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수전도자학교(44)] 생각에서 지지 않을 힘을 지녀라
마귀는 악한 영(5)

등록날짜 [ 2013-02-13 10:26:42 ]

시기.질투.미움.다툼 등에 매이지 말고
영생을 가진 자답게 대범하게 행동해야

우리는 마귀가 자신의 악한 성품을 인간에게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지를 성경으로 조명하여 마귀의 악한 성품이 절대로 우리에게서 나타나지 않게 해야 한다.

불의의 병기로 사용당해서는 안 돼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무엇인지 상관하지 않고 자기가 정한 뜻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하나님을 향해 하는 행동이 곧 죄요 악이다.

아벨과 가인이 다 같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아벨의 제사만 상달했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모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으나(창2:17), 그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벨은 ‘죗값은 사망’임을 인식하였기에 죄를 지으면 분명히 죽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죄를 사함받는 피의 제사를 드렸기에 하나님께서 받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가인의 제사는 자신의 소산 중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자신이 좋은 대로 제사했기에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가인은 자신의 아우가 드린 제사만이라도 하나님께 상달하였다는 사실에 감사하여 기뻐하고 자신도 아우처럼 하나님과 신령한 관계를 갖고자 몸부림쳐야 당연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가인은 자기 동생을 돌로 쳐서 죽여 암매장하고 말았다. 부모인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가 그 자식 대(代)에 피의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복을 줄 만하니까 그 복을 가로막는 악한 마귀역사가 가인에게 아우 아벨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였고, 결국 가인은 아우를 죽이고 말았다. 마귀역사는 이처럼 인간을 불의의 병기로 사용하여 악한 죄를 저지르게 한다.

만약 우리 속에 질투나 시기나 미움이 있다면 그 분량만큼 악한 마귀가 나를 점령해 들어왔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절대로 악한 마귀에게 불의의 병기로 사용당하지 말고, 예수의 이름으로 시기, 질투, 미움을 강력하게 몰아내야 한다. 악한 마귀의 정체를 분명히 알고 몰아낼 때, 그런 악한 생각에서 자유를 얻는다. 사람이 죄를 회개할 때 눈물이 없다면 그것은 가식일 뿐이다. 사람에게 죄짓게 하고 악을 행하게 하는 것이 바로 마귀역사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 죄를 사해 주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래서 우리가 눈물로 가슴을 찢으며 진심으로 회개할 때, 그 죄를 속죄받았다는 자유와 해방의 기쁨이 넘친다. 그런데 마귀는 이 같은 진실한 회개에 이르지 못하게 하려고 회개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만약 당신의 마음속에 시기나 질투가 있다면, 남이 직분 받을 때 자신은 못 받았다고 마음 속상한 적이 있다면, 그것이 마귀역사인 줄 알고 확실히 몰아내야 한다.

우리는 직분을 받으려고 교회에 온 것이 아니다. 구원받고 은혜 받으려고 교회에 온 신앙의 본질을 절대로 벗어나서는 안 된다. 성도 간에 미운 마음이 생겨서도 안 된다. 특히 직분자들이 자신이 섬겨야 할 성도에게 미운 마음이 생겼다면 더더욱 안 된다. 사랑할 때 사랑하는 분량만큼 상대를 섬길 힘이 생기고, 사랑하는 만큼 사랑의 대우를 받게 된다.

악한 것은 마귀의 본질이다. 마귀는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죄를 짓게 한다. 시기, 미움, 질투 등 죄를 내 속에서 출발하게 하여 마귀가 죄를 짓게 하고, 그 죄를 지은 책임을 내가 지게 역사한다. 그러니 인간이 얼마나 억울한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죄는 어떤 죄든지 마귀에게서 도입된다는 사실이다. 가인이 아우를 죽이고 아무도 모르는 줄 알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고 가인에게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우리는 죄를 범할 때마다 주님께서 항상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자
우리 속에서 해서는 안 될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불쑥 들어올 때가 있다. 아무리 쫓아내도 생각 속에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나가지 않으면 얼마나 괴로운가? 우리는 이것이 악한 영의 역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악한 행동이나 악한 언어가 내게서 역사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봉쇄해야 한다.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라고 했듯이, 우리는 어디를 가도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을 지녀야 한다. 매로 때려도, 저주해도, 가시로 찔러도, 십자가에 못을 박아도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는 그를 축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본심이 바로 주님 심정이 되어야 한다. 주님은 분명히 심은 대로 거둔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절대로 남에게 죄를 유발하는 말이나 행동을 삼가야 한다.

남을 미워하지 않는 자는 성공한 자다. 그렇다면 실패자는 누구인가. 마귀의 일을 받아들인 자다. 우리는 죄를 받아들이고 나서 회개할 생각을 하지 말고, 죄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왜 예수를 믿는가? 살려고 믿는다. 살기를 원한다면 죄를 이겨야 한다. 그것이 살려는 자의 근성이다. 그런데 살려는 근성도 없이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한다면, 얼마나 비참한가. 우리는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을 지닌 자들이기에 그보다 작은 것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시기하고 미워하고 질투할 아무런 악도 없어야 한다. <계속>

*윤석전 목사 ‘무보수전도자학교’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32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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