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교인 40일 작정 기도 그리고 10일' 간증] 50년간 안 들리던 귀가 열리다 등

등록날짜 [ 2012-06-05 19:26:21 ]

50년간 안 들리던 귀가 열리다

청각 장애로 오른쪽 귀 안 들려 보청기도 낄 수 없어
작정 기도회 중 어느새 완전히 회복… 새 삶 사는 듯


<사진설명> 아내  임헌숙 권사와 함께.
김태엽 안수집사 (16남전도회)

선천적으로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오십 중반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오른쪽 귀로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다행히 왼쪽 귀는 정상이라 생활에 큰 지장은 없었지만, 문제는 직장에서였다. 주로 건축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순간적으로 매우 급하게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그럴 때 동료가 내 오른편에 있으면 아무리 큰 소리로 불러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또 여러 명이 한꺼번에 대화를 주고받거나 누구 한 사람이 조용히 말할 때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어서 눈치로 알아채지 못하면 한참 경청한 후에야 상황을 짐작할 때도 있었다.

“요즘 보청기가 많이 좋아졌는데 왜 착용하지 않느냐?” 하며 진지하게 보청기 사용을 권유하는 지인들이 많았다. 하지만 보청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다. 30대 중반 때, 창피함을 무릅쓰고라도 보청기를 끼려고 서울 K대학병원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그런데 검진하던 의사가 전해준 말은 절망감만 더해줬다. 고막은 정상인데 고막 안 내이(內耳) 유모섬유(청각세포)가 상했다는 것이다. 유모세포는 한 번 손상하거나 퇴화하면 현대 의술로는 회복이나 재생할 수 없는데, 한마디로 치료 가망성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보청기를 착용하면 왼쪽 고막까지 울려서 윙윙거리기만 할 뿐, 말소리를 더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했다.

믿음의 내조에 기도할 힘을 얻다
청력이 부족한 핸디캡을 극복하려고 직장에서도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하면서 오늘까지 살아왔다. 하지만 때로는 배려 없이 뱉어내는 말 한마디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모멸감으로 직장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가족들 보기가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아내는 그런 내게 항상 따뜻한 믿음의 말로 용기를 복돋아 주었다. 7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을 때도 “하나님의 자녀인데, 기도하자”며 용기를 줬다.

그러다 담임목사님께서 올해도 어김없이 50일 작정 기도회를 연다고 선포하시니, 아내가 다시금 기도하자며 내게 용기를 북돋았다.

“여보,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잖아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인데 그까짓 귀 신경 회복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거예요. 50일 작정 기도회 동안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결사적으로 기도합시다. 그리고 기도한 후엔 믿음으로 목사님께 기도 받읍시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장로 권사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믿음은 누구 못지않다고 자부하며 살아왔지만, 안 들리는 한쪽 귀를 고쳐달라고 기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수년 전 2층 높이에서 일하다가 땅바닥으로 떨어졌을 때도 믿음의 기도로 현장에서 일어나 걷고 다시 일하는 놀라운 체험을 했으면서도 정작 오십 평생 듣지 못하는 귀가 열리게 해달라고는 기도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혈기방장하던 젊음도 다 가고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울 지경이 되니까 결사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릴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매일 저녁 2시간씩 죽기 살기로 부르짖어 기도한 후, 교구목사님께 기도 받으러 갔다. 몸이 아픈 성도가 많이 몰려와서 보통 1시간 이상 걸렸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받았다.

“당신 들려?”
작정 기도회가 중반으로 들어설 무렵, 매주 만나는 남전도회원 여럿이 모여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회원들이 “어? 안수집사님 평소와 달리 잘 들으시네?” 하며 놀라워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보다 말소리가 훨씬 잘 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보통 여러 명이 모여서 대화할 때는 못 듣고 놓치는 말이 많아 내가 엉뚱한 말을 불쑥 꺼내면 회원들이 친절하게 다시 일러주곤 했는데 평소와 달리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니까 그들이 나보다 먼저 눈치를 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내 오른편에서 말하는 소리가 똑똑히 들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기뻤다. 오십 평생 살아오면서 이렇게 대화를 자연스럽게 한 적이 없었는데…. 가슴이 뛰고, 무어라고 표현 못 할 만큼 기뻤다. 하지만 일단 아내에겐 비밀로 하기로 했다. 좀 더 완벽하게 들리면 말해주려고 애써 참았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아내가 부엌에서 부르기에 “왜?” 하고 갔더니, 깜짝 놀라며 “당신, 들리지?” 하고 물었다. 아내도 내심 기도 응답이 왔는지 궁금해서 테스트해본 것이었다. 주방에서 5~6미터 떨어진 안방에 있는 나를 부르면 대답을 못해 큰 소리로 불러야 했다. 그날은 일부러 작은 소리로 불렀는데 곧바로 대답하고 나오더라는 것이다.

