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굴곡마다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등록날짜 [ 2004-02-25 15:17:19 ]

하체 마비자를 걷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를 처음 부르신 것은 일곱 살 코흘리개 시절이었다. 6·25 직후 가난하고 굶주렸던 시절, 구호물자인 우유와 강냉이를 얻어먹는 재미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자라면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좋아서 “절에 이름을 올렸으니 교회에 절대 가지 말아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공동묘지와 바다를 지나야 하는 20리 외진 교회 길을 혼자서 찬양하며 뛰어다녔다. 그런데 10대 후반에 중장비 기술을 배워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부터 주일을 지키기 어려워지자 결국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중 24살 때, H건설에 입사해 일을 하다가 9m 30cm 깊이의 콘크리트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추락 직전, 나의 귓전을 울리는 커다란 소리가 있었다. “머리 붙잡아라!” 분명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나는 재빨리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고 떨어지는 바람에 현장에서 죽는 것을 모면했다. 하지만 허리뼈가 네 군데나 부러지면서 신경을 압박해 하체는 완전히 마비되고 말았다. 국내에서 최고로 권위를 인정받는 의료진들로부터 평생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자식도 낳을 수 없으며 남의 손에 대소변 받아내면서 살아야한다는 정밀검진 결과를 받자 나는 미친 듯 날뛰었고 급기야 자살을 결심했다. 치사량에 가까운 수면제를 모으면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하루는 동료 총각집사가 찾아오더니 내 속을 들여다 본 듯 말했다.

“자살하면 지옥 갑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옥이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 여러 번 설교 들었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러다 날마다 병실로 찾아와 기도해주는 전도사님을 통해 다시금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갖게 됐다. 전도사님의 “하나님께 100일 작정으로 기도해보세요”라는 권고에 거처를 병원 내 교회로 옮기고 밤낮으로 부르짖어 기도했다. 그런데 100일을 삼일 앞둔 날 밤, 잠자는 도중에 허리가 세 번씩이나 불이 붙은 듯 뜨거워 견딜 수 없더니 다음날 아침, 2년 동안 꼼짝 못하고 누워서 지내던 내가 거짓말처럼 일어나 앉고, 서고, 걷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말로만 듣던 ‘하나님의 기적’이 내게 일어난 것이다. 세상에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쁨과 감사를 억제할 길이 없어 보상금으로 부지를 구입, 전도사님과 함께 천막 교회를 개척했다. 날마다 하나님이 나를 고치셨다고 간증하고 다니자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왔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열정적인 평신도 사역

“하나님, 자유롭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직장을 주세요” 퇴원한 후, 나의 기도제목이었다. 다시 건설현장으로 돌아가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곧 기도의 응답이 왔다. 당시 한창 붐을 일으키던 중동건설 현장. 그곳엔 주일 휴무에다 현장에 교회도 있다고 했다. 당장 K그룹에 이력서를 내고 신체검사를 받았다. 퇴원한 지 6개월밖에 안돼 하체 기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통과됐다. 평균 40도를 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몸을 안 사리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자 마비가 덜 풀어진 엉덩이 부위에 네 군데 상처가 났다. 치료를 받았지만 계속 살이 썩어 들어갔다. 귀국을 재촉하던 의사는 강제귀국을 시키겠다느니, 죽어도 좋다는 각서를 쓰라느니 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나는 계속 사우디에 머물렀다. 한국에 돌아가도 기술이 있으니 밥 굶을 일이야 없겠지만 어차피 덤으로 사는 인생, 자유롭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다 죽자는 각오였다. 살 썩는 냄새 때문에 숙소엔 들어가지도 못하고 매일 밤마다 교회에서 엎드려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나의 간절한 눈물의 기도를 들으신 지 4개월 만에 다시금 내게 치유의 손길을 펴시고 깨끗이 완치시켜주셨다. 할렐루야!

나에 대한 소문이 현장에 퍼지자 현장 교우들이 설교를 맡아달라고 했다. 사우디가 이슬람국가여서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 들어오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설교를 한 것이 귀국할 때까지 3년간이나 계속됐다. 전도하다가 발각되면 종교법으로 처벌받는 위험한 지역이지만 주일마다 한국인 환자들을 찾아가서 암암리에 전도를 했다. 홍해 바닷가 음나지 현장에 있을 때 처음엔 불과 몇몇이서 예배드렸으나 2년 후엔 현장인부 800여 명 중에 560명이 모여 예배드릴 만큼 부흥됐다.

하나님을 멀리 할 때 악한 영의 유혹이...

3년 6개월 동안의 열정적인 사우디 생활을 접고 귀국하자 곧장 개척했던 교회를 찾아갔다. 한국에서도 사우디에서의 여세를 몰아 열심히 전도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개척 멤버들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은데다 낯선 목사님이 목회하고 계시자 서운한 마음에 그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정착할 교회를 찾아 여기저기 방황하는 동안에도 시험은 계속 됐고, 그러는 동안에 사우디에서의 전도의 열정, 기도의 열정은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당시 사우디에서 벌어온 돈으로 토목공사 하청 일을 시작했다. 사장님 소리 들으며 사업이 안정되자 예전과 같이 애틋하게 신앙생활 잘 하고픈 마음이 사라지고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는 동안 10년 세월이 흘러갔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날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는데도 3-4년에 한번씩 부도를 맞아 번번이 알거지가 되기를 세 번.

