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존중하는 부부상 필요하다
가정불화의 근본적 원인, 가부장적 위계질서 고집 탓

등록날짜 [ 2007-05-07 15:50:43 ]

시대 변화에 맞춰 남녀평등 위한 의식개혁 이뤄져야

모든 것의 기본단위라고 할 수 있는 결혼이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높은 이혼율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이혼의 직접적 사유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성격차이, 가족간 불화, 경제문제, 배우자의 부정, 정신적 육체적 학대 등이다. 그러나 이혼율이 급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고집하는 남편들과 평등한 관계를 소원하는 아내들 사이의 ‘가치관 차이’에 있다고 본다.
시대상황이 급격히 바뀌면서 1990년대 이후에는 성격이 맞지 않는다, 애정이 없다, 대화가 안된다, 가정에 불성실하다, 폭언을 한다, 거짓말을 한다, 인터넷중독 등이 이혼 사유로 등장하고 있다.
근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권위의 축이 일방적인 권위에서 상호적인 권위로 바뀐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교의 수직윤리의 영향으로 가정 학교 사회 교회 등 모든 영역에서 가부장적이고 남성 우월적인 가치관이 1970년대 이후 기독교적인 수평윤리와 남녀평등 사상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남자는 바깥에서 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에서 살림을 한다는 가치관은 고집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사회구조와 제도, 법이 남녀평등을 지지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여성의 의식은 이 시대적 흐름에 쉽게 그리고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 행복한 가정의 조건은 ‘존중’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에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오셨고 새 계명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하셨다. 성경은 남편과 아내에게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행복한 가정의 기초는 특정한 규정이나 제도가 아니라 역할과 관계의 질이다. 가족의 형태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간 관계의 성격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서적 지적 오락적 성적 영적 친밀감이다. 진정한 친밀감은 대등한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서로의 생각과 감정, 소원과 바람을 존중해주는 대화기술이 없다면 친밀한 부부관계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시대는 다음과 같은 것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결혼을 요구하고 있다. ①중요한 가정사는 의논을 통해서 결정 ②부부간 문제는 대화로 해결 ③재산은 부부공유가 원칙이고 재산형성은 공동노력으로 함 ④자녀양육은 공동책임 ⑤서로의 인격을 존중 ⑥각자의 취미활동 및 사회생활 존중 ⑦처가와 시댁을 똑같이 대우하고 가사는 서로 분담 ⑧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⑨배우자의 능력 계발에 적극 조력 ⑩휴식은 함께 ⑪잘못을 솔직히 인정 ⑫맞지 않는 성격은 맞추려고 노력 ⑬금전지출은 상의한 뒤 결정 ⑭서로 믿고 신뢰하는 관계 유지 등이다.


■ 기독교교육의 중요성
친밀한 부부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남녀평등 사상과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는 대화기술을 가르칠 수 있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다. 교회는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에 근거해 우애적 부부관계를 가르치고 갈등을 해소하는 대화기술을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교회는 현대 가정의 위기를 사랑과 행복의 기술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가정생활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알고 준비하는 생애교육을 교회와 NGO, 정부가 함께 연대해서 펼쳐야 한다.

■ 가정은 성령이 임재하는 통로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교육학자인 호레이스 부쉬넬(Horace Bushnell)은 일찍이 기독교적 양육에서 우선적으로 기독교 가정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그는 신앙에 기초한 가정은 그 자체가 성령이 임재하는 통로이고 하나님의 은총의 매개이기 때문에 신앙의 가정은 이미 그 자체로서 기독교 양육을 가능케 해주는 분위기를 갖는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그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곧 기독교교육의 기초를 다진다는 의미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정이 교육의 장으로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되는데 있어서 가장 우선적인 조건은 가정이 진정으로 기독교가정이 되는 것에 있다고 하였다.

■ 부모는 준 교육자
가정을 교육의 일차적 대행자로 볼 때 부모는 가정에서의 교육을 수행하는 자연스러운 교사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가정환경의 질과 그 기능의 원활한 발휘는 가정을 운영해 가고 있는 부모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가정에서 양육과 교육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부모에 의하여 가정이 그 교육적 사명을 실천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준 교육자로서, 또는 양육자로서의 자신의 위치와 책임을 인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부모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훈련과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교회의 교육에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부모를 위한 교육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가정은 어디까지나 가정이므로 가정을 작은 학교나 교회로 생각해서는 안되며, 민주적이고 수용적인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교육과 양육이 이루어지도록 이끌어가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10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