아내는 계속 오른쪽 귀가 들리는 것을 확인해 보더니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했다.

“하나님, 우리 김 집사 들린대요. 이럴 수도 있네요. 하나님 들린대요.”

귀가 열리니 눌렸던 마음도 시원해져
요즘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지낸다. 이젠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게 전혀 없다. 직장에서 일하는 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직장 사람들도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말을 내가 알아듣는 것을 보고는 “어? 어?” 하며 탄성을 지른다.

강단에서 목사님께서 성경을 찾으라고 할 때도 예전처럼 옆 사람이 찾아놓은 성경책을 보지 않아도 된다. 또렷이 몇 장 몇 절인지 들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교 말씀도 절반 가까이 못 듣던 예전과는 다르게 하나님 말씀을 놓치지 않고 다 듣고 “아멘” 한다.

얼굴은 마음의 창이라고, 예전에는 잘 듣지 못해 억눌렸던 마음이 얼굴에 드러났지만, 요즘은 육신이 고단한 일로 지쳐있더라도 얼굴은 늘 싱글벙글이다. 지난 오십 평생 못 들어서 당한 억울한 일들....못 듣는다고 “들려? 들려? 안 들리면 송곳으로 뚫어줄까?” 하던 이들의 비아냥도 이젠 다 옛일이 되었다. 나의 억울함과 서러움을 씻어주시고, 앞으로 하나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살 수 있도록 활짝 귀를 열어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아들 셋이 확 달라졌어요

작정 기도 후 세 아들 믿음이 성장하고 학업, 인성 등이 바뀌어

<사진설명> 왼쪽부터 막내아들, 큰아들, 둘째아들.
문선영 성도 (10교구, 21구역)

아들이 셋 있다. 여느 부모가 다 그렇듯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잘 양육해 훌륭하게 키우고 싶었고 공부 욕심도 많았다. 어릴 적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나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달리 공부를 등한시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녀의 모습에 많이 낙심했다.

그러다 이번 ‘전 교인 40일 작정 기도 그리고 10일’ 기도회를 시작할 즈음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내 힘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해보려고 하니 힘이 드네요. 이젠 기도만 하고 일절 관여하지 않고 다 내려놓을게요. 세 아들을 우리 가정에 보내신 목적이 있으실 테니 하나님이 이들의 인생을 인도해 주세요.”

그리고 담임목사님께서 “자녀의 육체보다 영혼의 문제가 더 중요한데, 예배드릴 시간에 다 학원에 보내지 않느냐”고 하신 말씀을 들은 후에는 아이들을 주님 손에 맡기겠노라 더욱 다짐하였다.

이번 기도회는 나와 세 아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참석해 열심히 기도했다. 하나님의 큰 은혜였다. 6학년인 큰아들(표정원)은 작정 기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초등부 예배위원이 되었다. 학교만 끝나면 가방을 집에 내려놓고 곧장 교회로 향하는 모습에 처음에는 많이 걱정도 되고 오해도 했다.

그러다 몇 주 전 열린 초등부 달란트 시장에 갔는데 그곳에서 열심히 충성하는 큰아들의 모습을 보고 그동안 오해한 것을 알고 아이에게 울며 용서를 구했다.

둘째 아들(표정민, 초5)은 이전부터 교회 오기를 싫어했다. 부모에게 말대꾸하고 소리 지르고 공부는 항상 뒷전이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리모컨을 늘 손에 쥐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게임을 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둘째 아이가 이번 50일 작정 기도회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참석하면서부터 영적인 세계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이제는 자원해서 교회도 잘 나온다. 기도하고 은혜를 받자 내성적인 성격이 활발해졌고 매사에 용기도 생겼다. 공부에 취미가 없던 아이가 이제는 학교에서 무슨 대회가 있다고 하면 나가겠단다.

얼마 전에는 과학대회에서 상을 받아오기도 했다. 더군다나 이제는 게임도 끊고, 목사님 설교를 듣다가 때때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이전에는 매를 들고 소리를 질러야 말을 듣던 아이가 이제는 말로 타이르고 이해시키면 잘 수용하는 아이로 바뀐 것이다.

