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386세대 유감(遺憾)

등록날짜 [ 2021-11-30 14:28:57 ]

지금 대한민국에서 정치, 행정 분야를 비롯해 경제, 사회 등 핵심 분야의 권력세대는 소위 ‘386세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386’ 세 숫자에는 각각의 뜻이 들어 있다. ‘3’은 이들 세대가 정치적·사회적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1990년대 당시 30대를, ‘8’은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닌 1980년대 학번을, ‘6’은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을 뜻한다. 즉,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1990년대에 30대였던 세대가 바로 386세대다. 다시 말해, 군사 쿠데타를 거쳐 들어선 군사정권을 질풍노도의 청소년기 혹은 청년기에 겪은 이들이다. 


1980년대 당시 청년층의 소원은 ‘민주화’였다. 그 간절한 바람만큼이나 기성 체제에 대한 분노도 컸고, 대학에 들어가면 『해방전후사의 인식』,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같은 책들을 읽으면서 각자의 가슴에 민주화에 대한 불을 지폈다. 또 이들 중 운동권이 된 사람들은 더욱 심오한 학습들을 했으며,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마치 성경처럼 좇던 이들은 그곳에서 주축이 되었다. 순수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미국식 실용주의적 학풍보다는 마르크스 사상에서 갈라져 나온 신(新)마르크스주의(neo-marxism)적인 공부가 인기였다. 실제로 군사정권이 정치적, 문화적 억압을 통해 지배하던 당시에 이런 철학들은 시대를 잘 설명할 수 있던 학문이기도 했다. 


필자도 그 386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따랐던 사상과 이론들이 현재 우리나라 사회 모습과 얼마나 동떨어졌는지를 냉정히 짚어 봐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미제 타도’를 입에 붙게 했던 ‘종속이론’만 보더라도 세계는 중심국과 주변국으로 나뉘며 한국 같은 제3세계 경제는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미국 같은 선진국들의 노른자 핵심경제를 위해 전문성과 부가가치가 낮은 물건만 영원히 공급하는 역할만 할 것이고, 그저 중심국의 주변국으로서 중심부에 종속된 관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공부했다. 경제를 개방하고 다국적기업들이 진출할수록 나라는 망한다고 안타까워했고, 대기업은 대부분 이들 중심국의 앞잡이이므로 타도 대상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애먼 은행까지 적대하며 화염병 테러를 벌이거나 점거하는 일도 많았다. 


여기에 더해 기득권 자본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세뇌를 일삼을 만큼 조직적이라 믿었다. ‘도널드 덕’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하나인 자본가 삼촌 ‘스크루지’가 성질은 괴팍해도 조카들을 사랑하고 풍족한 삶을 살게 해 준다는 반복적인 줄거리가 그런 세뇌의 대표적 예라고 들었다. 간단해 보이는 모든 대중문화나 사회 풍습에도 다 들어 있는 기득권, 자본가들의 지배 장치 구조를 찾아내는 ‘구조주의’가 당시 가장 인기 있는 학문 영역이었고, 미국 할리우드가 규제 없이 밀려오면 한국의 문화 기반은 다 무너진다며 우려스러운 예측을 일삼았다. 또 미디어와 기업을 소유한 자본가가 모든 것을 왜곡할 수 있고 결정한다는 정치경제학의 영향으로 기업을 기본적으로 증오했다.


이제 그 386세대들은 용퇴(勇退)를 해야 할 때다. 젊은 시절 배운 것과 현 우리나라 사회가 이토록 다르면 아무리 추종하던 생각과 양식이더라도 버려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기 때문이다.최근의 한류 문화만 보더라도 한국에서 생산한 미디어가 중심 국가들에서 주류로 자리 잡고, 미디어의 내용은 기득권의 선전이 아니라 비판이어야 인기를 얻으며, 세계화의 경쟁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경쟁력을 못 갖췄을 한국 기업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386세대는 “억압과 규제를 통한 통제”를 믿는다. 사회는 본질적으로 구조적 모순이므로 이를 바로잡으려면 기득권을 규제하고, 사람들의 생산과 소비도 통제할 수 있다는 의식이다. 시장원리, 사람의 근원적인 욕구를 통제할 수 있다는 교만이 뿌리 깊어 자신들이 제도를 바꾸면 해결된다고 떠벌리기 좋아한다.


그러나 지금 젊은 세대가 오늘날 현실세계에서 바라보면 386세대의 이론들은 오류가 너무 많아 개그처럼 여길 것 같다. 미안한 것은 지금 젊은 세대는 386세대 권력의 교만이 낳은 시장 실패들 때문에 치유가 쉽지 않은 고통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지난 과거에 빠져 사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위 글은 교회신문 <726호> 기사입니다.


박성진 집사

연세오케스트라상임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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