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오시는 대로(大路) < 3·下>] 부르심과 아브라함의 순종

등록날짜 [ 2024-02-02 10:59:16 ]

가나안은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이나

당대 두 문명 연결하는 세계의 중심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세계 중심지에

세우고자 가나안으로 향할 것 명령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란(Haran)에 안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가나안의 세겜(Shechem)으로 그를 인도하신다. 이후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했을 때 여호수아는 세겜의 에발산(Mt. Ebal)과 그리심산(Mt. Gerizim)에서 축복과 저주의 율법을 선포한다. 여호수아서 8장에서 여호수아는 열두 지파 중 여섯 지파를 에발산 앞에 세운 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선포하고, 나머지 여섯 지파를 그리심산 앞에 세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을 받는다고 선포한다.


지금도 가나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싸움이 잦아 쇠락한 모습이지만, 아브라함 당시에도 하란보다 물이 부족하고 생활환경이 열악한 곳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은 세계의 중심지인 가나안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전략적인 인물로 아브라함을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의 시작이었다.


<사진설명> 세겜 전경(세겜 북쪽 에발산에서 내려다본 모습).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란에 안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가나안의 세겜으로 그를 인도하셨고, 이후 가나안을 정복한 후 여호수아는 에발산(사진 오른쪽)과 그리심산(사진 왼쪽) 사이에 자리한 세겜에서 저주의 율법과 축복의 율법을 선포했다.



<사진설명> 아브라함의 여정.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의 갈대아 우르에서 또 다른 문명도시 하란으로 이동해 살다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가나안 세겜까지 이동한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란 땅을 떠난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진은 인류 구원의 길을 여는 대사건이었다.



<사진설명> ‘성서의 땅을 가다’ 촬영차 세겜을 찾은 윤석전 목사와 한인수 장로. 여호수아가 죽기 전 다시 한번 이스라엘 민족을 세겜으로 불러 모아 그들과 더불어 “우리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다”라는 언약을 세우고 그 증거로 삼았다는 돌기둥(수24:24) 앞에서 촬영했다.



▶윤석전 목사: 오늘도 마태복음 족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류를 어떻게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신 그 섭리를 탐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란에서 살던 아브라함을 척박한 가나안 땅으로 보내셨습니다. 저 같으면 ‘하나님, 좀 더 좋은 곳으로 가라고 하시지 왜 가나안이라는 열악한 곳으로 방랑객처럼 가게 하십니까?’라고 할 텐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항 없이, 마음의 반문 하나 없이 따라갔습니다. 가나안 땅이 어떤 곳이며, 왜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권혁승 교수: 하란이나 갈대아 우르(Ur of the Chaldeans)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문명의 중심지인 두 지역도 지정학적 의미로 보면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한 지역에 불과합니다.


반면 가나안은 여러 여건상 흠모할 만한 곳은 아니지만,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라고 하는 당시의 양대 문명을 이어 주는 교차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가나안 땅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라는 한 지역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지역을 연결하는 세계의 중심지에 해당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먹고 살기 좋은 곳에 가라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중심지로 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역사의 중심지에 아브라함을 세우려고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이 가는 곳이 역사의 중심지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까지 마태복음 족보 속의 사람들이 움직일 때 예수님도 같이 움직이는 것이므로 ‘예수가 가는 그곳이 다 역사의 중심지가 아니겠는가’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부르신 사건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도 알려 주세요.


▶권혁승 교수: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아브라함을 세계의 중심지에 가져다 놓으신 것인데, 그 결과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일개 지역에 예속된 사람이 아닌 세계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 족보를 따라 오신 예수님이 세계의 중심이신 것이지요.


당시 이스라엘은 세계의 모든 민족을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를 규정할 때도 ‘교회란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 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라는 공간이 한 지역에 속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지향점은 세계인을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교회로 부르셨는데, 아브라함의 부름 속에 교회의 지향점도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윤석전 목사: 주님이 계신 곳이라면 누구든지 예수 만날 대로를 열고 다 와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 안에서 하나 되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지체가 될 수 있는 복, 그것이 바로 구원의 복이요, 축복의 복이요, 영생의 복입니다. 가나안이 역사의 중심지라고 하셨는데, 당시 문화적으로 굉장히 혼잡했을 가나안을 지배하던 종교가 무엇이었는지 알려 주세요.


▶권혁승 교수: 가나안의 중심 종교는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바알 종교였습니다. 바알은 농경 신인데 비를 주관하는 신이라고 봤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를 짓지 못하고, 농사를 짓지 못하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요. 즉 바알 종교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만든 종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믿는 신앙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마6:33).


▶윤석전 목사: 가나안의 신이 비를 주관한다는 바알 신이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갈멜산(Mt.Carmel)을 떠올려 봅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는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응답하심으로 불을 내려 제물을 태웠고, 3년 6개월간 이어지던 가뭄을 종결시키는 비가 그날에 쏟아짐으로써 하나님이 비를 주관하고 날씨도 주관하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참신임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가나안 땅이 아무리 척박할지라도 하나님이 계시고 주님이 계신 곳은 언제나 다른 신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역사의 축복이 있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했습니다.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0).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아들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삭이 태어나기 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에서 하란으로,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따라 움직여 가는 모든 과정이 바로 우리 주님이 약속대로 오시는 길의 발자국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하나님 말씀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족보 속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와 우렁찬 발자국 소리가 바로 인류의 구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류 구속 사역에서 주님이 오시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때로는 저 갈보리 언덕의 피 소리를 들으면서 항상 예수의 생명으로 풍성한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님의 약속을 다 소유해 이루어 가는 축복이 여러분의 몫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과정에서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움직임이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서 감사했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83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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