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복음의 두 가지 핵심

등록날짜 [ 2026-06-10 14:06:51 ]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회개와 믿음에 초점을 맞추고 

주인이신 예수께 순종하는 것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그 한 가지 사건이 그의 생애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일에 선봉장이던 그가 이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하나님으로 전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섬으로써 유대교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핍박을 받는 자로 바뀐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3년간 아라비아로 갔다가 자기 고향인 다소에 가서 11년 또는 14년간 초야에 묻혀 지냈습니다. 이후 바나바의 방문으로 그와 함께 안디옥교회로 가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이어 제1차와 제2차 그리고 제3차에 걸친 선교여행으로 당시 지중해 일대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후 47년부터 57년까지 약 20년간 복음을 위해 사역한 바울은 그 기간에 받은 엄청난 고난과 핍박을 고린도후서에 소상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4~27).


바울처럼 복음과 교회 때문에 이토록 극심한 고난과 고통을 당한 사람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동족과 이방인들에게 엄청난 고난을 당했음을 토로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 예수께 대한 믿음

사도 바울이 이토록 고난을 받으면서도 한 번도 흐트러뜨리지 않은 사역의 초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역의 초점을 밀레도로 초청한 에베소교회 장로들(목회자들)에게 분명히 언급했습니다. 그가 밀레도 해변에서 행한 고별 설교는 제3차 선교여행을 마친 후 죽음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던 길에 전한 설교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행20:21)이라며 지난날 자신의 사역이 무엇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었는지를 말합니다.


그가 흐트러뜨리지 않고 전한 복음의 초점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 같지만 오늘날 우리도 바울처럼 복음의 초점을 분명하게 이해해고 있는지, 또 이 두 가지가 다른 부수적인 것에 의해 흐려지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회개’에 대해, 단순히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은 도덕적·윤리적 죄악들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회개의 대상은 하나님이며, 하나님께 대한 회개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예수 믿는다고 자부하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담임목사로서 10년간 목회하다가 2년 전 퇴임한 후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의 여러 선교지를 다니며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악스럽고 놀라운 일은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조차 회개가 하나님께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앉아 나 스스로 주인 된 근본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강의를 마치고 나면, 그제야 수강한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이 “이제야 비로소 죄가 하나님을 대상으로 지은 근본 죄임을 알게 되었다”라고 고백합니다.


두 번째 복음의 초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구세주’에만 초점을 맞춘 복음 메시지를 들어오고 믿어 왔기에, 그분이 구세주만이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했을 때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일단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후 믿음이 성장하여 어느 경지에 이르면 비로소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지, 일단 구세주로 영접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남은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는 일은 전적인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며 그것을 일컬어 성경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다고 일러 줍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두 가지에 항상 초점을 맞추고 살아갈 때 가능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어떠한 죄인이었는데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그 죄를 단번에, 완전히, 영원히 사함받고 이제 더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을 항상 기억하고 순종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박영철 목사

前 침례신학대학교 교수

주님의기쁨교회 선교목사



위 글은 교회신문 <95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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