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오시는 대로(大路) <14·下>] 다말을 향한 하나님 계획

등록날짜 [ 2025-06-11 13:29:30 ]

<사진설명>예루살렘 전경. 예루살렘은 다윗이 통일 왕국의 수도로 선택한 땅이며, 다윗의 왕조를 거룩한 왕조로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진 곳이다. 유다 지파의 땅에는 다말과 관련한 딤나를 비롯하여 예루살렘, 헤브론, 엔게디 등이 있다.


다말은 시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었으나

결국 유다 가문의 장자 생산해

하나님께 옳다고 여김을 받고

예수님의 족보에도 오르게 돼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도시 예루살렘(Jerusalem). 이곳은 다윗이 통일 왕국의 수도로 선택한 땅이며, 다윗의 왕조를 거룩한 왕조로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진 곳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실현된 거룩한 이곳 예루살렘 부근에는 엔게디(En Gedi)가 있다. 엔게디 또한 유다 지파의 땅이며,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은신처로 삼은 곳이다.


엔게디의 물을 따라 도착한 곳 사해(Dead Sea). 세상에서 가장 낮은 지형에 있으나, 염도는 가장 높은 바다이다. 보통 바다보다 6배 이상 염도가 높아 사람이 누워서도 책을 볼 수 있다. 죽음의 바다로 불리는 사해도 유다 지파의 영역이었다.



<사진설명>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영토. 친정에 가 있던 다말은 유다가 딤나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과부 신분을 숨긴 채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다. 이후 쌍둥이 아들인 세라와 베레스를 낳고, 베레스는 예수님의 계보를 잇게 된다.


▶윤석전 목사: 유다와 다말이 살았을 유다 지파의 땅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유다와 다말 당시에는 유다 지파의 땅이라고 할 만한 곳은 없었고, 출애굽 후 열두 지파가 땅을 분배받았을 때 유다 지파 역시 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만 형제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았을 때 야곱 가정이 헤브론(Hebron) 골짜기에서 살았다고 성경은 정확히 말하고 있습니다(창37:14). 이후 유다는 아버지와 형제로부터 분가하여 아둘람(Adulam) 등이 있는 쉐펠라(Shephelah)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유다 지파의 땅 대부분이 산지인데, 쉐펠라 지역은 토지도 더 비옥하고 사람이 살기에도 좋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한 후 가나안 땅에 와서 제비를 뽑는데, 유다 지파 후손들이 선조 유다가 살던 곳을 뽑았습니다. 유다 지파의 땅에는 다말과 관련한 딤나(Timnah)가 있고, 예루살렘, 헤브론, 엔게디 등이 있습니다.



<사진설명>엔게디 전경. 엔게디는 사해와 인접한 황량한 사막에 있지만, 이곳의 샘은 연간 물 300만 리터를 일정하게 공급하고 있어 땅을 비옥하게 한다.


▶윤석전 목사: 유다 당시의 결혼 법을 보면, 큰아들이 죽으면 그의 다른 형제들이 형수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그 관습대로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이 자기 차례에 다말에게서 자식을 생산해야 했는데, 왜 오난은 이를 거부하고 아버지 유다도 거부했을까요?


▶김호경 교수: 오난이 다말을 아내로 맞아 자녀를 낳으면, 관습에 따라 그 아기는 자신의 아이가 아닌 형인 엘의 아이가 됩니다. 형의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싶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형의 아이를 기른 후에도 자기 재산을 형의 아들과 같이 나누어야 하기에 다말을 거절했을 것입니다.


또 성경이 “엘과 오난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하므로 죽었다”(창38:7;38:10)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유다는 두 아들의 죽음을 겪은 후 며느리를 불길하게 여겼고 막내아들까지 다말에게 줬다가 그 역시 죽으면 어쩌나 염려했을 것입니다. 오난과 유다 각자가 자기들에게 손해 올 것을 걱정하여 다말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형사취수제 같은 관습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오난과 유다는 공동체가 아닌 개인의 입장만 우선했습니다. 이는 굉장히 불의한 일입니다. 그래서 다말의 사건은 이러한 불의에 대한 폭로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워 줍니다.


▶윤석전 목사: 창세기 38장을 보면, 다말이 시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습니다. 역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다말이 나보다 옳도다”(창38:26)라고 고백합니다. 유다의 말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있을 듯합니다.


▶김호경 교수: 시아버지인 유다의 불의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족장이었고, 그 공동체를 다스릴 힘과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다말이 그의 공동체 안에 정상적으로 안착하도록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다의 불의한 일이며, 다말은 이 불의를 폭로합니다. 다말의 폭로에 대해 유다가 “내가 잘못했다”, “다말을 내쫓으면 안 되었다”라며 자신의 불의를 인정합니다.

오늘날 ‘갑질’이라는 신조어가 생겨 자신의 지위나 힘을 내세워 아랫사람이나 힘이 없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거나 무례하게 행동하는 짓을 경계하곤 합니다. 유다가 다말에게 행한 일이 전형적인 갑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보호해야 하고 자기 공동체 안에 같이 살아야 할 이를 내보낸 것입니다.


반면 다말의 행동은 을의 저항입니다. 내가 이렇게 살 수 없고 이렇게 쫓겨날 수 없다며 공동체 안에 들어가야 하는 자기의 권리와 정당성을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찾아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역사는 다말의 편을 들어 줍니다. 


또 예수님의 족보에 다말이 들어간 것은 예수님의 역사가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연약한 자와 소외된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님의 사역이 다말의 사건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다말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시댁의 대를 이어 주려는 굳은 사명을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마태복음 속 족보를 보면 유다의 아들이 기록되어 있지 않고, 며느리 다말이 족보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다말이 어떻게든 고통을 견디면서 가족의 일원으로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의 씨인 베레스를 생산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이 다말을 쓰신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주님이 오시는 길은 험난한 길이요, 인간의 윤리적 도덕적 가치를 뒤엎으면서까지 구세주의 오심을 막을 수 없는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말은 기구한 여인이지만, 하나님 쪽에서 볼 때는 축복받은 여인입니다. 유다의 막내아들 셀라가 성장하여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데도 시아버지가 부르지 않자 무척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여자는 경수가 끊어지면 아이를 생산할 수 없기에, 시간이 갈수록 그 집의 자식을 낳아 주어야 하는 사명과 책임감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낳기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사라가 이삭을 낳기 위해 믿음으로 기다린 것처럼 유대인의 풍속에서 아내이자 며느리로서 그 집의 자녀를 생산해 줘야 한다는 짐이 무거웠을 것입니다.


결국 시아버지와 사이에서 베레스를 낳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조상으로 족보에 들어가게 됩니다. 유다의 아들인 엘도, 오난도, 셀라도 족보에 들어가지 못했으나 시아버지와 관계한 다말이 들어갔습니다. 그만큼 예수가 오시는 길은 윤리와 도덕을 초월하고 또 그들의 풍속과 습관을 만들어서 엄청난 일을 행하십니다. 다말이 그 집안의 씨를 낳아 주려고 노력하고 예수님의 족보의 생산을 위해 애쓴 것을 보면서 이것도 하나님의 섭리라 생각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길까지 험난한 길목에서 다말의 사건을 통해 많은 은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설명>사해 전경. 염도가 일반 바다보다 6배 높은 사해에서는 몸이 둥둥 떠올라 누운 채로 글을 쓰거나 신문을 볼 수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90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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