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232·上)] 모세가 숨을 거둔‘느보산’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땅(61)

등록날짜 [ 2022-05-12 17:18:15 ]

가나안 복지 내려다보이는 느보산

모세는 하나님 앞에 범죄한 탓에

느보산에서 가나안 땅 바라만 보고

약속의 땅 들어가지 못한 채 최후



윤석전 목사: 르우벤 지파의 땅에 있는 ‘느보산(Mount Nebo)’의 ‘비스가’봉(峰)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가 훤히 보이는 곳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느보산에서 최후를 마쳤습니다. 얼마나 가나안 땅을 그리워했던가. 가나안을 보고도 들어가지 못하는 안타까움 속에는 하나님 앞에 지도자가 어떻게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느보산으로 가 보시겠습니다.


사해에서 동쪽으로 13km를 가면 출애굽 여정의 마지막 기착지인 느보산이 나온다. 느보산은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Jericho) 맞은편 비스가산(Pisgah)”(신34:1)과 동일한 장소로 여겨진다. 이 산 중턱을 오르면 모세가 하나님과 만난 장소라 추정하는 곳이 나오고, 이곳에 모세의 기념비를 세워 순례자들을 감동시킨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이 차지할 가나안 땅을 보여 주셨는데, 이 느보산은 르우벤 지파의 영토 안에 있었다.


<사진설명> 느보산 전경.  산 동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느보산의 ‘비스가’봉(峰)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가 훤히 보이는 곳이지만,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느보산에서 최후를 마쳤다.


<사진설명> 느보산에서 내려다본 전경. 날씨가 좋은 날이면 사진 왼쪽의 사해 너머로 쿰란, 예루살렘까지 보인다.



<사진설명> 느보산 주변 지도. 사해에서 북동쪽으로 13km를 가면 출애굽 여정의 마지막 기착지인 느보산이 나온다. ‘메드바’에서 북서쪽으로 7km 정도 떨어져 있다. 느보산은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산”(신34:1)과 동일한 장소로 여겨진다.



윤석전 목사: 느보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이스라엘의 사해 동쪽은 르우벤 지파가 차지한 땅입니다. 느보산은 사해에서 동쪽으로 약 13km 떨어져 있고, ‘모자이크 지도’로 유명한 ‘메드바(Medeba)’에서 북서쪽으로 7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느보산에 대한 개념을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느보산은 자동차로 한참 다녀야 할 만큼 산 정상 부분이 굉장히 넓습니다. 가장 높은 봉우리인 ‘니바(Ras al-niba)’는 해발 835m인데,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어서 꼭대기까지 가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산 정상이 무척 넓기 때문에 느보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도 이스라엘 땅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세 기념비’가 있는 710m 높이의 ‘시야가(Ras Siyagha)’ 봉우리를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본 ‘비스가산’이라고 추정합니다. 시야가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가나안 땅이 잘 보이는 지리적 조건에 들어맞는 곳입니다. ‘느보산’이라고 하면 산 전체에 대한 명칭이고, ‘비스가’라고 하면 성경에 등장하는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본 장소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모세가 느보산에서 최후를 맞은  일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천사무엘 교수: 모세가 가나안 땅을 내려다보면서 얼마나 들어가고 싶었겠습니까. 오랫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생활을 하다가 비스가에 이르러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죽은 것입니다. 이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그의 전권을 넘겨준 다음 최후를 맞습니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서 사용하신 과정도 설명해 주세요.


천사무엘 교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로 있을 때 레위 지파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이스라엘(히브리) 민족이 왕성하게 불어나는 것을 경계해 애굽의 바로왕은 히브리 민족이 아이를 낳으면 모두 다 죽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이때 모세의 부모들은 아기를 차마 죽일 수 없어서 갈대 상자에 모세를 넣어 강에 띄워 보냅니다. 다행히 바로의 공주가 모세를 발견해 자신의 양자로 삼았고 궁중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모세가 장성해 궁 밖으로 나와 보니 동족인 히브리 사람이 애굽 사람에게 얻어맞는 것을 보고 분이 났습니다. 결국 그 애굽 사람을 쳐서 죽였고 그 일이 탄로 날까 봐 광야로 도망쳐 미디안 제사장의 사위가 되어 양치기를 하며 지냈습니다. 모세는 양을 치면서 시내산을 왕래했는데 시내산에서 하나님에게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나온 후 느보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모세가 사모하던 가나안 땅을 그저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 못했는데, 그 내용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요?


천사무엘 교수: 성경은 ‘가데스(Kadesh)’의 ‘므리바(Meribah) 샘’에서 모세가 분을 낸 사건 탓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합니다(민20:12). 사소하고 단순한 사건이었으나,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므리바 샘에서 모세는 상당히 괴로웠습니다. 가데스 지역에서 그의 누이인 미리암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백성들은 지도자에게 “목이 타고 먹을 것이 없다”라며 다투었습니다. 이에 지도자가 화를 내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한 잘못을 범함으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판단을 내리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도자라면 어떤 경우라도 화를 내거나 사소한 잘못을 범하는 우를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우리가 주의 일을 하는 공적 신분으로서, 하나님 앞에 취해야 할 태도나 성도들 앞에 취해야 할 태도를 바로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느보산에 세워진 모세 기념비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기념비가 있는 ‘시야가’ 봉우리는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죽었다고 추정해 4세기 때 수도원과 교회를 건축했고, 5세기 말에 증축했습니다. 이후 1933년부터 이곳에서 발굴을 시작해 재건하는 중이고, 방문하는 관광객도 많아져 모세를 상기할 기념비를 세우는 등 자주 달라지는 모습입니다. 고고학적 의미와 상관없이 관광용으로 모세를 강조하기 위해 세워 놓은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출애굽기 25장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지을 성물을 가져오라고 할 때 염소털이 있습니다. 염소털로 천막을 친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천사무엘 교수: 성경은 염소털로 천막을 만들어 성막을 덮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출36:14). 구약성경을 보면 중요한 천막을 만드는 데 염소털을 사용했고 요즘도 베두인은 염소털로 천막을 만들어 사용합니다. 공기가 잘 통하고 비가 올 때 방수가 잘되기 때문입니다.


또 성경을 보면 인간의 죄를 염소에게 부여해 제사를 지내거나 광야에 내보낸 기록들이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대속물로 본인을 내어 주시며 우리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염소털로 성막을 덮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인 성막과 세상이 대속의 상징인 염소털로 나뉘어 있다고 볼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나러 들어갈 때는 반드시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그 외 느보산과 관련한 내용들을 조금 더 설명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시야가 봉우리 오른쪽 골짜기에 ‘아윤 무사(Ayun Musa)’라고 불리는 ‘모세의 샘’이 있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민족이 지나갈 당시에도 물을 공급받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천사무엘 교수: 비스가봉은 710m이지만 사해와 요단강 주변이 푹 꺼진 해저 지형이기 때문에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훨씬 더 높이 올라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비스가에서는 사해, 쿰란(Qumran), 예루살렘(Jerusalem)을 비롯해 북쪽으로는 헬몬산까지 볼 수 있으나 안개가 자주 끼어 있어 멀리 보기 어렵습니다.


윤석전 목사: 느보산과 이름이 같은 르우벤 지파의 성읍 ‘느보(Nebo)’로 가 보시겠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74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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