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열왕 이야기 <38>] 결국 나라는 망하고 백성은 포로가 되다
북이스라엘 베가, 호세아 왕

등록날짜 [ 2012-11-28 15:43:34 ]

반란은 반란을 불러일으키고 내분은 갈수록 격화
강대국 앗수르가 침입해 백성은 강제 이주당하다

베가 왕
북이스라엘 제16대 왕 므나헴은 살룸이 왕위를 찬탈하자 이를 성토하려고 디르사에서 군사를 일으켜 수도 사마리아로 진격했다. 그때 르말랴의 아들 베가도 군부 세력 지도자로서 군을 끌고 와서 므나헴과 합세했으리라고 추측한다. 이런 사실은 성경에서 베가의 통치 연대로 볼 때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성경에는 베가가 나라를 다스린 기간이 20년이라고 했는데, 베가 홀로 왕으로 통치한 햇수는 만 6년 정도에 그친다. 나머지 13년이나 14년 동안은 므나헴 왕을 보좌하며 통치권을 양분해 사용했으리라고 본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한 ‘베가 20년 통치’라는 표현은, 섭정(攝政) 또는 통치권을 나누어 다스린 기간 13년에 자기 홀로 왕 노릇을 한 7년을 더한 것으로 보면 된다. 만약 베가가 왕위에 오른 후 자기 혼자 20년 동안 다스린 것으로 계산하면, 북이스라엘 나라가 망한 시기를 넘어서게 된다.

제16대 므나헴 왕이 10년간 다스리고 므나헴에 뒤이어 왕자 브가히야가 왕통을 이어 2년간 더 다스렸으니 그 기간이 만 12년 정도다. 베가는 섭정 형식으로 므나헴이 왕위에 오를 때부터 12년간 권세를 누렸으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베가는 정부 실력자였으면서도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즉위하자 왕위 찬탈을 은밀하게 도모했을 것이다.

어쨌든 베가는 왕위를 찬탈할 결심으로 반역을 일으켜 왕궁 호위소에서 브가히야와 두 신하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였다. 베가는 브가히야와 두 신하를 혼자 죽이지 않았다. 심복으로 기르던 길르앗 사람들, 즉 행동대로 비밀리에 훈련한 요단 동편 길르앗 사람 50명과 더불어 일을 도모했다.

성경에 나오는 베가의 사적은 아쉽게도 위 내용이 전부다. 뒤이어 베가의 행적을 짧게 요약한 아래 성경구절은 베가를 평가하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유다 왕 아사랴 오십 이년에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이십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의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15:27~28).

마지막 왕 호세아
남유다 왕 아하스 12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북이스라엘 왕이 되었다. 호세아의 사적과 평가는 열왕기하 17장 첫머리에 나온다.

“유다 왕 아하스 십이 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구 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왕하17:1~2).

즉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지만, 그전 왕들과 다른 점을 3~4절에 기록하고 있다. 성경은 호세아 왕이 앗수르 속국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친 노고를 높이 평가했다. 열왕기 역사가는 정치적, 종교적인 자주(自主)를 이룬 왕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올라와서 호세아를 친 고로 호세아가 신복하여 조공을 드리더니”(왕하17:3).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 호세아는 앗수르의 신복(臣僕)이 되어 조공을 바쳤다. 구약 성경에서 ‘올라오다’는 표현은 무력 침략을 포함한 군사 행동을 의미한다. ‘종이 되어 조공을 드렸다’는 기록은 이스라엘이 앗수르 속국(屬國)으로서 매년 정기적으로 조공(朝貢)을 바쳤다는 의미다. 그뿐만 아니라 앗수르 속국이 되기로 한 이상, 앗수르가 동의하지 않는 한, 다른 나라와 외교관계도 맺을 수 없다.

호세아 왕이 이집트 왕 소에게 사신을 보내고, 또 앗수르에 매년 바치던 조공을 보내지 않은 것은 명백히 앗수르에 반란을 저지른 행위였다. 따라서 앗수르 살만에셀이 군대를 보내 호세아 왕을 옥에 감금했다. 이렇게 앗수르가 보복하자 북이스라엘은 결국 멸망하고 만다. 또 앗수르는 호세아 왕을 가두고 3년간 사마리아를 포위했다.

“올라와서 그 온 땅에 두루 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삼 년을 에워쌌더라 호세아 구 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취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할라와 고산 하볼 하숫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왕하17:5~6).

고대 근동에서 원정군이 어느 한 지역을 3년간 포위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불가능하다. 군대가 장기간 다른 나라에 주둔하는 것은 군수물자부터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앗수르 군대는 원정을 떠났다 하더라도 신년제 축제 전에는 돌아가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열왕기하 5~6절 의미는 호세아 통치 제7년경부터 앗수르 군대가 자주 사마리아를 공격했으며, 그 결과 호세아 제9년에 항복을 받아냈다고 볼 수 있다.

사마리아를 정복하자 앗수르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이제 북이스라엘 사마리아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지 못하게 되었다.

위 글은 교회신문 <31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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