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교인 40일 작정 기도 그리고 10일’ 간증] 뇌병변장애에서 많이 좋아져 등

등록날짜 [ 2012-06-26 13:36:01 ]

뇌병변장애에서 많이 좋아져
약으로도 소용없는 병, 기도로 나아지다

박희남 성도(17교구 2지역, 36여전도회)


‘뇌병변장애’는 외부 신체기능 장애의 일종으로, 뇌의 기질적 손상으로 말미암은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보행 또는 일상생활 등에 현저한 제약을 받는 중추신경장애를 총칭하는 말이다.

그런 뇌병변 2급 장애인이 된 지 벌써 6년째다. 47세 때 뇌출혈로 쓰러져 우측 반신마비가 온 이후로 줄곧 가족과 떨어져서 재활병원 신세를 지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재활치료 기술이 뛰어나다는 병원으로 옮겨 다니면서 치료를 받아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말이 어눌하고 오른쪽 팔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또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기능 장애뿐만 아니라, 몸속 장기까지 마비돼서 여러 가지 장애로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특히 방광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해 화장실을 가는 도중에 실수해서 서너 차례씩 옷을 갈아입고, 밤에도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해 항상 몸이 피곤했다. 또 콧물이 수시로 흘러내려도 아무 느낌이 없으니 여자로서 부끄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힘겨운 몸이지만 전 교인 50일 작정 기도회가 시작되면 주일 하루만큼은 2시간씩 기도회에 꼬박꼬박 참석한 것이 올해로 2년째다. 올해는 50일 작정 기도회가 끝나자마자 기도 응답을 받아 요즘은 하루하루를 기쁨 속에 살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소재 재활병원에서 서울 구로에 있는 연세중앙교회까지 오려면 주일 아침 8시 40분에 출발해야 한다. 그렇게 먼 거리를 마다 않고 재활치료 받는 환자 교우 셋이서 매주 교회에 올 수 있는 것은 연세중앙교회 교우의 섬세한 섬김과 설교 말씀에 큰 은혜를 받기 때문이다.

3년 전, 부천 재활병원에 있을 때 병원전도팀(백명희 권사, 오은옥, 홍인옥 집사)을 처음 만나 연세중앙교회로 인도받았을 때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열아홉에서 스무 살 때까지는 고향에서 뜨겁게 신앙생활 했다. 성령을 체험하고 방언은사도 받았었다. 그러다가 스무 살 때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주님과도 멀어졌다.

30년 만에 반신불수의 몸으로 주님 품으로 돌아와 기나긴 방황을 끝냈으니, 강단에서 선포하는 말씀마다 내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렸다. 비록 몸은 장애를 입어 혼자서는 거동하기 어렵지만 내 영혼에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전도자를 보내서 불러주신 주님께 어찌나 감사한지…. 병원을 시흥으로 옮긴 후에는 그곳 교구 식구들이 금요일마다 찾아와서 함께 예배드리고 영육 간에 위로해 주니 또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지 모른다.

주일에 작정 기도회까지 마치고 병원에 도착하면 밤 10시가 훌쩍 넘는다. 재활치료 환자가 그렇게 열심을 내기는 쉽지 않지만, 2시간씩 부르짖어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또 교회에 못 오는 평일에도 재활치료병원 내에 있는 교회에서 수시로 작정 기도회에 참여하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렇게 마음을 쏟아 기도해서인지 올해는 작정 기도회가 끝나는 그날부터 눈에 띄게 부쩍 몸이 좋아졌다. 그리고 며칠 후 교구목사님이 재활병원까지 찾아와서 연세중앙교회 교우인 환자들에게 기도해 주셨는데 나는 그다음 날, 바로 몸이 달라졌다. 하루에도 서너 차례씩 옷에다가 실례하던 일이 완전히 사라졌다. 뇌출혈로 쓰러진 지 6년 만에 방광이 제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옷에 실례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 일 년 넘게 약을 복용했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어 약 먹는 걸 포기했었는데, 작정 기도 응답으로 이적이 일어난 것이다. 기도 응답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수시로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흘러내리던 콧물이 기도 받은 이후로 딱 멈췄다. 정상인으로서는 이 기쁨이 얼마나 큰지 이해할 수 없으리라.

요즘, 하루하루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내 기도에 응답하시는 기쁨 속에 살아간다. 예전보다 말도 훨씬 좋아졌고, 얼굴에 화색마저 감도는 어여뻐진(?) 내 모습에 감사가 넘친다.

작정 기도회는 끝났지만, 나는 여전히 작정 기도 중이다. 매주 아침 8시 40분에 병원에서 출발해 밤 10시에 돌아와서 몸은 파김치가 되지만 주일마다 2시간씩 하는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젠 기도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주님께서 나를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 감사하다. 영원한 생명 주시고 삶 속에 함께하시니 감사하다. 비록 장애를 가진 몸이지만, 사는 날까지 주님을 떠나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인으로 살고 싶다.



