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족청년회 ‘정회원 등반식’] “연세청년 ‘정회원 등반’을 축하합니다!”
등록날짜 [ 2026-07-15 13:44:20 ]
<사진설명>텔 단 전경. 이스라엘의 영토를 말할 때 “단부터 브엘세바까지”라고 부를 만큼, 이스라엘 최북단에 있는 단은 지리적으로 무척 중요한 곳이었다. 남유다의 아사왕이 북이스라엘보다 더 북쪽에 있던 아람 왕 벤하닷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자, 벤하닷이 요청을 받아들여 북이스라엘의 단과 이욘 등을 공격했다.
하나님 의지하던 남유다의 아사왕
말년에 하나님 잊어버리고 변질돼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평안했으나
무언가가 잘되고 형편이 나아지자
내가 잘난 덕분이라고 교만에 빠져
선지자 핍박할 만큼 타락 일삼아
▶윤석전 목사: 남유다의 아사왕은 말년에 타락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예전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고, 북이스라엘보다 더 북쪽에 있던 아람 왕 벤하닷(Ben-Hadad)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결국 아사왕의 요청을 받아들인 벤하닷이 북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왕상15:20). 북이스라엘이 공격받은 성읍 단(Dan)과 이욘(Ijon) 등에 대해 알려 주세요.
▶홍순화 교수: 이스라엘의 최북단에 있는 단은 단 지파의 성읍이며, 이스라엘의 영토를 말할 때 “단부터 브엘세바(Beersheba)까지”라고 부를 만큼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입니다.
반면, 이욘은 낯선 성읍입니다. 이욘이 유명하지 않은 이유는, 이스라엘 북부와 맞닿은 레바논 남부의 국경 지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욘으로 추정되는 곳은 ‘텔 디빈(Tell Dibbine)’이라고 불리는 야트막한 언덕입니다. 단에서 북쪽으로 향하면 마르자윤(Marjayoun)이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그 마을에 있는 ‘텔 디빈’을 이욘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국경선 부근인 탓에 지금은 마르자윤 마을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지형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Caesarea Philippi)에서 차로 10~20분 정도 가면 나오는 곳이지만, 그보다 더 북동쪽에 있는 다메섹(Damascus)으로 향한 후 다시 두로(Tyre)에 가서 허가를 받고 겨우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난 2007년 6월에도 이욘을 찾아가기 위해 마르자윤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UN군이 파견되어 그 지역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UN군이 인사도 잘 받지 않은 채 험악하게 굴었습니다. 며칠 후 귀국해서야 그곳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 UN군 여러 명이 죽고 다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설명>분열 왕국 시대. 솔로몬이 죽은 후 가혹한 세금과 노역에 반발한 북쪽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의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북이스라엘을 세우고,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르호보암이 남유다를 유지하며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남유다 제3대 아사왕은 하나님에게 큰 복을 받았으나, 그의 말년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타락했다.
▶윤석전 목사: 마태복음 족보 속 인물들의 행적에서 ‘해변길(Via Maris)’이 자주 등장하는데 해변길에 대해서도 알려 주세요.
▶홍순화 교수: 성경에는 ‘해변길’이 두 번 등장하지만(사9:1, 마4:15), 예수님과 관련된 길이어서 유명합니다. 단순히 ‘해변에 있는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집트(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올라와서 그 당시 중심지인 다메섹으로 올라가는 특정한 길을 해변길이라고 합니다. 유래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이론이 있으나, 해변에 있는 길이라기보다는 ‘해변 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해변길은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의 길로는 보내지 않았다”라고 하셨는데(출13:17), 해변길의 남서쪽 부근이 블레셋 평야로 가는 길이어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의 길’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또 해변길은 ‘나일강 삼각주’라고 말하는 고센(Goshen) 땅에서 시작됩니다. 시작되는 지점은 ‘실레(Sile)’라고 하는 곳입니다. 이처럼 해변을 끼고 이스라엘 쪽으로 올라오는 길이 해변길이며, 예수님의 사역과 연결되어 성경에서 가장 특별한 길이 되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북이스라엘과의 전쟁과 지난날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을 비교해 보면, 아사왕의 남유다가 동일하게 승리하고 재물도 얻습니다. 이처럼 겉보기에는 똑같은 성공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긴 전쟁이 있고, 다른 나라를 통해 승리를 가져온 전쟁이 있습니다. 남유다가 국력이 약할 때도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에서 이겼는데, 왜 아사왕은 말년에 이방 나라까지 동원해 전쟁을 벌였는지 궁금합니다.
▶기민석 교수: 할아버지 르호보암 때부터 아사왕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대한 실망감이 듭니다. 사람이 다 이런 것일까요. 그렇게 큰 은혜와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고도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저도 예외는 아닐 수가 있으니 경각심도 느낍니다.
말씀하신 대로 무서운 점은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은 승리였기 때문에 아사왕 스스로 무엇이 잘못인지 모를 수 있었다는 위험도 있습니다. 왜 아사왕이 변했는지 성경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그의 할아버지 르호보암 때를 보며 추정할 수 있습니다.
역대하 12장 1절은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하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라고 기록합니다. 국력이 강해지자 주님의 율법을 버렸다는 것은 자만과 교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사왕 역시 비슷한 이유로 하나님을 버리게 되었을 듯합니다. 재임 초기에는 자기가 가진 게 없고 너무나 연약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36년간 잘 지내다 보니 하나님께서 주신 그 영광을 자기 힘이라고, 자기가 노력해서 가진 것이라고 착각한 듯합니다. 그 탓에 북이스라엘과 벌인 전쟁에서도 자기가 가진 것으로 전쟁을 하려고 했습니다.
우리도 무언가 결핍된 게 있고,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을 때가 하나님을 귀하게 경험할 수 있는 때입니다. 훗날 하나님의 은혜로 무언가가 잘되고 부요할 때도 가난하던 지난날을 기억하고 자만을 경계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사진설명>‘텔 디빈(Tell Dibbine)’ 전경. 단 북쪽에 있는 마르자윤(Marjayoun)이라는 마을의 ‘텔 디빈’을 성경 속 이욘으로 추정하고 있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이 가장 축복한 다윗은 중간에 죄를 범했으나 뜨겁게 회개하고 돌아오면서 마지막까지 잘 마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다윗 이후에는 처음부터 잘못하는 왕, 도중에 잘못하는 왕, 끝에 잘못하는 왕 등이 이어지는 것을 보며 인간은 누구든지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도 하나님에게 신뢰를 얻어 왕이 됐지만, 다윗을 시기 질투할 때부터 악신이 들어가서 못된 왕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보며 인간을 타락하게 하는 악한 영이 끝까지 역사한다는 것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 앞에서 늘 경계하며 나 자신을 잘 지켜야겠습니다.
이처럼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는 믿음과는 거리가 먼 인물인 듯합니다. 족보를 ‘믿음의 계보’라고 정의할 때 족보에서 말하는 믿음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기민석 교수: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보이는 혈통으로 봤을 때는 거기에 구원이 있을 것 같지 않고 메시아가 오실 것 같지도 않습니다. 우리 눈으로 악한 왕들을 보았을 때는 예수가 오실 수 없는 혈통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혈통 가운데서 대로의 끝이 승리이고 예수님이었다는 것은, 믿음이 아니면 바라볼 수 없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의 구렁텅이가 많은 대로(大路)에도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인도하신 족보의 끝이었기에 예수님의 구원과 승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다음 시간에도 아사왕의 말년을 살펴보며,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족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고자 하신 역사를 탐색해 보겠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95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