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아론과 훌] 주택 문제를 ‘선악 공식’으로 풀 수 있을까

등록날짜 [ 2019-04-02 19:01:33 ]

이분법적 정책은 또 다른 갈등을 야기
더 좋은 집·환경 원하는 기본욕구마저
투기로 몰아 엉뚱한 사람 피해 볼 수도
절대선악 판단하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


“평면인 종이를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오려서 그 양 끝을 맞붙이면 안과 겉 양면이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한번 꼬아 양 끝을 붙이면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한쪽 면만 갖는 곡면이 된다.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는 곧 우리가 갇혔다고 생각한 세상도 갇히지 않는 곳이며, 억압되어 있다고 느껴 탈출을 시도해도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곳이다.”


위 내용은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자주 등장한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첫 장(章) 일부다. 한국의 70~80년대 도시재개발 과정에서 겪는 도시빈민층의 삶을 조명하면서 사회현상을 선과 악, 정의와 불의로 양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사회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되었음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구조적 모순을 비판하기 이전에, 양분하기 어려운 도시 현상의 본질적 특성을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 뒤에 나오는 앉은뱅이와 꼽추, 부동산업자의 일화에서 앉은뱅이와 꼽추는 자신들을 속여 아파트 입주권을 헐값에 사들인 부동산업자에게서 돈을 뺏고 그를 죽인다. 이 소설은 ‘얼마나 자신들의 상황이 억울하고, 보호받을 사회적 기능이 고장 났으면 저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라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선과 악을 나누고, 자본을 가진 자들과 공권력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사회구조적 모순은 악인의 횡포로 선인이 피해를 본 것에서 비롯했다고 인식하는 반면, 위 소설에서 선인과 악인이 단숨에 뒤바뀌게 되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못하는 듯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선과 악을 나누고,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을 정의구현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예를 들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투기 수요에 의해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것으로 보고 강력한 규제로 집값 상승을 억제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정부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집값을  잡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크고 작은 대책을 10번이나 쏟아냈다.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집값이 계속 오르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사실 ‘투기’는 정의하는 기준이 불명확한데, 더 좋은 집과 환경을 원하는 기본적 욕구마저 투기로 치부해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뿐만 아니라 부동산 공급 측면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여실히 드러난다. 이는 재개발·재건축, 신도시 개발을 통한 주택공급을 제한하고, 지역주민들이 원하는 지역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고 생활시설을 설치해 주거 환경 개선을 시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 철거·정비 사업의 수혜자를 다주택자와 민간사업자로 간주하고 그들의 수요와 개발이익에 대한 거부감이 반영된 결과물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대도시의 경우 주거 밀도를 높이면서도 주택 수요를 고용 중심지 주변에서 해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 재건축·재개발인데, 전문가 사이에서도 다소 감성적인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도시문제를 해소할지, 또는 그 경제적 실효성이 얼마나 될지 여전히 의문이다.


도시문제를 바라볼 때 약자와 강자를 규정하고 한쪽 편에 서면 또 다른 갈등에 갈등을 낳는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또 약자를 보호해 결과의 공정성까지 높이려는 방법은 오히려 양극화와 소득분배 실패, 계층 간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정의로운 도시정책은 정의의 사도가 실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가치판단이 요구되는 형평성 측면만 강조하기보다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정책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무엇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선악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절대 선과 절대 악을 인간의 생각과 기준으로 양분하고, 악을 심판하는 심판자가 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을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618호> 기사입니다.


양욱재
서울대 도시계획 석사
대학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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