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구령의 권리

등록날짜 [ 2016-07-19 10:17:36 ]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니

예수 그리스도의 열정으로 영혼 구원에 더 매진해야

 

요한일서 3장 13~16절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의무가 아니라 자신의 영원한 권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저지할 자가 없고 제한할 자가 없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인간에게 체험되었을 때, 이제 우리 인간이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은 의무나 감정에서 나오는 제한 있는 것이 아니라 무제한의 권리가 됩니다.
 

인간에게만 주신 구령의 권리

예수님도, 제자들도, 초대교인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권리를 가지고 모든 생애를 사랑의 권리를 행사하며 살았습니다. 이 같은 사랑의 권리는 천사라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하나님과 인간만의 영역입니다. 하늘의 천사는 구원받은 자, 택함받은 자들을 섬기는 종으로 존재하지만 사람의 영혼을 사랑할 권리자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천사를 흠모하고 부러워하지만 천사는 오히려 구원받은 인간의 영혼을 더 부러워합니다. 천사는 영원히 하나님의 종으로 존재하나 구원받은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자녀로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되 독자라도 희생하시기까지 무제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혼 구원을 천사를 통해서 하신다면 순간에 인류를 구원받게 하실 수 있으시지만 영혼을 구원하는 사랑의 권리는 좀 더디게 이루어질지라도 오직 자기 자녀에게 맡기셨습니다. 천사는 육체를 입은 인간보다 뛰어날지라도 종으로서 오직 구령의 권리를 가진 하나님의 자녀를 도울 뿐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첫 번째 사역은 제자들을 부르신 일이었고, 두 번째 사역은 “회개하라”고 외치신 일입니다. ‘회개하여 죄를 내놓으면 내가 짊어지고 죽어서 너희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해 줄 것이다. 죽게 된 모습, 사망과 지옥에서 멸망할 모습을 깨닫고 내놓아라. 내가 짊어지고 죽어서 해결해 주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값지고 은혜로운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이적과 능력을 나타내면서 인간의 고통을 해결해 주신 예수를 십자가 형틀에서 처형할 만큼 중죄인으로 취급했습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무척이나 미워합니다.

 

세상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복음 전도

성경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라고 했습니다. 인간을 죄짓게 해서 아담 때부터 마귀에게 속하게 만들어 지옥까지 데리고 가는 것이 마귀의 사명입니다. 그런 인간을 회개시켜 마귀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영생과 천국을 부여한다고 할 때, 자기 손아귀에 쥐었던 것을 빼앗기는 마귀역사가 얼마나 분하겠습니까. 그래서 악한 마귀는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증거하는 자들을 가장 심하게 핍박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쫓아내고, 중풍병자를 일으키고, 나환자를 깨끗케 하고, 소경이 보게 하고, 귀머거리가 듣게 하고, 벙어리가 말하게 하고, 앉은뱅이가 일어서서 걷게 하셨습니다. 악한 마귀의 궤계에 빠져 고통당하는 우리 인간을 위해 이런 엄청난 이적을 나타내신 예수를 왜 미워해야 할까요.

 

악한 마귀는 사망의 세력을 가지고 인간을 사망으로 이끌어 지옥 보내려고 작정하고 병들게 했는데 주님이 고쳐 주시고, 고통을 줘도 해결해 주시니 예수와 마귀는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만드는 원수가 바로 악한 마귀 사단 귀신 역사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거침없이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다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제자 중에서 핍박받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본문에도 세상이 미워해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면 미움을 받을 일이 없습니다. 세상과 다르게 살고 세상과 반대로 살면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세상이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세상하고 똑같이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는 본문 말씀은, 마지막 우리 목숨이 끝나는 순간에 심판대 앞에서 확실하게 받을 심판이 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형제를 사랑함으로 그 영혼을 사망에서 건져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이로써 확인한다는 말입니다.

 

밀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은 희생하는 것입니다. 내 것을 내주는 것이요, 나를 소멸하는 일이요, 나를 그만큼 사용해야 하는 일입니다. 촛불을 켜 놓으면 촛농이 다 없어질 때까지 불을 밝힙니다. 자기 몸을 희생해서 불을 밝힙니다. 소금은 다 녹아서 짠맛을 내고 없어집니다.

 

사랑은 촛불과 소금처럼 나를 내주고 얻는 것입니다. 나를 전도하는 데 내주고, 순종하는 데 내주고, 충성하는 데 내주고, 내 영혼의 때의 영광을 위해 내준다고 해서 내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삼십 배, 육십 배, 백배로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썩지 아니할 영원한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일러스트 / 노혜지

전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권리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자녀가 모여, 우리가 구원받은 것과 같이 수많은 영혼을 지옥에서 구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전도하여 사람을 모아 과시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하여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세상 이기적인 사랑은 이성과 조건을 찾아가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의 영혼을 찾아갑니다. 또 세상 문화 안에 있는 열정은 물질과 육체의 영광을 구하지만 신앙 안에 있는 기독교의 열심은 오직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데 열심을 쏟습니다.

 

만약 기독교인에게 영혼을 멸망에서 구원할 사랑과 열심이 없다면, 그는 이미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아무리 거룩하게 보이는 성직자라도 영혼을 구원하려는 구령의 사랑이 없으면 그는 오직 삯꾼에 불과하고, 하나님을 기만하고 성도를 기만하고 자기 자신을 기만할 뿐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는 전도하노라 하면서 사람을 모아서 교회당에 의무감으로 앉히는 것에 그치지 말고 사람을 찾아서 그의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권리를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혼 구원을 위하여 잔인하게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령의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을 찾아 헤매는 노예가 되지 말고, 사람의 영혼을 찾아 살리려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인격을 가진 우리의 고유 권리입니다.

 

지금 우리의 인생은 하루하루 낡아져 가고 있습니다. 세속에 탕진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속히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삽니다. 돌아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짊어지고 흘리신 피를 붙잡고 계속 아버지께로 가야 합니다.

 

내 인생이 세월 속에 묻혀서 그냥 사라져서는 결코 안 됩니다. 사망에 이른 자를 살리기 위하여 전도해야 됩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심같이 우리도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이웃을 위해 목숨을 버려서라도 그 영혼을 살려 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요, 내가 살아야 할 이유요, 죽어야 할 이유입니다.

 

2016년도 상반기를 지나 어느덧 하반기의 중간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멸망하는 영혼을 찾아 지옥에서 건져 영원한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삶에서 복음 전도가 없다면 아직도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망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로 주신 생명을 가진 자는 생명이신 예수가 자기 안에 있습니다. 예수가 자기 안에 있는 자는 이 땅에 전도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8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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