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라는 이름으로]“예쁘게 찬양하고 기도하던 고사리손 지금도 눈에 선해”
윤유리 교사(유치부)

등록날짜 [ 2021-04-24 16:29:40 ]



‘아이들이 좋다.’ 주님 주신 이 마음으로 아이들을 섬겨 왔다. 교회학교 교사로 충성한 지 어느덧 11년째다. 교회학교 교사 직분은 몸에 꼭 맞는 옷처럼 내게 잘 맞는다. 하나님께서 사랑할 마음을 듬뿍 주셔서 아이들이 변함없이 예뻐 보이기만 한다.


12년 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사촌오빠에게 전도받아 연세중앙교회에 왔다. 찬양대원과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충성하면서 교회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는 감동을 받았다. 마침 친한 지인이 유년부 교사 직분을 맡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교사로 지원했다.


초보 교사로서 선배 교사들이 아이들을 섬기는 모습에 무척 감동받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아이들을 귀한 한 영혼으로 대하면서 기도, 찬양, 예배 태도를 철저하게 지도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 말씀으로 자라게 하려면 세심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으므로 교사가 된 지 얼마 안 됐지만 영어예배를 구상해 보라는 요청을 받았다. 동료 교사들과 협력해 ‘영어 뮤지컬’, ‘잉글리시 쿠킹클래스’ 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해 영어로 복음을 전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물론 학습 효과가 뛰어나 비신자 학부모님도 자녀들을 흔쾌히 교회에 보내 주셨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느냐만 오랜 교사생활 중 현종이 삼 남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담당하던 시기에 초등 1·2·3학년 연년생이었으니 지금은 남매 모두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어느 날 새벽, 삼 남매의 어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저 좀 도와주세요. 지금 집으로 와 주실 수 있나요?’ 갑작스러운 연락에 의아했지만 채비를 갖춰 이른 아침 현종이네로 갔다. 어머니는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만삭이던 어머니가 며칠 전 크게 넘어지면서 배 속의 아이를 사산했는데 형편이 어려운지라 병원에 못 가다 몸이 이상해지니 담당교사인 내게 급히 도움을 청한 것이다.


어머니를 병원에 데려다 드린 후 주일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돌아왔다. 현종이 어머님의 사정을 전했더니 교회학교 교사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병원비를 전했다. 며칠 후 몸을 회복한 어머니가 교회로 오셨다. 교사들이 주님처럼 섬기자 감동해 마음 문을 열고 장년예배를 드리러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어머니와 삼 남매는 말씀에 은혜를 듬뿍 받으며 예배드렸다.


첫째인 현종이는 당시 SNS 프로필에 ‘예수님의 아들 유현종’이라고 적어 놓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내 마음 한편에 현종이네가 남아 있다. 해맑던 삼 남매 얼굴이 자주 생각난다. 어디에 있든 예수 안에 살고 영혼의 때가 복되기를 생각날 때마다 기도한다.


어린 영혼을 주 예수께 이끄는 교사로 써 주시니 감사하다. 내 대신 십자가에 죽으셔서 나를 살리신 예수의 십자가 피의 은혜 앞에 더욱 마음 다해, 하나님이 쓰시는 한 끝까지 충성하리라 다짐한다. 이 모든 일을 하신 주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린다.


/손미애 기자


윤유리 교사(유치부)

위 글은 교회신문 <69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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