아들 셋 점차 변하는 모습에 감사
그리스도의 청년들로 세워달라는 기도 응답 보여

최순임 집사(6교구 1지역, 55여전도회)


직장생활에 바빠 한두 번 예배에 빠지다 보니 차츰 신앙을 잃고 실족하고 말았다. 2009년에 건강검진을 받고 간과 담낭과 위장에 이상이 생긴 걸 알았다. 의지할 곳은 주님밖에 없었다.

조직검사를 하느라 입원했다가 퇴원하자 이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던 연세중앙교회를 찾았다. 예수께서 십자가 고통의 길을 피할 수 있으셨음에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당하신 아픔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에 감사의 고백을 올려 드렸다.

지난날 신앙생활 잘하라고 권면해도 육신의 생각에 가로막혀 진짜 중요한 내 영혼의 사정을 뒤로하고 살았던 것을 회개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성가대원으로 충성하다가 건강도 되찾았다.

아들만 셋을 뒀는데, 둘째와 셋째가 중.고등부성회에 참석해 은혜 받고 직분자로 세워져 충성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게 병이 생겼던 것조차 감사할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첫째였다. 내가 연세중앙교회에서 새롭게 신앙생활 할 당시 고교 2년생이던 첫째는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며 학업에 열중하지 못했다. 흰돌산수양관 중.고등부 동계성회에 참석하고 연세중앙교회를 다니는 조건으로 갖고 싶어 하던 ‘아이 팟(ipot)’을 사주기도 했다. 약속대로 동계성회에 다녀와서 우리 교회에 출석하기도 했지만, 다시 집 근처 교회에 다니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주일에도 교회에 잘 나오지 않던 터라 주일 낮예배만이라도 드리게 하려는 마음에 허락했다.

하지만 첫째는 고3이 되자 아예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매일 새벽 3~4시까지 인터넷 서핑과 친구와 전화 통화로 시간을 보내다가 새벽을 맞았고, 피곤한 몸으로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등굣길에 올랐다. 점점 시커멓게 말라가는 첫째의 모습을 볼 때면 교회에 와서 기도하며 울기도 많이 했다. 달래기도 하고, 혼내기도 수없이 했다. 모자간에 서로 좋은 모습, 좋은 목소리로 대화하지 못한 채, 1년 동안 반항과 자책과 참소로 매일매일 고통스럽게 보냈다. 교회에 와서 회개하고 은혜 받아도 집에 가서 다시 쏟아버리기를 일상처럼 반복하는 내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반강제적으로 수시 원서를 쓰고 “붙으면 대학 가고 떨어지면 군대 지원해서 가라”고 말하고 기도했다. 하나님 은혜로 수시에 합격했지만,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안 가겠다고 버티던 대학에 들어가니 이젠 대학 친구들과 어울려 밤늦게 귀가해 또다시 근심 걱정거리가 됐다.

그러던 중 전 교인 50일 작정 기도회가 시작됐다. 올해 기도 제목도 역시 첫째가 우리 교회 와서 은혜 받고 신앙생활 잘하다가 군대 가서도 예수님 잘 믿고 늠름하고 씩씩한 그리스도의 청년으로 서는 것이었다.

내가 제대로 신앙생활 하지 못해 아이의 영혼이 무척이나 힘들고 고통당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 콧물 쏟으며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가 영적으로 무장하여 보호해 주지 못하고 기도해 주지 못하고 본이 되지 못한 모습이 몹시도 부끄러웠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눈물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작정 기도 중에 첫째가 우리 교회에 다시 나와 등록했고, 새가족청년회 교육을 마치고 지금은 대학선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있다.

아직 주일성수를 온전히 하지는 않지만, 한 주, 두 주 예배를 드리며 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사한 마음 그지없다. 예전엔 거실에 첫째와 내가 함께 있는 순간이면 다른 가족들은 소나기 피하듯 방으로 들어가기 바빴다.

그런데 작정 기도회를 마친 요즘, 첫째와 둘이서 얼굴을 맞대고 두런두런 얘기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며칠 전에는 정말 몇 년 만에 첫째가 내 손을 잡으며 얘기를 했다. 정말 요즘은 죽은 아들 살아 돌아온 느낌이다. 주일 늦은 밤, 교회에서 저마다 맡은 직분과 사명에 충성하고 귀가한 후 온 가족이 둘러앉아 예배드리며 감사함으로 주일을 마감하는 요즘, 난 정말 행복하다.

