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수전도자학교(111)]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는 믿는 자의 몫이다
복음을 만나라 ③

등록날짜 [ 2014-07-28 14:46:20 ]

예배 때마다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믿음으로 나가면

진리의 말씀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가 해결하실 것

 

창세기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향해 “내가 기한이 이를 때에 네게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4)고 말씀하셨다. 당시 아브라함은 나이가 일흔다섯이고 사라는 몸이 늙어 경수가 이미 말랐는데 어떻게 그들 사이에서 자손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하신 진리의 말씀을 절대적 창조의 법으로 알고 아이를 낳을 줄로 믿었다.

진리는 절대 이루어질 법이요, 참이기에 누구든지 하나님께 주신 진리의 말씀의 법을 가진 사람은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자신에게 그대로 된다고 믿으면 법대로 되는 진리를 소유하게 된다. 결국 사라는 아브라함의 나이 일백 세에 아들을 낳아 그의 품에 안겼다.

제사장 사가랴도 나이가 많았지만 아들이 없었다. 성전에 들어가 제사장직을 수행하다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가브리엘 천사를 만났을 때 천사가 사가랴를 향해 놀라운 예언을 했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눅1:13).

사가랴는 나이가 많은 자신에게 자녀를 생산하는 그 같은 이적이 일어날 리 없다며 천사가 한 예언을 믿지 않다가 믿지 않는 그것이 죄가 되어 벙어리가 되었다(눅1:20). 그 후 천사의 말대로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여 아들 요한을 낳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 창조의 법이요, 이루어질 진리이므로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믿고 소유하면 응답의 영광이 내 삶 속에 이루어진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요, 진리는 가지고 믿는 자에게 이루질 현재성의 확실한 경험이다.

 

복음은 믿어야 영광이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된 병자가 침상에 누워 있었다. 예수께서 그 병자를 향해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시고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시니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고 성경은 말한다(요5:2~9).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니까 현장에서 38년 된 병이 낫는 이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요한복음 9장에는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께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으라”고 하셨다. 만약 소경이 자기는 보지 못하므로 갈 수 없다 하여 방황하며 그 자리에 서 있었으면 그는 평생 소경으로 구걸이나 하며 비참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으라”는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보이지 않는 눈으로 ‘나는 못에 가서 눈을 씻으면 낫는다’고 하는 절대적 소망을 가지고 실로암 못까지 가서 눈을 씻자 그 시로 눈이 밝아져서 돌아왔다(요9:7).

이처럼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예수의 말씀에 무조건 “아멘” 해야 한다. 예수의 말씀은 내게 손해 끼치는 말씀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영육 간의 모든 불행을 해결해 주시는, 영원한 유익이 되는 축복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다.

 

복음은 살아 있는 능력이다

믿음 있는 성도라면 예수의 생애, 제자들의 생애와 같아야 한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예수처럼, 제자들처럼 복음의 기능이 확실하게 나타나 이적을 보게 해야 한다. 즉 능력이 있어야 한다. 능력이 없는 복음은 복음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 말씀은 복음이기에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살아 있는 능력이다. 복음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현장에서 인간의 어떠한 불가능도 해결해 주시는 현재성이 역사하시는 사역이다.

사도행전 14장 8절 이하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할 때, 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자가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바울이 그에게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하자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뛰어 걸었다(행14:10).

그러자 앉은뱅이가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을 목격한 루스드라 사람들은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고 소리치며 바나바는 자기들이 섬기는 쓰스(제우스) 신이라고 하고, 바울은 허메(헤르메스)라는 신으로 부르며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몰려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했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 소리를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들며 외쳤다. “나는 너희와 같은 사람이다. 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신은 바로 나사렛 예수시다. 나사렛 예수에게 경배하라. 예수께서 앉은뱅이를 일으키도록 우리를 사용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요지로 바울이 외쳐서 자신들에게 제사하려는 루스드라 사람들을 겨우 말리기는 했지만, 이 일은 복음의 역사를 이룬 사람들까지도 신으로 대우받을 만큼 큰 역사의 현장을 보였다. 우리에게도 하나님 말씀이 이적을 나타내는 복음이 되게 할 만큼 능력이 있어야 한다.

 

말씀이 일하시게 하라

우리는 예배에 와서 말씀을 들을 때마다 복음의 역사가 이적으로 나타나는 경험을 가지려 해야 한다. 복음이 내게서 발생되게 하려고 결심하고 와야 한다. 병자는 병에서 꼭 나을 줄로 믿고 나오고, 악한 영에 매인 자는 악한 영에게서 놓일 줄로 꼭 믿고 나오고, 문제가 있는 자는 그 문제가 해결될 줄로 꼭 믿는 믿음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 하나님 앞에 믿음을 보일 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만난 자가 되어 자기가 가진 영육 간의 불가능을 주님이 일하시는 복음 안에서 즉시 해결하는 현재성을 경험하는 것이 복음을 만난 사람이라는 증거다. 복음은 진리요, 진리는 듣고 믿는 자에게 이루어질 확실한 경험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불가능에 가능의 역사를 하나님 말씀의 진리로 이루며 살자.

지금 당신의 영육 간에 불가능의 고통이 있는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로 지금 해결하여 말씀으로 주신 진리의 법의 권리로 지금 해결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계속>

 

 

*윤석전 목사의 ‘무보수전도자학교’ 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39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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