세 번째 부도 맞고 지하 월세방으로 이사 갔을 때는 낙심한 마음에 정신을 멍하니 놓고 있다가 순식간에 악한 영에게 생각과 정신을 빼앗기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악한 영은 나를 무당으로 만들려고 신내림굿을 받게 했다. 굿이 한 시간가량 진행되는 동안 내게 희한한 귀신의 능력이 나타났다. 그러던 차에 솥 단지채로 밥이 올라왔다. 솥뚜껑이 열리자 놀랍게도 하얀 쌀밥 윗부분에 십자가 형상이 깊이 패여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보는 순간, 제 정신이 들었다. ‘아, 내가 왜 여기 있지’ 주위를 둘러보니 무당들이 모두 일시에 벙어리가 된 듯 말을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다. 손짓 발짓으로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시를 해보이며 자신들에게 해가 끼칠지 모르니 뒤돌아보지 말고 빨리 산을 내려가라고 통사정을 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었다.

나를 위해 흘리신 십자가 보혈

그 후로는 정신을 차려 신앙생활을 하던 중, 하루는 아내의 친구가 놀러왔다. 저녁 무렵 예배를 드리러 간다고 하기에 차로 데려다 준다는 것이 우리 부부도 함께 연세중앙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됐다. 그날 처음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었는데 어찌나 충격을 받았는지 머리가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수십 년 교회에 다니는 동안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말씀은 많이 들었지만 그때만큼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가 심령 깊숙이 각인된 적은 없었다.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기까지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 기어이 그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 잔인한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 예수님이 지신 그 참혹한 고통의 십자가가 바로 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한 것이었다니! 주님은 날 위해 그 모진 고통을 당하셨건만 왜 나는 믿노라 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첫사랑의 열정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게으르고 나태한 쭉정이 신자 노릇을 일삼고 있었던가? 악한 영에게 붙들려 무당이 될 뻔 했으면서도 왜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사업을 핑계로 술집을 전전하며 타락한 세상 풍조에 휩쓸려 죄를 짓고 있었던가? 윤석전 목사님의 애끓는 설교가 내 심령에 와서 부딪힐 때마다 지난날 나의 죄악 된 모습들이 떠올라 뜨거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예배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 흐느껴 울다가 ‘이렇게 죄악 속에 빠져 살다가 또 한번 악한 영에게 붙들리면 나는 죽는다. 내 영혼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피 공로를 붙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철야기도를 하며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예수님의 보혈을 심령에 깊이깊이 끌어안고 ‘이제 죽어도 살아도 오직 주님의 십자가 공로를 붙들며 살고 죽겠다’고 눈물로 고백했다.

뺨 맞아도 “예수 믿으세요”

설교시간마다 윤석전 목사님이 강력하게 전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42년간의 나의 잘못된 신앙관과 인생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하라. 모든 불의는 모양이라도 버려라. 하나님 말씀은 명령의 말씀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즉시 행동하라.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멸망하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니 전도하라.

나는 당장 전도를 생활화했다. 다시금 내가 만난 예수님을 소개하며 나처럼 은혜를 배은망덕하여 타락하지 말라고, 쭉정이 신자 돼서 악한 영에게 정신을 빼앗기지 말라고, 예수 믿고 천국가자고 노방전도, 전철 전도, 공원전도, 가족 전도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전도했다. 전철전도 중에 연로하신 어르신께 뺨을 맞은 적도 있지만 그것이 하늘나라에서 내가 받을 상급이기에 기뻐하며 웃는 얼굴로 꼭 예수 믿으시고 구원받으시라고 손을 잡고 더 간절히 전도했다. 그렇게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하시던 부모님도, 장인 장모님도, 형제들도 몇몇을 빼놓고는 모두가 지금은 예수를 믿고 기쁨으로 살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의 축복

연세중앙교회를 통해 나의 삶이 완전히 변화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또 한번 부도를 맞았다. 오래 전부터 부도 조짐이 있었던 터라 놀라지도 않았고, 술대접하며 불의하게 한 사업이라 망한다 해도 별 미련이 없었다. 그 후로는 기도할 때마다 하청공사하지 않고 내 사업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얼마 후, 친하게 지내던 부동산업자 한 분이 좋은 땅이 있으니 사라고 전화를 했다. 부도 맞은 사람이 돈이 어디 있느냐고 해도 자꾸만 와서 보라는 성화에 삼백만원을 빌려 그곳으로 갔다. 그런데 그 돈 삼백만원을 종잣돈 삼아 시가 팔억 삼천만원짜리 땅을 가계약하게 됐고 다음날 당장 공사를 시작, 계약금 중도금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상태에서 공사를 계속 강행하여 결국 공장 두 동을 완공하고 땅값을 갚았으며 나머지 수익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현재의 수십억대 규모의 지구촌 건설이라는 내 사업을 하게 될 줄이야!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이기에 항상 하나님 일에 최우선으로 써야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요즈음 주일엔 교회 차량실에서 충성하고 있으며, 1-2 남전도회 어르신들의 식사대접으로도 충성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 물질로도 최상의 것을 드려 기쁘시게 하고 싶지만 그보다도 내 몸으로 실천하여 내가 하나님께 은혜 받은 인간임을 고백하고 싶어서다. 나는 성전 마당에 떨어진 쓰레기를 몸 구부려 주우면서 하나님 앞에 나는 쓰레기보다 못한 인간임을 고백하며 눈물지을 때가 많다. 또한 하나님이 날 사랑해주시지 않으셨다면 이미 사고로 이 땅에 없었을지도 모를 사람임을 고백하며 감사드린다.

신앙생활의 최고의 목적은 영혼의 때를 위한 것이다. 육신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날, 나와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의 영혼이 함께 하나님 아버지 나라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영원히 함께 살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쉬지 않고 전도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5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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