안했다. 마음에 평안이란 한 자락도 존재하지 않을 만큼 두려웠다. ‘이렇게 미쳐가는구나!’ 잠을 자면 괜찮으려나 하고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엎치락뒤치락거리며 뜬눈으로 날을 새기 일쑤였고, 생각 속에 헛되고 더러운 생각, 하고 싶지 않은 이상한 생각들이 나를 짓눌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덫에 걸린 것 같았다. 도망치려면 점점 더 조여오는 덫.
“하나님, 제발 살려주세요. 이 끝 모를 두려움의 결박에서 해방시켜 주세요.”
일기장에는 날마다 내 영혼의 절규들로 빼곡히 채워지고 있었다.
언니의 설득으로 2년 만에 다시 연세중앙교회로 돌아왔다. 하지만 우울증세가 심해진 것처럼 거부감 또한 더 한층 심해졌다. 연세중앙교회를 생각하면 아침에 일어나도 싫고, 예배드리러 가는 것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심정이었다. 교회가 궁동으로 이사했기에 차를 타고 예배드리러 갔다가 윤석전 목사님의 모습을 보고는 두려워서 그대로 집으로 되돌아간 적도 많았다.
멍하게 생각을 놓고 할 일 없이 길거리를 배회하기도 했다. 한번은 시댁인 무주에 가려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갔더니 표가 매진됐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도 집으로 가는 시내버스 정류장과 고속버스터미널을 넋 나간 사람처럼 대여섯 번을 왔다갔다 했다. 함께 있던 아이들이 다리 아프다고 짜증을 낼 때서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섬뜩하고 무서웠다. ‘내가 왜 이렇지. 이렇게 정신을 놓으면 큰일나는데....’
겁에 질려 정신과 치료를 받아 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기도원에 가서 한 달 이상 머물며 금식하며 기도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만 속절없이 흐를 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생각과 의지를 빼앗기고 있었다.
여기저기 교회를 옮겨 다녔지만 어떤 설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우연히 조용기 목사님의 저서를 뒤적이다가 그리스도인들이 싸워야 할 대상이 ‘환경, 자기 자신, 악한 영’이라는 부분을 읽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제까지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믿어지지도 않았던, 내가 악한 영에게 붙들렸다는 것이 사실이라니.... 조용기 목사님이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 대해 쓴 글은 20년간 우울증이란 이름으로 내가 당한 고통의 증상들과 너무나 일치했다.
‘아, 여태껏 내가 악한 영들에게 붙들려 고통당한 것이구나, 교구장님 지역장님이 와서 귀에 못이 박히게 말씀하시던 마귀역사가 이거구나. 그렇다면 연세중앙교회에 가야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몹시 망설여졌다. 사실 연세중앙교회엔 죽기보다 가기 싫은 두려움이 여전히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고, 염치도 없고 창피해서라도 두 번 다시 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터였다. 하지만 살고 싶었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마음껏 행복을 누리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제가 연세중앙교회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가겠습니다. 대신 살고 있는 전셋집이 3일 만에 나가세 해주세요.'
될 턱이 없을 거라 믿고 기도한 기도가 정말 3일 만에 응답되었다.

20년 신앙계급장을 떼어내고
이제는 20년 신앙경력의 계급장을 떼어내고 직분자들의 권면에 무조건 순종하기로 결심했다. 매일 오전 지역 기도모임에 참석하고 집에선 윤석전 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틀어놓았다. 그렇게 한달쯤 지난 어느 날, 어둡다 못해 캄캄한 나의 심령에 한 줄기 말씀의 빛이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가 나의 심령에 꽝꽝 울려왔던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저주를 받으셨기 때문에 당신이 당하는 어떠한 저주라도 다 떠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당신의 사망할 죄 값을 갚아 주셨으니, 이미 당신은 지옥의 멸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죄에서 저주에서 질병에서 영원한 해방을 받았습니다!”

20년 동안 신앙생활하면서 성경공부라면 별의 별것을 다해 보고, 성경구절을 누구보다 많이 줄줄 외우던 내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주신 것이 다름 아닌 바로 나를 위한 것임을 그렇게도 생생히 실감하기는 처음이었다. 오랜 세월 밤마다 그렇게 애절하게 제발 살려달라고, 제발 마음의 평안을 달라고, 이 두렵고 불안하고 고통스런 마음에서 해방시켜달라고 애타게 기도했으나 만나지 못했던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지만 무지해서 악한 영에게 속고 고통당했던 일들이 이제는 확실히 믿어졌다. ‘결국은 나를 죽이려고 그렇게 괴롭혔구나. 나를 지옥 끌고 가려고...' 살아 있으나 지옥 같은 날들, 나의 의지랑 상관없이 허비한 날들이 깨닫고 나니 분하고 치가 떨렸다. 그 동안에는 모르고 속았지만 이제 알았으니 어떻게든 몰아내고 싸워서 이겨야 했다.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은혜받으면서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한 진단을 받았다. 악한 역사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생명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전도하는 것이라는 처방전도 함께 받았다.
그 후 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악한 영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지금은 예수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말씀을 들으며 기도하고 오늘도 나와 같이 악한 영의 역사로 고통당하는 사람들, 예수를 몰라 세상에서 방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이 시간 오직 감사와 눈물밖에 없다.
“암흑 같은 어둠에서 한줄기 빛으로, 깊은 수렁에서 건져 주신 주님! 나를 살리신 주님을 죽는 날까지 전하며 살게요.”

위 글은 교회신문 <7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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