며칠 전 첫째의 징병검사 안내장이 왔다. 마음이 조급하다. ‘이제 겨우 신앙생활에 발을 디뎠는데, 아직은 안 되는데, 더 은혜 받아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다. 아직 군대 보낸 것도 아닌데 징병검사 안내장을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자식 둔 부모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믿음을 10년 앞당길 수 있는 청년대학부 성회에 가서 큰 은혜 받고 앞으로 군복무 때도 신앙생활 잘하는 멋진 아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척추 어긋나 심한 허리 통증 나아
거의 정상으로 회복, 완쾌될 것을 믿음으로 확신

김주석 집사(10교구 1지역, 15여전도회)


허리부터 왼쪽 종아리까지 저리고 아픈 지가 3년쯤 됐다. 서 있기도 어렵고, 특히 몸을 굽혔다가 일어서면 허리 통증이 심해서 구부리고 일하기도 어려웠다. 침도 맞고 물리치료도 받았지만,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지난해 8월 병원에서 MRI 검사를 받았는데 ‘척추전방위협착증’이라는 병명이었다. 척추가 어긋나 척추관이 좁아지면서 신경을 눌러 통증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수술하라고 했지만, 척추를 수술하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이전에 믿음으로 나은 경험이 있어 기도로 해결하겠노라 결심했다.

사실 우리 교회가 노량진에 있을 때, 내 몸은 종합병원처럼 안 아픈 데가 없었다. 특히, 갑상샘 항진증과 자궁근종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도 그 시절에 기도원에 가서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두 달씩 상주하며 충성했다. 그리고 매일 철야기도하며 5년을 보냈다. 꿈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렇게 하나님 은혜에 젖어 살다 보니 질병이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게 온데간데없어졌다.

그런 경험이 있던 터라 이번 50일 작정 기도회 때도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었다. 기도하러 교회 가는 길에 허리부터 종아리까지 무척 아프고 찌릿찌릿했지만, 두 시간씩 부르짖어 기도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엔 한결 가벼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첫발을 내디딜 때도 기절할 것같이 극심하던 통증도 어느새 사라졌다. 작정 기도를 마치고 나니, 때로 조금씩 아프지만 거의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 작정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 은혜를 더욱 체험케 하시고, 몸도 더욱 건강하게 회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50일 기도 완주 자체가 큰 응답
중보기도하니 친구 어머니의 마비된 다리에 힘들어가

박연숙(충성된청년회 8부)


이번에 처음 50일 작정 기도회에 참석했다. ‘과연 내가 이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중도하차 없이 잘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주님이 정말 내 기도를 다 들어 주실까?’라는 기대와 사모함으로 시작했다.

연세중앙교회에 온 지는 2년이 채 안 된다. 우리 교회에 와서 전도한 친구와 함께 기도했는데 그도 작정 기도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일단 첫째로 작정 기도회를 성공할 수 있게 간절히 기도했는데, 초신자인 우리가 중도하차 없이 완주한 것 그 자체가 가장 큰 응답이다.

둘째로, 교회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의 어머님을 위해 기도했다. 어머님은 기관에 소속되어있지만 마음을 열지 않으셨다. 심방도 물론 거부하셨다. 그래서 어머님의 마음을 열어 달라고, 그리고 어머님 집에서 심방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작정 기도회 진행 중에 심방의 기회가 생겼고, 어머님이 마음을 활짝 여셔서 이제는 기관 식구들에게 먼저 손 흔들며 환한 미소를 지으신다.

어머님은 10여 년 전 뇌종양수술 등의 이유로 왼쪽 팔다리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시는 장애가 있으시다. 지팡이를 의지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걷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영육 간의 강건함은 물론, 뼈밖에 남지 않은 왼쪽 다리와 굳어버린 왼쪽 팔을 놓고도 집중적으로 부르짖어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일하셨다!

작정 기도가 반 정도 지났을 무렵, 어머님이 지팡이 없이 방 안을 몇 바퀴나 걸어 다니시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건 수년간 물리치료를 받으시고 양의학, 한의학 할 것 없이 심지어 수술까지도 강행했지만, 호전은커녕 상태가 더 악화됐던 어머님의 앙상한 다리에 조금씩 살이 오르더니 10여 년 전 사고 이후 처음으로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할렐루야! 어머님께서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이처럼 체험하고 나니 이제는 주님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신앙생활을 하신다. 눈물 흘리며 부르짖어 기도한 결과였다.

또 전도한 친구와 나는 아직 기도하는 습관이 몸에 배지 않아, 작정 기도회가 끝나도 매일매일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기도했는데 작정 기도회를 마치기 하루 전인 49일째, 뮤지컬 ‘그날’팀에서 급히 연락이 왔고, 하나님께서는 친구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겨 주시어 충성할 수 있게 하셨다. 뮤지컬을 준비하며 필수적으로 기도로 준비해야 했기에 앞으로도 쭉 기도할 길이 열린 것이다.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고 명확한 응답에 감사를 잊을 수가 없다. 벌써 다음 응답이 기대된다. 주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9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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