한편, 어릴 적부터 주님을 사모하던 막내아들(표정희, 초4)은 목회자가 되려는 꿈을 지닌 모범적인 아이다. 그런데 학교와 교회 그리고 어디서나 “착하다, 잘한다”며 인정받고 칭찬받으니 어느새 교만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막내아들에게 죄를 낱낱이 알려주셨고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쓰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아들 셋을 잘 키워보려고 학원도 보내고 문제집도 많이 풀게 하고 때로는 화도 내며 전전긍긍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잘못할 때 “네 영혼이 속에서 울고 있잖아” 하고 한마디 말로 타이르면 곧장 알아듣고 순종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기쁘다. 오히려 자식들을 보며 도전받고 나 자신이 변하는 것을 느낀다.

50일 동안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게 하시고 세 아들을 변화시켜 영적인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하기만 하다. 앞으로 아이들에게 어떤 응답을 주실지 설레고 무척 기대된다. 



주님 사랑에 감사 넘쳐요

기도회 참석 후 남편 직장과 핍박 문제 해결

김진 성도 (3교구 1지역, 69여전도회)


어릴 적부터 교회는 다녔으나 믿음이 없던 나는 결혼 후 시어머니(서인시 집사)에게 인도돼 2005년 여름 우리 교회에 등록했다.

그런데 당시 저체중으로 태어난 딸아이(7세)가 생후 50일쯤 되었을 무렵인데, 피를 토해 곧장 집 근처 소아과 병원으로 달려가 검진을 받았다. 의사는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뿐. 큰 병원에 가서 재검사를 받았더니 “아이가 살 가망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다급한 마음에 시어머니께 전화한 후, 주님께 “살려주세요!” 하고 절박한 외마디 기도만 반복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셨고 기적적으로 딸아이를 고쳐주셨다. 그런데 아이가 퇴원할 즈음, 의사가 느닷없이 “아이의 심장에 구멍이 있다”며 “이런 증상이라면 열 명 중 세 명은 큰 수술을 해야 하니 돌 무렵에 다시 검사하자”고 했다. 수술을 한 달 앞두자 새벽예배를 드리기로 작정했다.

겨울이라 새벽엔 날씨가 무척 매서웠지만, 아이를 품에 안고 교회로 달려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다. 그렇게 기도한 지 한 달 후인 검사 당일, 병원에서는 “아이의 심장에 구멍이 없어졌다”며 의아해했고, 나는 또 한 번 하나님의 응답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아이가 세 살 때, 우리 가족은 궁동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고 오히려 마귀역사에 속아 남편과 함께 세상을 벗하며 2~3년 세월을 허비하며 살았다.

교구장과 지역장에게 심방 전화가 올 때마다 짜증을 냈고, 시어머님께서는 우리 가족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셨다. 그러다 지난해 초 둘째 아이(2세)를 낳기 전에 교구장의 권면으로 다시 교회에 나가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교회에 나가기로 약속한 날, 교회에 가는 대신 나는 만삭의 몸으로 외출했다. 그리고는 결국 큰일이 벌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만 계단에서 굴러 응급실에 실려 간 것이다. 나는 그제야 내가 하나님을 떠난 죄인임을 깨달았다. 다행히 많은 이가 중보기도를 해주어 둘째 아이를 순산했고, 그때부터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담임목사님께서 전해주시는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고 기도할 힘도 생겼다. 그러나 남편은 “교회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마라. 교회에 그리 가고 싶거든 다른 교회에 다니라”고 핍박했다. 그러나 그런 핍박에도 나의 믿음은 점차 성장했다.

그러다 이번에 작정 기도회에 처음 참석해 기도했다. 근 1년 동안 집에 있던 남편이 믿음의 기업에 취직하도록 계속 기도했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으나 주님이 해결해 주시리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기도하자 정말 거짓말처럼 남편이 믿음의 기업에 취직했고, “13년 만에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직원이 왔다”며 부장에게 큰 신임을 받고 있다. 그리고 남편의 마음도 많이 열려서 내가 예배에 늦을 것 같으면 “빨리 가라”며 데려다 주기도 한다.

요새는 둘째 아이가 좋아하는 찬양을 틀어놓고 따라 부르기도 하는 남편 모습에 기쁨과 감사뿐이다. 앞으로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천국 가는 그날까지 예수만 섬기는 축복된 가정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요즘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감사다. 나는 주님께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세상 속에 있던 나를 끝까지 기다려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할 뿐이다. 이전에는 늘 걱정과 근심에 마음이 무거웠고 짜증도 곧잘 냈지만, 이제는 어디서나 감사기도가 흘러나오고 있다. 주님 사랑을 가슴 깊이 느끼며 살고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9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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